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고아라
고아라
‘고아원’의 그 아이는 왜 언제나 거짓말을 했을까요? [안녕 진화위㉖]

2026.04.17 14:12

안녕 진화위㉖
수풀원에서 신림원까지, 한민우 고아권익연대 정책국장과 함께
한민우 고아권익연대 정책국장이 14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안녕’은 작별이자 환영의 인사다.

5년간 과거사 조사기구로 활동해온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지난해 11월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월26일 제3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했다.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시작된 ‘안녕 진화위’는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 나서는 부정기 연재물이다. 과거사 조사와 규명에 진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3기 여정의 의지와 기대를 담는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내 죄 아닌 내 죄에 얽매여/ 낙엽처럼 떨어진 한목숨아/ 가시밭길 헤치며 지켰다/ 상처뿐인 청춘엔 피눈물 장마/ 아 눈을 보면서 외치고 싶어라/ 아아 누구의 잘못입니까.”

고아 사업가의 좌절을 다룬 1967년 영화 ‘상처뿐인 청춘’(감독 이명훈, 주연 신성일)의 주제가 가사다.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으로, ‘고아’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져온 이 노래는 가수 최희준이 불렀다.

누구나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고아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고, 국가의 방임 속에서 고립됐다. 시설 입소 또는 입양의 운명 앞에서, 고아는 불행하고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낙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고아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고아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3기 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렸다.

한민우(46) 고아권익연대 정책국장을 14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설 퇴소 회원’이 500여명에 이르는 고아권익연대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아동양육시설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단체다. 2018년 창립 당시 고아들의 뿌리 찾기로 시작해 자립준비청년과 취약계층 퇴소인들을 위한 정서 및 긴급 생활 지원, 인권증진 정책 연구 등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26일 3기 진실화해위 출범 첫날 아동양육시설의 옛 이름인 ‘고아원’, ‘보육원’에서 당사자 50여명이 당했던 인권유린 실태를 모아 진실규명 신청서를 냈다.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에 고아권익연대 회원들이 서울 용산가족공원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프랑켄슈타인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창조주에게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냉대받으며 점차 괴물로 변해간 프랑켄슈타인처럼 고아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희생양이며 사회적 낙인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고아권익연대 제공

한민우 국장도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중증 청각장애인이었던 부모의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양평의 ‘신망원’이라는 보육원에 입소했다. 고교 졸업 뒤에야 시설에서 나와 20여년간 건강식품 영업사원, 텔레마케터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6년 전부터 사회복지사로 안착했다. 한국방송통신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사 1급과 직업상담사,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성을 닦은 덕분이다. 서울 강서구 늘푸른집 등 장애인 지원시설 및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에서 일해온 한 국장은 같은 보육원 1년 후배인 조윤환(45) 고아권익연대 창립자 겸 대표로부터 “보람있는 일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지난해 6월부터 이 단체로 옮겼다. 정책국장이라는 직책에 대해서는 “정책도 다루지만 주로 ‘아스팔트’를 담당한다”며 웃었다.

보건복지부의 2025 보건복지통계연보를 보면, 2024년 현재 전국 아동양육시설의 수는 239개이며 입소자는 8609명이다. 2014년과 비교할 때 시설 수는 242개로 거의 차이가 없으나, 입소자는 1만3437명에서 대폭 줄었다. 한민우 국장은 “6·25 전쟁 이후 부모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구호 성격으로 출발한 ‘고아원’이 1980년대엔 교육과 보호 기능을 앞세워 ‘보육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2000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수용중심 복지시설을 아동양육시설·아동상담소·단기보호시설 등으로 분류해 양육과 함께 일시·단기보호 및 치료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고 변천사를 설명했다.

한민우 국장이 다닌 ‘보육원’은 아동수용시설이라 할 선감학원 등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도 종교적 이유나 시설의 여러 사정으로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이전 수용시설과 마찬가지로 성폭행·폭력·강제노역 등 아동학대가 빈번히 일어났다”는 게 한 국장의 이야기다. 그는 수풀원(이사벨 보육원), 오류마을, 신림원, 제천영육아원, 구세군 서울후생원 등의 시설 이름을 댔는데, 대부분 낯설었다. 어쩌면 3기 진실화해위 조사와 진실규명 과정을 통해 앞으로 자주 접하게 될 이름이 될지도 모른다. 아동 수용시설 덕성원·동명원 등이 2기에서 처음 알려졌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기도 시흥군(현 시흥시) 소래면 옥길리에 있던 수풀원(이사벨 보육원) 원생들의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 진실화해위는 언제 처음 알게 됐나요?

“2기 활동 종료를 앞둔 작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전에는 진화위를 주로 민주화운동 유공자나 6·25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된 국가폭력 피해를 다루는 기관으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영화숙·재생원 등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아동양육시설 생존자들의 시설 입소 경위와 피해 사실이 여타 국가폭력 피해 사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부산의 덕성원과 경기도 시흥의 수풀원 피해자들을 고아권익연대가 지원하게 되면서 진실화해위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 고아권익연대에서는 3기에서 몇 명이나 진실규명을 신청했나요?

