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서 '인생역전'…'넷플 1위' 영화 서울 배경인 이유 있었다
2026.04.17 10:00
"복원된 청계천에서 인도 청년 새 삶 시작" 영화 만든 인도 감독
'서울서 고교 생활하는 미국 소녀' 'BTS 광화문쇼'
뉴욕 대신 새로운 상상력 필요... "요즘 누가 미국 가고 싶어해?" 반작용 시각도
편집자주
격변의 시대, 세상은 곳곳에서 뒤바뀌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에서 그 역전의 순간을 포착해 사회·문화적 변화를 짚어 봅니다.'다시, 서울에서'.
이런 제목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부문에서 2주 동안 정상(3월 9일~22일)을 차지한 인도 영화의 주무대는 한국이다. 다음은 영화 속 한 주요 에피소드. 주인공 셴바(프리양카 아룰 모한)는 서울의 청계천에서 한국인 할머니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고 식당 개업의 뜻을 모은다. 셴바는 인도 남자 친구에 사기를 당한 뒤 인도에서 홀로 한국으로 건너와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외국인 청년(셴바)은 비틀거리는 삶을 고향이 아닌 서울에서 다잡는다. 재기의 첫 발을 왜 청계천에서 떼려 했을까.
"청계천은 복원된 곳이잖아요. 한때 사라졌지만 다시 물길이 났고요. 영화 속 주인공도 비슷해요. 과거 상처를 딛고 삶을 다시 일으키려는 상황이니까요. 청계천이 그런 (주인공의) 서사와 감정적 연결이 맞닿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다시, 서울에서'를 제작한 인도 감독 라카르틱은 최근 한국일보와 서면으로 만나 이렇게 답했다. 외국 감독이 서울을 소재로 도심 공간(청계천)의 정체성까지 극 중 인물의 성장에 녹여 영화를 만든 것이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어벤져스' 시리즈 등 외국 영화에서 서울은 '병풍'처럼 쓰였다. 단순 배경으로만 존재하다 글로벌 콘텐츠 이야기의 중심으로 올라선, 이른바 '서울의 역전'이다. 100% 해외 자본으로 제작된 '다시, 서울에서'는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쇼 넷플릭스 전 세계 생중계로 달아오른 한류가 새 양상을 맞고 있다. 한국의 공간적 특징을 고스란히 콘텐츠에 녹여 제작하는 사례가 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미국과 브라질, 인도 등에서 서울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 콘텐츠들이 최근 석 달 새 줄줄이 선보였다. 지난 2일 공개된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엑스오 키티' 시즌3에서 주인공인 미국 소녀 키티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로 유학 와 학창 시절을 보내고, 1월 공개된 브라질 넷플릭스 리얼리티 예능 '내 한국인 남자 친구'에선 브라질 여성들이 서울로 건너와 한국 남성들과 데이트한다. 모두 서울이 글로벌 콘텐츠의 주인공이라는 게 공통점. 그간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 주인공들이 로맨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드라마 '파리의 연인' 등)로 떠나거나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한 것(영화 '깊고 푸른 밤')과 정반대다. 요즘 한류 콘텐츠에선 외국인들이 서울로 와 이 도시에서 성장하고 도전하고 사랑한다.
이런 변화는 한류의 진화와 맞물려 있다. 일부 스타 연예인을 주축으로 한류 1.0 시대는 시작됐다. 그 열광을 바탕으로 한국의 식민지, 분단 역사 등 아픈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작품으로 세계 이민자를 위로(영화 '미나리'·드라마 '파친코' 등)하면서 한류 2.0시대는 개막했다. 이젠 한국의 현 공간적 특징을 부각하고 그곳에서 외국인의 경험을 콘텐츠에 담아 해외 제작사들이 세계로 퍼트리는 게 한류 3.0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다.
