PCAview 로고

VIEW

투기
투기
“이번달도 적자” 파산 끝에서 향한 곳은…4050 생존 분투기

2026.04.18 05:00

마처세대의 비명
지난 15일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방문객이 정신건강 상담을 받고 있다. 원동욱 기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물류회사에 다니는 이재민(51)씨가 좁은 방 안에서 영수증 묶음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 재가 요양보호사 비용 120만원, 어머니 병원비·약값 45만원, 고2 딸 학원비 28만원, 부모님 월세 43만원, 식비·교통비 등 생활비 75만원을 더하면 총 311만원. 반면 지난달 실수령 급여는 300만원이었다. “또 마이너스네요. 두 분 다 편찮으시니 어느 한쪽을 줄일 수도 없고….”

신용카드 한도는 이미 바닥났고 지인에게 빌린 돈도 갚지 못하고 있던 그는 결국 지난달 처음으로 정신건강 위기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주민센터를 찾아 중장년 심리 지원 바우처도 신청해 격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어요. 요즘은 수능을 앞둔 딸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만 더 견뎌보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정수(47)씨의 가계부도 다르지 않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 간병인 비용 150만원, 중학생 두 아들 학원비 130만원, 점포 임대료 190만원, 식비·공과금 등 생활비 120만원까지 매달 600만원 넘게 나간다. 하지만 편의점 월 순수익은 380만원 안팎. 매달 200만원 이상 적자가 쌓이는 셈이다. “장사가 잘되는 날도 기쁘지 않아요. 어차피 다 빠져나가니까요.”

그는 수면제 없인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몇 년 만에 수면제를 끊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늦은 밤 편의점 문을 닫고 난 뒤 혼자 1시간씩 걷기 시작했어요. 아무 생각 안 하고 걷다 보니 갑자기 숨이 트이더라고요. 아, 이제 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저에겐 이게 가장 큰 버팀목입니다.”

경제적·정신적 압박 속에서 벼랑 끝에 몰린 4050세대들의 ‘생존 분투기’는 이렇게 조용히, 하지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부모 요양비, 자녀 교육비, 대출 이자, 주거비가 겹겹이 쌓이지만 월급은 언제나 부족한 현실. 개인회생 신청자 10명 중 네 명이 4050세대인 현실. 그럼에도 각자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잃지 않고 ‘마음 근육’을 키우며 버텨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인근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4050세대 7~8명이 모여 앉아 얘길 나누고 있었다. 동료 지원가로 활동 중인 박현동(47)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저도 한때 정신건강 위기를 겪었는데, 여기 와서 같은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과 아픔을 공유하면서 ‘나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더라고요. 지금은 비슷한 처지의 방문객들을 돕고 있어요. 저도 겪어 봤으니까 소통도 훨씬 잘 되는 것 같고요.”

센터에서 만난 정모(42)씨도 처음엔 도무지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함께 산을 오르고, 축구를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반년쯤 지나니 조금씩 달라지는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던 게 가장 컸어요. 그러면서 다시 힘을 내기로 했죠. 덕분에 가족들과의 사이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홍승현 활동가는 “센터를 처음 찾는 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다”며 “하지만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4050 동료들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속마음을 털어놓곤 한다”고 전했다. 현재 센터에는 150여 명이 등록돼 있으며 연간 이용자는 6000명을 넘는다. 예전엔 정신건강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이용객이 많았다면 최근엔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정신적으로 속앓이를 하는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도 늘고 있다. 이는 4050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호응도가 높자 보건복지부도 현재 7곳인 동료지원쉼터를 2030년까지 17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동료 지원가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기관도 20곳을 새로 지정할 계획이다. 백종우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는 “정신건강 문제를 털어놓기 힘든 건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라며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그 문턱이 확 낮아지고 동료들의 극복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계기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복지 체계는 노인·장애인·아동 등 사회적 약자 중심으로 구축되다 보니 중장년층은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던 게 현실”이라며 “고독사까지 악화되기 전에 외로움·우울·고립 단계부터 사전에 대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정부와 지역 사회가 함께 마련해 가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경제적 압박을 견딜 심리적 근육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투기의 다른 소식

투기
투기
3시간 전
보험사 투자부동산 20조…“보유세 강화 시 매각 검토 불가피”
투기
투기
5시간 전
4·17 대출 규제 시행…'전세 대신 월세' 고착화 우려
투기
투기
5시간 전
"이번달도 적자" 파산 끝에서 향한 곳은…4050 생존 분투기
농지
농지
1일 전
농식품부, 농지 전수조사 현장 조사원 모집
농지
농지
1일 전
농지 투기 근절 위한 농지 전수조사 조사원 모집
투기
투기
2025.11.13
대세는 국장…금리 인하기 성장주 부활 [2026 투자 포트폴리오]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