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칼럼] 사이다 발언, 그리고 ‘오목-명인론’
2026.04.16 17:38
지난주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위를 비판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포스팅이 논란을 불렀다. 이스라엘의 호전적 무자비함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대다수도 분노한다. 무자비한 전쟁 상황을 목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반인권적 행위를 비판하는 포스팅에 실상을 왜곡한 가짜뉴스를 첨부·인용하는 실수를 하면서 논란을 불렀다. 이 대통령이 실수에 따른 문제를 정리하기보다는 강경 비판 기조를 이어가고, 오히려 그 포스팅에 대한 국내 비판을 역공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 외교적 실수라는 야당의 비판에 여당은 오히려 대통령을 ‘외교 천재’로 극찬하며 반격했다. 국내의 정파적 대결도 국익이 걸린 외교 무대에서는 멈춰야 한다는 당위론도 요즘 우리의 진영정치 앞에서는 공허하다. 야당의 비판에 대한 대통령의 맞대응은 급기야 오목 두는 초보자가 명인전에 끼어드는 꼴이라고 비판세력을 폄훼하는 ‘오목-명인론’으로 극단화했다.
대외전략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대통령의 권력 리더십이 위험해 보인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60%대 후반을 유지할 정도로 높은 데다가 야당이 자멸한 무소불위의 상황이 오히려 오만과 독단을 부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8년 전 경기도지사 당선자로 인터뷰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질문에 이어폰을 빼버리고 다른 인터뷰도 모두 취소하라고 호통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위탁받은 대리인”으로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따르겠다”고 취임 일성으로 다짐하며 국익 중심 실용을 강조했던 대통령이, 자신을 오목 두는 백성과 다른 명인이라 자처한 것은 권력 독주 환경에서 오만해진 실언으로 보인다.
상황에 대한 진단이나 대응에서 거침없는 직설적 발언이 이 대통령의 장점이었다. 이른바 ‘사이다 발언’이다. 습성화된 기득권 구조에 직설하며 맞서거나, 약자를 대변하는 용기있는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이다 같은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다. 물론 이런 사이다 발언이 통쾌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황을 과장한 일방적 공세가 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의 사이다 발언과 행보는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정치 역정에서 중요한 자산이었다. 비주류로서 성장해 온 배경과 대비되면서 돌파력과 개혁 이미지가 장점으로 더 부각됐다. 물론 집단을 대의하는 사람의 무조건적 돌파력이 장점만은 아니다. 자칫 독단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국가를 대표하는 리더는 이 대통령 스스로 강조해 왔듯이 ‘국익’과 ‘국민대표성’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제적 상호관계에서 국익을 챙겨야 하는 외교 행위는 매우 전략적일 수밖에 없다. 전쟁을 치르지 않는 한 직설적인 비판이나 공세가 쉽지는 않다.
국제무대에서 트럼프 같은 패권국 리더나 벼랑끝 전술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필리핀의 두테르테,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같은 포퓰리스트들이 직설적 대외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포퓰리스트적인 리더의 분위기 조성에는 한몫 했지만, 국제적으로는 득이 없이 고립만 초래했다.
우리의 경우,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좀 더 담백한 방식으로 제기해 볼 수도 있다. 에너지 대책을 고려한 전략이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잘못 첨부·인용된 가짜뉴스와 더불어 사이다식 포스팅이 본말을 전도시킨 측면이 있었다.
습성화된 기득 구조에 안주하지 않는 대통령의 돌파력과 사이다 발언은 여전히 장점이 있다. 다만 이제 스스로가 통렬하게 비판했던 그 권력자가 됐다. 권력은 독선적으로 지배하려는 속성이 있고, ‘백악관 버블’로 불리듯이 정보의 장막을 만든다. 국정 정보를 총괄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판자들의 논리가 엉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 우위의 독점적 위치가 곧바로 권력의 오만을 정당화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주적 리더십은 ‘정보 우위의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오목-명인론’을 펼치니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민주공화국의 리더십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자산이었던 통렬한 시원함은 이제 권력집단 내부를 향한 자기반성에서 발휘되어야 여전한 매력이 된다. 민주적 리더십은 명인의 신산(神算)이나 차르의 통치력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주권자의 불편한 질문 앞에 겸허하게 긴장하는 대리자라는 명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가짜뉴스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