한류의 흐름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① '오징어 게임' 등의 세계적 흥행으로 K콘텐츠에 담긴 실제 한국의 공간과 그 속에서의 삶에 대한 관심이 해외에서 부쩍 높아졌다. ②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도쿄 같은 기존 대도시 대신 해외 창작자들이 서울을 글로벌 콘텐츠의 새 주인공으로 택하는 이유로는 새로우면서도 공감하기 쉬운 점이 꼽힌다.
'다시, 서울에서' 라카르틱 감독은 "제 고향(인도 첸나이)에 한국 음식점 스무 곳이 생겼고, 아내는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며 "한국 문화가 인도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지난 10년 동안 지켜봤고, 그 정서적 친숙함 때문에 뉴욕이나 도쿄보다 서울에서 성장담을 펼치는 게 더 진정성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기획 의도를 들려줬다.
지난달 미국에서 한국을 찾아 방탄소년단 컴백쇼를 광화문 광장에서 직접 지켜봤다는 그레이스 카오 미국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보에 "뉴욕은 너무 익숙하고 도쿄는 서양 사람들에 여전히 이국적이지만 문화를 통한 정서적 공감대 형성이 요즘 한국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며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뿐 아니라 K팝, K드라마의 세계적 유행으로 한국은 (세계인 마음속) 어디에든 있고, 변화무쌍한 도시 이미지 덕에 글로벌 창작자들이 서울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서울을 콘텐츠 허브(중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실제 서울에서 촬영되는 해외 작품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찍은 영화, 드라마 등 해외 작품은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더 비프' 시즌2 등 28개(서울시 집계)로, 10년 전인 2015년 17개보다 164%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류 3.0 시대로의 확장은 국제 정세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③대중문화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 대한 국제적 호감도가 떨어져 한국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일 '미국은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한국 문화는 어떻게 라틴 아메리카를 폭풍처럼 휩쓸었나'란 제목('The US is no longer the go-to place’: How Korean culture is taking Latin America by storm')의 기사를 냈다. "사람들 상상 속에 미국은 더 이상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니다"란 브라질 보건 장관 말을 인용해 '한국 등 아시아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반복되는 외교·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미국에 대한 피로감과 대조적이고 반작용 일 수 있다'는 주장이 실렸다.
한류의 확장성을 연구한 책 '팝 시티'를 미국에서 낸 오유정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아시아학부 교수는 한국일보에 "이런 변화는 글로벌 콘텐츠 생산의 중심이 더 이상 소수의 해외 전통적 도시들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문화·지리적 상상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서울이 글로벌 자본과 문화가 교차하는 '서사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라고 달라진 흐름을 짚었다.
서울이 글로벌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한류 지도'도 넓어지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사이 도심 속 산이 관광 명소 즉 '핫플(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것.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관악산, 북한산 등 국립공원을 찾은 외국인은 지난해 205만 명으로 집계됐다. 해외에서 입국해 이곳들을 다녀간 관광객만 과반(113만 명)이다. 방탄소년단이 2018~2019년 세계 순회공연으로 불러 모은 관객 수는 약 206만 명.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K팝 아이돌 못지않게 한국 도심 속 산에 외국인 인파가 몰렸다. 외국인 'K 등산족'의 등장이다. 접근성이 좋고 도심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게 서울 산들의 매력으로 꼽힌다.
K팝 공연이 아닌 아예 도심 속 산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적잖다. 노르웨이에서 사는 파벨 프로콧츠키는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아 한 달여간 '등산 관광'을 했다. 도봉산과 관악산 등을 다녀온 뒤 그 매력에 빠져 온라인에 '서울 하이킹 가이드'까지 올렸다.
알프스가 있는 스위스도 아니고 왜 한국을 등산 여행지로 택했을까. 파벨은 "평소 한국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온라인으로 서울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도심 한가운데 스카이라인에 보이는 산과 언덕 등이 흥미롭더라. 그래서 일부러 산을 보러 한국에 갔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기 전엔 모든 게 빠르고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인 줄로만 알았는데 도심 속 산을 오르며 평온함을 느꼈다"고 'K등산'의 매력에 빠진 계기도 들려줬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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