“현재 5개 시설에서 70여명이 신청을 마쳤어요. 신청 기간에 지속해서 시설 피해자들에게 홍보하고 지원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미아로 발견되었는데도 원가족을 찾아주려는 노력 없이 시설에 강제 입소된 경위, 그리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관리·감독을 받는 인가·미인가 시설 내에서 이루어진 강제노역·착취·폭력·성폭력 등 아동학대 피해가 핵심입니다. 국가가 아동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 명확히 규명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 피해자들에게 진실화해위에 대해 홍보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시설에 맡겨져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았지만, 다 내 잘못이고 누구에게 따질 수 없다고 오랜 시간 여겼던 분들이, 시설에서 인권침해를 당해온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피해자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어요. 반면 시설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생활하셨거나 시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신 분 중에는,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을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사람’ 혹은 ‘금전적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폄훼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 아동양육시설 인권침해와 관련해 국가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감독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아동들이 인권침해를 겪었다는 것은 국가의 관리 소홀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국가 전체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어요.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동양육시설 피해자들은 이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조차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는 국가가 가족 기능을 대신하는 보호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한 것이에요.

특히 국가는 아동이 신체적·정서적으로 안전하게 성장하고, 자신의 권리를 알며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가집니다. 이것은 가정이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것처럼, 국가도 그 역할을 대신할 때는 동등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따라서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합당한 배상을 제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약속뿐 아니라, 아동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존중받는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해요.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개인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건강한 사회를 구축하고 성숙한 미래 세대를 양육하는 일입니다.”

서울 구로구 오류2동에 있던 오류마을 원생들의 과거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서울 구로구 오류2동에 있던 오류마을 원생들의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 아동양육시설에서 겪은 본인 체험도 있을 텐데요.

“시설에서의 생활은 매우 기계적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이해를 구하는 과정 없이, 그저 따라야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주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적응이 느리거나 이해가 부족한 아동들은 ‘부적응자'라는 또 다른 낙인이 찍혀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학년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기합을 당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이는 생활지도원들의 묵인 아래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반복됩니다. 억압된 아동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그 안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냅니다. 성폭력도 그래요.

제가 있던 시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목욕하는 날이 있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이 뜨거운 물만 가득 채운 탕 안에 아이들을 강제로 집어넣고 머리만 내놓게 한 뒤 나오지 못하게 괴롭히곤 했습니다. 20여 분이 지나면 호흡이 어려워져 쓰러지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때서야 한 명씩 탕에서 나올 수 있었죠. 그리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비극적인 순환이 반복되었어요. 고아권익연대에서 활동하며 여러 시설 사례를 접하다 보면, ‘그나마 나는 괜찮은 편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서울 관악구신림1동에 있던 신림원 원생들의 1970년대 말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 ‘고아’라는 말을 단체 이름에 썼어요.

“고아라는 말은 과거 전쟁과 기아 등으로 가족을 잃은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으나, 90년대 이후 좀 더 적절한 표현을 찾고자 ‘보호아동’, ‘자립준비청년’ 등 여러 용어로 변천되어 왔습니다. 또 과거에는 시설 아동 대부분이 가족이 없는 경우였는데, 시설 내에서는 이를 '생고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90년대 이후로는 미아 찾기나 유기·방임에 관한 법들이 강화되면서, 부모가 있음에도 여러 이유로 시설에 맡겨지는 아동이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시설 내에서도 부모 유무에 따른 차별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마치 흑인들 사이에서 ‘니거’(nigger)라는 단어를 서로 농담처럼 사용하듯, ‘고아’라는 표현도 시설 내에서는 당사자들끼리 가볍게 썼습니다. 그러나 시설 출신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지죠.

단체 이름을 ‘고아권익연대’로 정했을 때, 행정기관에서 난색을 보였고, 내부에서도 이름을 변경하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고아라는 표현이 지금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고수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가족 구조의 변화, 1인 가구의 증가, 가족 해체, 고립 가구, 고독사 등 사회 변화로 인해 ‘고아’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가족이 있어도 소통 없이 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마음을 닫고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회적 고아’가 가장 많은 시대가 아닐까요?”

경기도 시흥에 있던 수풀원(이사벨 보육원) 원생들의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경기도 시흥에 있던 수풀원 원생들의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인권침해 사례 중 ‘수풀원’이 가장 심각하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경기도 시흥군(현 시흥시) 소래면에 있던 수풀원(이사벨 보육원)은 한국복음선교회의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여성아동시설이었어요. 문제가 생긴 것은 한국인 목사가 시설을 물려받은 1970년대와 1980년대입니다.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학대와 억압이 자행되었습니다. 심지어 중학교 다니는 여자아이들을 고관대작 집에 가사 도우미로 보내기도 했고, 그곳에서 성적 학대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오랜 세뇌와 억압으로 인해 도움을 요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한두 분씩 용기를 내어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거대한 종교 기관으로 성장한 시설 측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위협했다고 합니다.”

