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경찰에 짓밟힌 10대 경찰 지망생... 성폭행 부실 수사에 유서 남기고 떠나
2026.04.17 13:45
피의자 불송치 결정에 결국 유서 남기고 세상 등져
안산 청소년단체·공대위 수사 시스템 규탄
재수사 및 성폭력 수사 시스템 개정 촉구지난해 12월 28일 안산의 한 주점에서 성폭행 피해를 입은 10대 여성 아르바이트생 A씨가 40대 남성 사장 B씨를 준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A씨는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B씨가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사건 발생 7시간 이후 측정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5%였다. 시간이 상당 부분 흐른 뒤에 측정했음에도 음주운전 면허 취소 기준(0.08%)보다 높은 수치였다.
A씨가 일하는 주점은 많은 학생들이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일하는 일반 음식점이었다. A씨도 주변 친구들의 추천으로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은 직원 회식이 있던 날로, 새벽 영업을 마친 사장과 직원들이 일터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회식은 이전에도 종종 진행됐다. 시간이 흘러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고, 만취 상태였던 A씨와 사장 B씨 단둘만 가게에 남게 됐다. 이어 A씨가 믿고 있던 일터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만 19세인 A씨는 경찰행정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이는 A씨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A씨는 근처 파출소로 달려가 끊긴 기억을 겨우 짚어가며 진술했다. 국가 정의에 대한 믿음을 지녔던 A씨는 경찰을 신뢰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경찰은 주점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 B씨 및 동석자의 증언을 토대로 "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했다"는 점을 들어, A씨가 항거불능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지었다. B씨가 제출한 CCTV 자료는 전체 8대 중 6대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중간 부분 7분가량이 삭제된 백업본인 데다, A씨와 B씨의 진술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이었음에도 경찰은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단 한 차례의 진술 조사만 진행한 뒤 서둘러 불송치 결정을 통보했다.
결국 A씨는 사건 발생 53일 만인 2월 18일 "저 대신 불송치 이의신청 좀 해주세요. 꼭이요. 마지막 부탁입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A씨의 뜻대로 지난달 16일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피해자 A씨는 더 이상 진술할 수 없었다. 경찰은 또다시 "B씨의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산의 꿈이었던 청소년, 안산이 짓밟았다"
안산시 청소년단체협의회 및 공동대책위원회는 17일 오전 안산 단원구 고잔동 안산단원경찰서 민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가해자의 주장과 일부 정황만으로 사건을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의심받았다.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수사는 한 청소년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경찰의 성폭행 수사 시스템을 규탄했다.
대책위는 오는 20일부터 안산단원경찰서 정문 앞에서 경찰의 책임있는 재수사와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옥희 경기탁틴내일 대표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나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 노동자라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권력의 사법적 사살"이라며 "수사 시스템은 40대 사장과 10대 알바생의 권력 격차를 완전히 무시했다. 경찰은 CCTV에 포착된 찰나의 장면만을 근거로 성관계 합의를 단정 지었을 뿐, 고용주의 압박과 공포에 맞서 청소년 노동자가 방어 기제로 지은 '사회적 웃음'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사건 직후 친구들에게 '성폭행 당했다', '죽고 싶다'고 보낸 절규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윤성원 가치있는 누림 대표는 "청소년 보호 체계, 노동 시스템이 한 청소년을 배신한 사건"이라며 △안산단원경찰서의 부실 수사 책임 인정 및 사과 △성인지 감수성 수사 즉각 도입 △담당 수사관 엄중 문책 △동의 없는 성관계 처벌법 즉각 개정 등을 요구했다. 김미숙 안산YWCA 회장은 수사과정 전반에 유족과 시민이 납득할 만한 외부 전문가 참여 등 제도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 노동자 당사자인 조성원씨는 경찰의 '피해자가 술자리에서 웃었으니 성폭행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어느 누가 갑인 사장 앞에서 인상을 찌푸리겠나. 경찰은 고용주의 힘을 정녕 알지 못하는가. '그럼에도 싫다고 해야지'라는 교과서적인 말로 피해자를 비난할 것인가"라며 "경찰은 피해자를 배려하고 보호한다는 이유로 소명 기회를 차단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일하고 있다. 고용주의 부당한 지시에도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달라"라고 했다.
전문가들, 국민 신뢰 저버린 '공권력의 실패' 일제히 지적
현장에 참석한 정선경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경기남부권역 대표는 여성신문에 "국민의 성인지 감수성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다.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가 숨지 않고 주체적으로 판단해 국가 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했다. 국가를 믿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라며 "공권력도 그에 걸맞게 '공권력이란 무엇인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함에도 부실한 시스템이 전면에 드러났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생명을 맞바꿔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이 정말 옳은 것인가"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정선경 대표는 앞선 발언을 통해 "CCTV 속 일부 장면, 행동만 짜깁기해서 '이상 없음'으로 결론 내리는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성폭력 수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왜 혼란스러워 하며 무너지는지, 그가 어떠한 권력관계와 공포 속에 있었는지 읽어내는 것"이라며 "이 사건에서 경찰은 피해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듣기보다 판단했고, 보호하기보다 배제했다. 그것이 수사의 본질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또한 경찰 수사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었다. 최란 부소장은 "과거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반복 진술을 요구해 2차 가해가 발생했던 사례들이 있었다. 이에 경찰 내부에 반복 진술을 제한하는 규칙이 생긴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경찰은 상반되는 진술에 대해 반드시 추가 조사를 진행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단 한 차례 진행된 초기 진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매우 높았고, 사건 직후의 충격으로 제대로 된 진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가해자의 주장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안일한 수사"라고 짚었다.
*성폭력·성희롱 피해 신고는 경찰청(☎112), 상담은 여성긴급전화(☎지역번호 + 1366)를 통해 365일 24시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뉴스 댓글란을 통해 성폭력·성희롱 피해자 대한 모욕·비하 및 부정확한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여성폭력방지법의 2차 피해 유발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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