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손 내미는 노래[꼬다리]
2026.04.17 14:55
간만에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들이 내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악뮤(AKMU)와 한로로. 음원 순위에서도 최상단에 있는 이들이니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악뮤는 정규 4집 <개화>를 발매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동생 이수현이 우울과 대인기피증, 폭식증 등을 겪었다는 걸 덤덤히 밝혔다. 이찬혁이 그를 감정의 늪에서 꺼내기 위해 어떻게 함께했는지를 기록한 홈비디오 형식의 미니 다큐멘터리도 공개됐다. 함께 살며, 운동하며, 순례길을 걸으며…. 이수현을 찍는 카메라에는 그가 짜증을 내기보다 웃는 모습이 점점 더 담긴다.
우리는 순간 스친 표정 하나로도 사람을 재단해버리곤 한다. 연예인을 평가하기란 더 쉽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마음이 한때 병들었음을, 곁에 있어준 사람들 덕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이수현의 용감함이 놀랍고 아름답다.
이 특별한 남매의 이야기는 우울을 겪고 있거나 겪어낸 사람에게도, 그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에게도 ‘내 이야기’ 같다는 보편성을 갖는다. 내 경우에는 지켜보는 쪽에 있던 나의 20대 중반이 생각났다. 우울증이 감기처럼 흔하다는 걸 알게 된 시기였다. 멀고도 가까웠던 A를 이유도 모른 채 떠나보내기도, 그로 인해 가라앉던 B를 대책 없이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C가 털어놓은 불안 증상에 같이 눈물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때가 있었다.
A는 떠났지만, 다른 이들은 어찌어찌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이찬혁이 작사·작곡한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처럼 그 슬픔까지 긍정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들 삶의 새 챕터를 살아가고 있다. ‘우울’이라는 의제도 내 삶에서 자연히 멀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울은 만연한 문제라는 걸, 한로로의 노래를 들을 때 느낀다. 아니, 한로로의 지난 2월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시상식 수상소감을 듣고 느꼈다. 인기곡 ‘0+0’이 수록된 그의 지난해 EP <자몽살구클럽>이 한로로가 직접 쓴 동명 소설과 함께 발매됐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죽고 싶은 아이들의 살구(살고) 싶은 이야기’가 주제라는 것도. 하지만 국문과 출신 싱어송라이터의 독특한 시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대음 ‘올해의 음악인’으로 호명된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나는 그의 진심을 믿게 됐다. 한로로는 말했다. “<자몽살구클럽>을 만들게 된 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썼습니다. 그로 인해 정말 살고 싶어졌다는 반응을 접하면서 ‘나 계속 음악해도 되겠다’는 용기와 힘과 사랑을 얻었습니다.” 평소에도 즐겨듣던 곡 ‘0+0’의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라는 가사가 내 안에서 다른 맥락을 입는 순간이었다.
우울을 겪는 사람도 그들이 잘못될까봐 동동거리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나도 그중 하나였다”고 손 흔들며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 요즘이다. 마음을 건넨 가수들과 그의 노래들이 힘껏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기쁘다. 이 노래들이 구석구석 닿기를,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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