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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앞에선 괜찮은 척…“죽는게 낫겠다” 마처세대의 절규

2026.04.18 05:00

마처세대의 비명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효도를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머니만큼은 잘 모시려고 어떻게든 버텨 왔는데…. 휴우, 이젠 정말 한계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보험설계사 김모(53)씨가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화면엔 어머니 요양병원 청구서와 아들 학원비 고지서 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번 달에만 430만원이에요. 제 월급의 절반이 훌쩍 넘죠.”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81) 간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카드 돌려막기를 반복했지만 연체를 피할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해야 했다.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져요. 이후 출근할 때까지 계산기만 두드리는 게 일상이 됐죠.” 겨우 시간을 내 병원을 찾은 그는 겉으론 정상적으로 보여도 속으론 우울증에 시달리는 ‘가면 우울증’ 소견을 받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직장 동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티도 전혀 못 내고 오히려 잘 지내는 ‘척’하고 있어요. 부모 자식 돌보기도 버거운데 제 건강 챙기는 건 아직 사치다 싶고요.”

비단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정신적·심리적 위기까지, 삶의 이중고에 허덕이는 4050세대가 급격히 늘고 있다. 4050 커뮤니티에서도 부모를 직접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정작 자녀에겐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인 ‘마처세대’가 됐다는 자조와 함께 ‘낀 세대’의 각박한 현실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허리를 담당해온 4050세대가 ‘이중 부양’의 현실적 굴레 속에서 심신이 모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이중부양·갱년기 겹쳐 ‘수퍼 사춘기’…4050 “내 인생은 누가 책임지나”
실제로 4050세대의 정신건강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우울증 진료를 받은 40대는 2020년 11만276명에서 지난해 16만7251명으로 52%나 급증했다. 전 연령대 평균 증가율 30%를 22%포인트나 웃도는 수치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 있다는 40대도 같은 기간 4.6%에서 22.2%로 크게 늘었다. 지난 1월 한국리서치 정신건강 인식 조사에서도 ‘현재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답한 40대는 28%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았고 ‘관리 노력 중’이란 응답도 26%에 그쳤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히 ‘우울’이란 증상의 문제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4050세대의 우울은 청년의 그것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며 “청년의 우울이 무기력과 불안으로 표출된다면 중년의 우울은 좌절감과 소진이 겹치면서 짜증과 만성 피로, 이유 없는 분노 등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낀 세대라는 자괴감에 더해 늙어가는 부모를 지켜보며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는 실존적 공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황금 세대의 일원이었다는 자부심도 어느새 옛말이 돼버리는 등 정체성 혼란까지 겹치면서 중년의 나이에 또 다른 사춘기를 겪고 있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석좌교수도 “특히 병든 부모를 간병하기 시작하면 사람도 못 만나고 운동할 시간도 없고 수면 리듬도 깨지면서 일상의 루틴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쉽다”며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뇌와 신체 모두 정상적인 회복 경로를 잃게 되고, 본인은 우울증인 줄도 모른 채 그냥 예민하고 힘든 상황일 뿐이라고 여기다 병을 키우는 경우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050의 우울은 갱년기 호르몬 변화와 경제·사회적 압박이 맞물리는 복합 구조”라며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며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면 일단 정신건강을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AI 뜨며 조기퇴직으로 밀려나기 시작
4050세대의 심리적 붕괴엔 무엇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현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국신용정보원 집계 결과 지난해 말 전체 신용불량자 중 4050 비율은 47.4%로 절반에 육박했다. 연령대별로도 50대가 22만8235명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1만5479명이 뒤를 이었다. 특히 4050 남성 채무불이행자는 30만6604명으로 4년 새 3만 명 이상 늘었다. 제조업·건설업 침체와 자영업 부진이 중장년 남성 가장들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서울 중랑구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최병수(48)씨는 2년 전부터 부모님 요양비를 감당하기 위해 사업 자금 대출금을 전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80)가 낙상 사고를 당한 뒤 요양보호사 비용과 병원비만 매달 120만원이 넘는다. 고금리에 원자재 가격까지 오르면서 사업도 버티기 힘들어졌다. “요즘엔 현장에서 견적을 뽑을 때도 머릿속엔 아버지 다음 달 청구서가 먼저 떠올라요. 앞으로도 빚이 불면 불었지 갚을 길이 없다는 게 더 무서울 따름입니다.” 결국 그는 지난달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파산 상담 예약을 신청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명예교수는 “4050세대는 우리 사회의 기업 조직과 각계각층에서 기둥 같은 세대로 활동해 왔지만 노동시장에선 이미 불안정한 위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며 “위에서는 조기 퇴직 압박이 내려오고 아래에선 인공지능(AI)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이중 압박 속에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문제는 이들이 이대로 떠밀려 퇴장하면 20~30년 쌓아온 숙련과 경험이 고스란히 사장되는 셈으로,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4050세대의 직무 능력이 계속 활용될 수 있는 점진적 전환 시스템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4050을 옥죄는 건 경제적 압박만이 아니다. ‘마처세대’가 숙명처럼 떠안아야 할 이중 부양의 굴레가 이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부모 부양은 자녀 몫’이란 인식에 동의하는 비율은 2007년 52.6%에서 지난해엔 20.6%로 32%포인트나 급감했다. 4050세대 세 명 중 두 명은 나이 들어 자녀의 돌봄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현실의 4050은 여전히 부모 간병의 물리적 짐을 짊어진 마지막 세대다 보니 인식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낀 세대의 설움만 커지고 있다는 게 4050세대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수원에 사는 직장인 이모(46)씨는 4년째 뇌졸중 후유증을 앓는 아버지(78)를 돌보고 있다. 평일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금요일 저녁이 되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향한다. 아버지 목욕을 시켜 드리고 병원 정기검진을 함께 다녀온 뒤 일요일 저녁 서울행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주중엔 요양보호사가 와서 도와주지만 주말엔 제가 챙겨드려야 해요. 평일 연차를 써야 할 때는 ‘개인 사정’이라고 적는데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느껴지는지…. 주말마다 남편에게 맡기는 딸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고요.”

이씨는 “그나마 저는 직장 문화가 유연한 편이라 버틸 수 있는 것”이라며 “주변엔 부모 간병하느라 일을 그만두거나 이직을 알아보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우리 세대는 부모님 약값에 아이 학원비 대느라 나 자신의 일상은 실종된 지 오래”라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복지 구멍 4050이 대신 메워온 측면
4050세대가 직면한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동·복지 등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개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전제로 각종 제도가 설계됐다 보니 육아휴직조차 대기업·공공기관이 아니면 쓰기 힘든 게 현실이고 노부모 돌봄 휴가 개념은 아예 없는 수준”이라며 “맞벌이가 당연시된 지금도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모든 부담이 개인, 특히 4050세대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더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가족 질병 등 난관에 부닥쳤을 때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심지어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휴직 제도 자체가 해당되지 않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이런 사각지대를 메우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중장년 고립 예방에 1375억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27일부터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도 전국 단위로 확대 시행하고 해당 분야도 2030년까지 60종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대도시와 달리 돌봄 인력이나 노하우가 여전히 부족한 지방 소도시나 농촌 지역의 실제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이병훈 교수는 “4050세대의 경제적·심리적 연착륙이야말로 향후 국가 재정 건전성 확보의 핵심”이라며 “효라는 사적 영역이 공공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속에서 마처세대인 4050이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국가와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이들의 활로를 함께 모색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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