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봉’부터 ‘배달용기’ 주사기’까지 중동전쟁 ‘나비효과’···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배 돌아오면 원유 숨통 트일까[경제뭔데]
2026.04.18 06:00
한국행 유조선 4척, 1400만 배럴 올까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재료가 비닐, 플라스틱인가 싶으면 어김없이 가격이 올랐네요”
중동 전쟁 이후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원유에서 시작된 수급 우려가 플라스틱, 봉투, 비료 등 일상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종량제 봉투와 주사기와 같은 생필품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것도 석유가 들어간 제품이었냐”며 “기름값이며 원자재며 안 오르는 게 없는 것 같다”는 한숨이 나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 17일 ‘희소식’이 들려왔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에서 원유를 실은 한국 선박이 홍해를 안전하게 빠져나왔고, 이란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휴전 합의 관련해 휴전 기간 모든 상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허용한다고 밝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은 26척이고 이중 원유를 실은 한국행 유조선은 4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엔 한국 전체가 7일 동안 쓰는 석유 소비량인 원유 1400만 배럴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배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히 통과해 원유 수급에 숨통이 트였으면 합니다. 오늘 [경제뭔데]에서는 일상을 흔들고 있는 중동 전쟁의 여파를 정부의 수급 관리 품목 위주로 알아봤습니다.
중동 전쟁의 여파가 가장 직접적인 품목은 석유류입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61%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옵니다. 당장 석유류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17일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99.6원으로 20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중동 전쟁 직전인 2월말 1700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2개월 새 15% 넘게 오른 셈인데요. 서울 지역 주유소는 이미 지난 7일 2000원을 넘고 2030원에 이른 상태입니다.
이마저도 정부가 최고가격제로 가격을 눌러놓은 영향이라 가격은 추후 더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항공업계도 유탄을 맞았습니다. 대한항공 유류할증료는 다음달부터 최소 7만5000원에서 최대 56만4000원까지 부과됩니다. 지난 3월(1만3500원~9만9000원)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5배 넘게 오른 셈입니다. 미국을 왕복하는 탑승객의 경우 이전보다 100만원 가까이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합니다.
LCC(저비용항공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에어는 17일 오는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편도 기준 최소 42달러(약 6만2000원)~최대 140달러(20만 7000원)로 인상한다고 공지했습니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다른 LCC들도 잇따라 공지할 예정입니다.
유류할증료는 발권일 기준으로 부과되는데요. 5월 해외여행이나 출장이 계획돼 있다면 이달 안에 발권하는 게 유리합니다.
원유 수급의 차질을 빚으면 석유로 만드는 모든 제품들이 영향권에 접어들었습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석유 유분으로, 비닐·포장재·플라스틱·고무 등의 핵심 원료입니다.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사실상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품목이죠.
현재 국제 나프타 가격은 전쟁 이전보다 70% 넘게 올랐습니다. 현재 국내 석화업계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은 50~6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비닐 원료가 되는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 등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게 됩니다. 한국식품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일부 포장재 재고량은 2주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주요 포장재 단가는 중동 전쟁 이전보다 30% 넘게 올랐습니다. 포장재 가격 상승은 결국 라면·과자 등 소비자 식품 전반의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배달 주문이 많은 외식 업계도 시름을 앓고 있는데요. 한 점주는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플라스틱 용기 가격이 30~40%씩 올라버렸다. (재료가) 비닐인가 플라스틱인가 싶은 제품은 죄다 오르는 상황”이라고 썼습니다. 다른 점주는 “제품을 주문했는데 7일째 배송 중이다. 곧 비닐, 용기가 없어 장사 못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종량제 봉투를 둘러싼 불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당장 재고가 충분하고 가격 인상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주변 마트에 가도 재고가 없다고 한다’ ‘마트별로 판매 제한을 걸어둬 불안하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자체별 재고 편차가 크다는 점도 소비자 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의료 분야에도 중동 전쟁의 여파가 미치고 있습니다. 일선 병원에서는 주사기와 수액세트 등 의료 소모품 부족 사태를 호소하고 있는데요. 원유를 기반으로 만드는 플라스틱 원료 공급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일 주사기 투약이 필요한 중증 환자와 보호자 경우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한 의료용품 판매 사이트는 “일회용 주사기 납기가 최대 3개월까지 지연될 수 있다”고 공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1만원 정도였던 주사기 한 박스 가격이 5만~6만원으로 올랐다. 그마저도 주문했더니 취소됐다’는 후기도 나옵니다.
석유 가격 여파는 농촌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비료의 원료가 되는 요소도 수급 불안 품목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제 요소 가격은 중동 전쟁 대비 50% 넘게 올랐는데요. 현재 국내 비료 판매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농협은 비료 가격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재고 보유분이 떨어질 하반기에는 비료 가격도 점차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농가 생산비가 오르면서 농축수산물 전반의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차량용 요소도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안심할 수 없습니다. 물을 섞어 만든 ‘요소수’는 대형 화물차나 버스 같은 경유 차량 운행에 필수적입니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요소수 가격이 2배 넘게 오르는 등 사재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화물기사들 사이에서는 요소수가 부족해 차량 운행을 멈춘 2021년 ‘요소수 대란’ 등이 떠오른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정부는 주요 품목들을 매점매석 금지 품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사서 쟁여두지 말라는 겁니다.
석유류는 지난달 13일, 나프타는 지난달 27일부터 매점매석이 금지됐습니다. 지난 15일부터는 나프타를 원료로 해서 만들어지는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톨루엔·자일렌·기타 유분 등 7개 기초유분도 매점매석 금지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석유화학 제품 사슬 전반으로 수급 관리 범위가 확대된 것입니다.
지난 14일부터는 주사기와 주사침도 매점매석 금지 품목으로 지정됐습니다. 식약처는 주사기 생산과 출고 현황 등을 집계해 매일 공개하고 있습니다. 요소수도 지난달 27일부터 매점매석이 금지됐습니다. 품귀 현상이 우려되는 농업용 비료에 대해서도 농협과 연계해 가수요를 막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또 물가 상승 우려가 큰 43개 품목을 물가관리품목으로 지정해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전기·가스·난방 등 공공요금과 의약품·생리대·가정용 비닐 등 공산품 전반, 라면·과자·삼각김밥 등 가공식품 전반, 소·닭·수입고등어 등 농축수산물 7종 등이 포함됐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불안이 지속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휴전기간에라도 원유를 실은 배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속히 빠져나와 원유 수급에 숨통이 트일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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