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협상 막판 변수 ‘동결 자산’… 이란 “묶인 1000억달러 풀어라”
2026.04.17 00:53
미국과 이란 간 2차 대면 종전협상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의 제재로 해외에 묶여있는 이란의 동결 자금 해제 여부가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그간 핵무기 프로그램 제한,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역내 대리세력 지원 문제 등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에 몰려있는 이란이 동결 자금 해제를 협상 대전제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알자지라에 따르면 해외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자산 규모는 최대 1000억달러(약 147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 수준이자, 연간 원유·천연가스 수출 수익의 3~4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란 동결 자산은 전 세계 지역별로 흩어져 있다. 중국에 최소 200억달러를 비롯해 인도 70억달러, 카타르 60억달러, 이라크 60억달러, 미국 20억달러, 유럽연합(EU) 16억달러, 일본 15억달러 등이다. 이 자산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 대금을 상계(相計) 방식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각국에 묶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성 자산 외에 부동산과 투자 지분, 차명 계좌 등을 포함할 경우 전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한때 이란 자금 60억달러가 묶여 있었다. 석유·가스 수입 대금으로 이란에 지불했어야 하는 돈으로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분산 예치돼 있다가 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란 제재에 들어가면서 동결됐다. 하지만 이 60억달러는 2023년 9월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카타르 상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넘겨졌다.
최근 이란은 해외 동결 자산 문제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이란은 여러 차례 핵 협상을 이어왔지만, 동결 자산 문제는 다른 의제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이 지난 10일 자산 동결 해제를 협상 참여의 선제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다시 부각됐다. 이어 11일 1차 협상 직전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카타르에 있는 자산 60억달러 해제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백악관은 불과 1시간 만에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15일 “자산 동결 해제는 상대의 양보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 회복”이라고 밝혔다.
이란이 동결 자산 문제 해결을 미국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선 배경에는 붕괴 직전의 심각한 경제 위기가 있다. 고물가와 고환율, 인프라 노후화 등 구조적 위기가 누적된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이 자본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공습 빌미가 됐던 ‘반정부 시위 강경 진압’ 문제 역시 이 같은 경제 상황 악화에서 비롯됐다. 이때문에 경제 숨통을 틔우기 위해 동결 자산 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금성 자산이 단기간 내 투입 가능한 점을 들어 동결 자산 문제가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은 자산 해제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행을 연계해 협상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수십년간 이란과의 협상 과정에서 동결 자산을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는데, 1981년 지미 카터 행정부는 미국인 석방을 대가로 동결 자산 일부를 해제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를 통해 동결 자산 상당부분을 풀어줬다. 2023년에도 미국과 이란은 각국 포로 5명을 교환하는 협정을 체결했고, 미국의 승인에 따라 한국에 묶여 있던 60억달러를 카타르로 송금할 수 있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내 강경파들은 동결 자산이 해제될 경우 미사일 개발 또는 중동지역 테러단체 지원자금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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