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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도사린 음모론, 영리한 사람도 ‘이 상황’에선 빠진다

2026.04.17 17:54

[백우진의 심신 탐구]
세상은 드러나지 않은 세력이나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는 음모론은 우리를 솔깃하게 한다. 사진=Mangostar/shutterstock


미국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영상과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조작됐다.

미국 정부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찾아온 증거를 감추고 있다.

전 세계는 소수로 구성된 비밀결사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고, 신기한 스토리에 혹한다. 이는 우리가 음모론에 빠질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위에서 예시한 음모론들이 신봉자 그룹을 형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음모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재미에서 그치는 종류로, 위의 세 음모론은 대부분 '어때, 엄청 흥미진진하지?'에서 그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조작됐고, 백신은 사기다' '기후위기는 없다'와 같은 둘째 음모론은 사람들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이들 음모론은 건강한 현재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방해한다.

일단 우리는 잘 믿는다. 작은 사례 하나에서 시작한다. 다음 문장은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남긴 어록으로 오랫동안 인용됐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사람들은 믿게 된다."

생각해보자. 거짓말을 선전하면서 그 전략을 위와 같이 털어놓았을까? 일기가 아니라면 위 문장을 결코 공개적으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괴벨스는 일기에도 이 문장을 적지 않았다.

두 달 전, 한 기사에서 세계에 널리 퍼진 이 어록이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했다.(출처: '거짓말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거짓말, 한겨레신문, 2026.02.14.) 그러나 이 기사는 이와 비슷한 메시지가 선전 전략이 아니라 독일인을 선동하는 데 직접 활용됐다는 사실과 맥락은 살펴보지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인용문과 비슷한 말을 했다. 히틀러는 독일인을 대상으로 늘어놓은 장광설 《나의 투쟁》에서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욱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대중'은 히틀러가 괴벨스와 함께 세뇌하려고 한 대중이 아니라, (히틀러 생각에) 유대인이 퍼뜨린 거짓말에 넘어간 독일인이다.

히틀러의 음모론은 '이중'이었다. 그는 '유대인이 큰 거짓말(음모론)로 독일인을 속이는 바람에 독일이 1차대전에 패배했다'는 음모론을 퍼뜨렸다. 그의 이중 음모론을 직접 들어보자.

음모론의 극단이 주는 반면교사의 교훈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유대인들과 그들과 함께 싸우는 동지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략) 홀로 초인적인 의지와 정력을 보여주었던 바로 그 사람에게 몰락의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그 사람'은 독일 육군 참모차장으로서 군사독재를 하면서 전쟁을 이끈 에리히 루덴도르프를 가리킨다.

나치는 '유대인 음모론'을 바탕으로 세력을 얻었다. 달리 말하면, 1차 대전 패배 후 독일인은 모든 게 유대인 탓이라는 나치의 주장을 적극 지지했다. '등 뒤의 칼' 신화, 즉 독일군은 전장에서 용맹을 떨쳤으나 후방의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배신해 전쟁에서 패했다는 주장이 낙담한 독일인을 위로했다.

합리적이라고 자부한 독일인들이 어이없는 음모론을 신봉했고, 나치를 집권시켰으며, 광기가 홀로코스트로 치닫는 과정에서 적극 지지하고 가담했다. (이 과정을 전체적으로 따라가보면, 한나 아렌트가 내놓은 '악의 평범성' 주장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확인하게 된다.)

음모론에는 확실한 백신이 없다. 객관적으로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인 영리한 사람도 음모론에 빠진다. 음모론의 심리학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지능보다 성향이 음모론 감염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패턴 찾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한다.

음모론 중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종류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나치가 유대인을 지목한 것처럼 특정 그룹이 악의 원흉이라며 지탄하는 음모론은 권력과 결합하거나 권력의 묵인 아래 참극으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미국에서도 퍼졌고 한국에서도 확산됐는데, 국내에서는 중국 혐오와 결합했다는 점에서 경계 수위를 높여야 할 유형이다.

스트레스가 극심한데, 모르는 누군가를 탓하고 싶다면

심리학자 댄 애리얼리는 음모론을 분석한 책 《미스빌리프》에서 예측하지 못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사람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1차 대전 때 패배한 독일인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 부담에 짓눌려 있었다.) 이어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잘못된 믿음을 부추긴다고 경고한다. 그러다 잘못된 믿음의 중심에 악당을 두게 되는데, 애리얼리는 "인간은 예로부터 악당을 사랑해왔다"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끔찍한 현재 상황이 자기 탓이 아니라 특정 세력이 만든 결과라고 책임을 돌리고자 하는 심리 기제인 듯하다.

애리얼리가 다루지 않은 부분이 음모론의 상업화다. 인터넷 공간에는 오로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창작된 온갖 음모론이 넘친다. 그런 콘텐츠는 사회ㆍ정치적인 신념을 지닌 사람들로부터 기본적인 후원을 받는다. 관심을 끄는 마케팅 기법이 정교하게 구사된 음모론의 깔때기에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가섰던 사람들이 서서히 빠져든다.

사회ㆍ정치적인 음모론은 팬데믹 못지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음모론이 팬데믹보다 끔찍한 측면은 증오와 반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괴벨스의 어록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일단 쉽게 넘어간다고 봐야 한다.

스트레스가 심한가?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영국 태생 그래픽 노블 작가 앨런 무어의 다음 설명을 떠올려보라.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것은 그것이 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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