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집착하는 美中…실속 챙기는 일본 [강양구의 ‘사이언스 인사이트’]
2026.04.17 21:01
(1) 반세기 만의 귀환, 다시 뜨거워진 달
매경이코노미는 이번 주부터 새로운 칼럼 ‘강양구의 사이언스 인사이트’ 연재를 시작합니다. 필자인 강양구 작가는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일하며 과학기술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저서로는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과학의 품격’ 등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을 통해 과학계의 다양한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
“반세기 만에 달로 향하는 인류…아르테미스 2호 발사”.
지난 4월 1일 오후 6시 35분(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네 명의 우주인을 태운 ‘아르테미스 2호’ 로켓 발사 직후 전 세계 언론이 전한 소식이다. 이들은 열흘 일정으로 달 가까이 접근했다가 지구로 돌아왔다. 특히, 이번에는 지금까지 관찰하지 못했던 달 표면(뒷면)을 직접 우주비행사의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은 ‘반세기’에 눈길이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 인류는 지난 54년간 달에 사람을 보낸 적이 없다. 자연스레 질문이 뒤따른다. 반세기가 넘도록 인류는 왜 달에 눈길을 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갑자기 다시 달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1969년 7월로 가야 한다.
그리니치 표준시 1969년 7월 20일 20시 17분 40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호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 6시간 후,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을 밟았다. 암스트롱이 달을 밟자마자 했던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뛴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고 나서도, 미국은 다섯 차례 더 달에 사람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달을 밟은 이들은 1972년 12월 11일 달에 착륙한 아폴로 17호의 우주인이다.
1972년 12월 14일, 아폴로 17호가 달을 떠나고 나서 무려 54년간 인간 가운데 누구도 달을 밟은 적이 없다. 유인 달 탐사가 반세기나 멈췄던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여섯 번이나 달에 다녀왔는데도 정작 그것에 상응하는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아폴로 11호 외에는 다섯 번의 달 방문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대중의 관심도 갈수록 식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약 3년간 이뤄진 유인 달 탐사는 애초 그럴 운명이었다.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1957년 10월 4일),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1961년 4월 12일) 등의 타이틀을 모조리 냉전 상대국이었던 소련에 빼앗긴 미국은 1961년 5월 당시 존 케네디 대통령이 나서서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미국인’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1960년대 유인 달 탐사에 쏟아부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폴로 계획에는 그때 돈으로 240억달러가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에 미국이 국운을 걸고 추진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계획에 20억달러가 든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노력 끝에 암스트롱은 1960년대 끄트머리에 감동적인 ‘쇼’의 주인공이 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우주 개발에서도 소련을 이겨냈다는 상징적인 자부심도 가져올 수 있었다. 달에 미국인을 보내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나사(NASA)도 우주 개발을 상징하는 기관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단 ‘최초’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나니, 유인 달 탐사는 들어간 비용과 노력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사실이 하나둘 드러났다. 1970년대 미국 경제 사정이 나빠진 것도 한몫했다(스태그플레이션). 심지어, 세 번째로 달로 향하던 아폴로 13호는 사고로 6일 만에 지구로 되돌아와야 했다. 기적처럼 모두 생존해서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아폴로 13)의 소재가 됐지만, 미국 정부와 나사 처지에는 아찔한 사고였다.
21세기 우주 레이스: 머스크, 중국, 나사
결국, 미국 정부와 나사는 아폴로 17호를 끝으로 유인 달 탐사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렇다면, 반세기 만에 유인 달 탐사 계획이 부활한 까닭은 무엇일까?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스페이스X’ ‘중국’ ‘도널드 트럼프와 나사.’
1960년대와 달리 우주 개발은 더는 미국 정부나 나사가 독점하는 모습이 아니다. 우선, 일론 머스크의 민간 우주 개발 기업 ‘스페이스X’의 활약이 돋보인다. 알다시피,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장기적으로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도발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미국 정부나 나사 처지에서는 최소한 스페이스X와 보조는 맞춰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아르테미스 2호의 핵심 임무 두 가지가 그 속사정을 보여준다. 첫째 나사가 개발한 심우주(사실상 화성을 향한) 탐사 발사체 SLS(Space Launch System) 성능 검증, 둘째 장기 우주여행에서 암을 유발하는 우주 방사선 피해 규명이다. 화제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우주 방사선은 외계인 ‘로키(Rocky)’ 동료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중국도 문제다. 미국이 유인 달 탐사에 거리를 둔 사이 중국의 무인 탐사선이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하고(2019년 1월), 달 뒷면의 토양 표본도 채취했다(2024년 6월). 중국은 이런 무인 탐사에 이어 2030년까지 ‘중국인’의 달 착륙을 목표로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이번에 굳이 달 뒷면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목표가 붙은 이유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시대 나사의 존재 증명 욕구도 빠트릴 수 없다. 냉전 이후 1990년대부터 우주 개발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나사는 그 위상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나사 예산을 약 24%나 삭감하려고 한 시도는 결정적이었다. 나사가 다시 유인 달 탐사에 매달리는 또 다른 이유다.
강대국은 달, 일본은 소행성…한국은?
아르테미스 2호는 이번에는 달 뒷면을 스쳐 지나간 뒤 지구로 곧바로 돌아온다. 달에 착륙하는 일은 2028년 상반기 예정된 아르테미스 4호에서 시도한다. 우주 개발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중국이 그 전이라도 유인 달 탐사에 나설 수도 있으니, 이런 경쟁도 앞으로 관전 포인트다.
달을 향한 국가들의 시선이 치열한 가운데, 조용히 다른 길을 걷는 나라가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켜 간 최신 뉴스를 하나 짚자. 지난 3월 17일 일본의 ‘하야부사 2호’가 소행성 류구에서 가져온 토양 표본에서 지구 생명체의 근간인 DNA와 RNA를 구성하는 다섯 개의 염기가 발견된 사실이 과학계에 정식 보고됐다. 지구 생명의 근원을 따져 묻는 흥미로운 발견이지만, 대중의 관심은 미미했다.
뜻밖에도, 미국이나 중국 못지않은 과학기술 강국 일본은 유인 달 탐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신, 일본은 태양계의 소행성에 관심을 가지며 계속해서 ‘가성비’ 좋은 무인 탐사선을 보내고 있다. 일종의 우주 개발의 틈새 전략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 일본의 속내가 간단치 않다.
소행성은 지하자원, 특히 지구에서 분쟁의 대상이 되는 희토류 매장량이 풍부하다. 오죽하면, 소행성 지하자원을 탐사해 어느 시점에 채굴해서 지구로 가져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우주 자원 개발 스타트업이 등장할 정도다. 한국처럼 지하자원 매장량이 적은 일본이 겉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이런 소행성 지하자원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최후의 우주 개발 승자는 달에 집착하는 미국이나 중국도, 화성에 집착하는 머스크도 아니라, 실속 있게 소행성 탐사에 주력하는 일본일 수도 있다. 우주 개발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한국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달에 집착하고 있다. 나라면 명분은 화려하나 실익이 부족한 ‘달에 태극기 꽂는’ 쇼보다는, 일본처럼 실속을 챙기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5호(2026.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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