― 고아권익연대 회원 중에도 수풀원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분이 있나요?

“현재 네분이 진실화해위에 저희를 통해 진실규명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설의 총무가 옷을 모두 벗겨 구경하거나 성추행을 했고, 중학교 때부터는 밤마다 방으로 불러 안마를 시키고 성추행을 했으며, 거부할 경우 심한 폭행과 감금을 당했다고 해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학 대신 본인 뜻과 무관하게 식모로 보내졌다고도 하고요.

초등학생 때부터 유리공장과 섬유공장에 강제로 보내져 노동 착취를 당한 분도 계세요. 음식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항상 배를 곯았으며,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생쌀이나 개밥을 훔쳐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생리용품조차 지급되지 않아 신문지로 대신했다는 말씀을 하시고요. 19살에 강제결혼한 사례도 있어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인데도, 피해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환경 속에서 매일같이 폭행과 성폭력 등 심각한 학대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서울 구로구 오류2동에 있던 오류마을 원생들의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서울 구로구 오류2동에 있던 오류마을의 1989년 모습. 고아권익연대 제공

― 그 밖에 시설 인권침해 의심 사례는 어떤 곳들이 있나요?

“서울 구로구 오류2동에 있던 오류마을에서는 폭행 등 학대행위가 많았어요. 남자아이들도 선생이나 선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합니다. 본인이 원치 않는데 용인에 있는 농장으로 보내져서 강제노역을 당했고요. 이번에 10명이 신청했어요. 서울 관악구 신림1동에 있던 신림원은 밥도 제대로 안 줬고 원장과 총무의 횡령 및 학대 행위가 있었어요. 강제노역도 해야 했고요. 충북 제천시 고암동에 있던 제천영육아원의 경우는 피해자들의 성이 모조리 백씨입니다. 시설을 만든 선교사가 자기 이름에 화이트(White)가 있다고 해서 원생들을 모두 백씨로 만들었어요. 그 밑에 있던 한국인 원장은 원생들을 굶기고 방에 가두곤 했습니다. 말을 안 들으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약을 먹였고요.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었던 구세군 서울후생원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악기 연주훈련을 7~8시간 억지로 시키고, 못하면 폭행하고 따돌렸다고 말하는 제보자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개골에 금이 갔다고 하고요.”

― 현재에도 전국 각지에 아동양육시설이 많은데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입니다. 우선 집단양육시설이 구조적으로 갖는 한계는 제도적 보완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워요. 발달 시기 아동의 개성과 개별 학습 과정을 존중하려면, 소규모 그룹홈이나 공동생활가정과 같은 가정친화적 형태, 또는 위탁가정 등 다양한 대안 양육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이미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하고, 민간 입양을 국가책임제로 전환하여 시행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획기적인 정책 변화와 충분한 재정 투입이 더 필요합니다.

특히 연 1회 이루어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정기 감사가 단순한 행정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아동복지 전문가 또는 현장 활동가로 구성된 외부 기관이 아동과 심층 면담을 실시하고, 후원금과 운영 보조금 등 회계 감사 역시 지역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을 통해 철저히 이뤄져야 합니다. 최근에는 아동 통제를 목적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약 같은 향정신성 약물이 사용되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어요. 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약물 의존 상태가 지속되었다고 해요.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을 시설 종사자로 뽑는 문제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3교대로 일하는 시설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이 시급해요.”

한민우 고아권익연대 정책국장이 14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언제나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가 있었어요. 부모님은 외국에 있고, 언젠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는 상상을 품고 살아가는 아이였죠. 그 아이에게 거짓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패였어요. 또 다른 아이는 시설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고 늘 눈치를 살피며 과한 행동을 하곤 했어요. 아이답지 않게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몸에 배어버린 거죠. 그 시절 갈 곳 없던 아이들은 불안함 속에서 폭력과 성폭행 등 학대의 그늘 아래 늘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왜?’라는 질문은 사치였고,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과 과장된 행동은 그들에게 생존 본능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덧 50~60대가 되어버린 그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늘 가면을 쓴 채 자신을 방어하며 살아가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남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죠. 이제는 그들의 과거가 치유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요. 시대의 무관심과 방임 속에서 고통받았던 우리가 이제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남은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고아라의 다른 소식

고아라
고아라
5일 전
'응사' 고아라·정우, 얼마나 친하면…아내 김유미도 질투 안하는 13년 찐우정
고아라
고아라
6일 전
'36세' 고아라, 여전한 'SM 3대 얼짱' 미모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