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건물이 필요한가
2026.04.18 04:30
편집자주
복길 대중문화평론가가 화제의 방송을 깊게 들여다봅니다.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의 주인공 기수종(하정우)의 직업은 세상 모든 사람의 꿈인 건물주다. 그러나 수종의 삶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갓물주’와는 거리가 있다. 건물을 퇴직금과 대출, 사채까지 ‘영끌’해서 산 탓에 수종은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건물 노후로 인한 세입자들의 빗발치는 민원을 직접 발로 뛰어 해결한다. 그래도 수종에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자신이 건물주라는 사실 자체다. ‘세윤빌딩’은 수종이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자신의 일부이며, 언젠가 반드시 보상처럼 돌아올 가족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재밌으면 주변에 ‘영업’을 하며 보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참 난감한 작품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우연처럼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데, 그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를 설득하기엔 너무 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윤빌딩의 기존 채권자가 수종의 채무를 리얼캐피탈로 넘기면서, 수종은 당장 10억 원을 상환하지 못하면 건물을 잃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건물을 지키기 위해 당장 돈이 필요했던 수종은, 친구 활성(김준한)이 부동산 거부인 장모 전양자(김금순)의 돈을 빼앗기 위해 아내 이경(정수정)을 납치한 조작극에 동참하고, 활성이 다쳐 혼수상태가 되자 전양자에게 받은 돈을 모두 건물 대출 상환에 쓴다.
그렇게 쉬쉬하며 지내던 어느 날, 수종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온다. 재개발 계획에 세윤빌딩의 부지가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수종이 이경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준 아내 김선(임수정)은 더 이상 욕심을 내지 말고 건물을 30억 원에 팔아 이민을 떠나자고 한다. 재개발 계획을 알고 있는 수종은 갈등하다 결국 건물값을 10배 높여 부르고, 리얼캐피탈의 요나(심은경)는 이를 거절하며 수종에게 아내 선과 친구 활성의 불륜 영상을 보낸다. 빨리 건물을 팔고 떠나자 했던 선의 재촉은 활성과의 관계를 수종에게 알리겠다는 ‘리얼캐피탈’의 압박 때문인 것이었다.
하지만 수종은 선에게 이를 추궁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사건들에 휘말린다. 자신의 민원을 무시하는 수종의 태도에 화가 난 세입자 동기(현봉식)가 앙심을 품고 수종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동기는 오히려 수종과 선에게 붙잡혀 창고에 감금되고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노리던 동기는 새벽에 창고에 들어온 전양자를 수종으로 오인해 폭행하고, 건물을 싸게 매입하기 위해 몰래 하자를 만들러 온 양자는 그렇게 수종의 건물 지하창고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수종은 항상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그런 수종을 바라보는 선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합리화하며 남편의 욕망을 자신과 가족의 욕망으로 만든다.
수종이 얼이 빠진 모습에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억울함이 담겨있다. 하지만 사건이 처음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수종은 자신의 가족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처남 김균(김남길)이 리얼캐피탈의 정체를 파헤치다 자신의 앞에서 살해당했음에도 그 사실을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 어디 그뿐인가. 수종은 개발 사업이 시작되자 리얼캐피탈과 적극적으로 결탁해 개발 이후의 수익까지 배당받을 계획을 세운다. 이 모든 것은 수종에게 벌어진 우연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처음부터 적극적인 범죄의 방조자였고, 자기 건물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범죄 공모자였으며, 더 많은 차익을 남기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투기꾼일 뿐이다. 작품 또한 얼떨결에 건물주가 되어 고생하는 수종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를 연민하거나 두둔하지 않는다. 수종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을 수용하는 것은 온전히 수종의 의지였다. 그렇게 생존을 위한 발버둥으로 묘사되던 수종의 많은 선택은 극 후반에 이르러 결국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업보로 돌아온다.
수종의 운명을 보고 있으면,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농부에겐 농사를 지을 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검소한 소농 파홈은 마침내 자신의 땅을 갖게 되지만, 욕심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땅을 넓히며 가족, 이웃들과 갈등을 겪는다. 그러다 한 유목민이 파홈에게 1,000루블만 내면 파홈이 밟은 땅을 전부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단,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돈과 땅을 모두 잃는다는 조건으로. 욕심에 눈이 멀어 너무 멀리 나간 파홈은 해가 지기 직전 사력을 다해 돌아오는 데 성공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둔다. 결국 그에게 주어진 땅은 2m가 전부였다.
이 작품의 제목은 왜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일까. 여기엔 건물주로서의 안정적인 성취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작가는 ‘건물주’가 된다는 상상 자체가 인간성을 상실하는 과정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노동만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결국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무마하기 위해 도덕적 타락을 거듭한다. 수종이 맞이한 파국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결국 그것뿐이다. 사람은 모두 욕망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이 우리의 인간됨을 파괴할 수 있다고. 그러니 그 막을 수 없는 선택의 굴레에 갇힐지언정, 다시 인간의 길을 찾아가려는 집념만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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