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실제 사건 여파로 인해 발매 취소된 게임 TOP 5
2026.04.16 16:49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간혹 '억까'가 터진다. 게이머 입장에선 야침 차게 지른 가챠에서 극악의 확률을 뚫고 쓰레기 캐릭터만 계속해서 나온다던가, 보안에 신경썼는데도 내 계정만 연속해서 해킹당한다던가, 비싸게 주고 예약구매 한 게임마다 똥겜이라던가 하는 경우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불행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인 세계가 있다. 바로 게임이다. 야심 차게 만든 게임이 현실 속 사건에 휩쓸려 발매 취소, 혹은 무기한 연기된 경우들이 생각보다 많다.
게임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일찍이 만들고 있던 픽션이고, 대규모 테러나 자연재해 등의 사건은 게임 외 다른 콘텐츠에서도 많이들 활용하는 방식이니까. 그러나 이와 비슷한 실제 사건들이 터진다면 재미있는 설정은 순식간에 부적절한 콘텐츠가 되어버린다. 물론 그 중에는 감성과 여론 탓에 이성적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는 '억까' 판단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오늘 [순정남]은 사회를 뒤흔든 사건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거나 되돌아가야 했던 비운의 게임들을 모아봤다.
TOP 5.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 애플 앱스토어 남부연합기 삭제
2015년, 미국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사회를 뒤흔든 비극이었다. 범인인 21세 남성은 '인종 전쟁을 시작할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고, 남부연합기(구 남군 군기)를 들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까지 했다. 이전부터 남부연합기는 미국 내에서 알음알음 인종차별이나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돼 왔는데, 이 사건 이후 해당 깃발을 공공장소에서 퇴출시키자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이때 '정의의 사도'를 자처한 애플이 칼을 빼 들었다. 앱스토어에서 남부연합기가 들어간 게임들을 대거 삭제한 것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나도 '기계적'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에서 남부연합기는 한 세력을 상징하는 시대적 문양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이 고증에 철저했던 역사 전략 게임들까지 싸그리 스토어에서 삭제했다. '얼티밋 제네럴: 게티스버그', '헌티드 카우'와 같은 게임들이 이러한 정책의 피해자가 됐다. 이런 과한 조치엔 당연히 큰 반발이 뒤따랐고, 결국 애플은 '마케팅용으로 남부연합기를 두드러지게 노출하는 것만 금지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TOP 4. 동춘동 살인사건 - 단간론파 V3 국내 출시 거부
2017년, 한국 정식 발매를 앞두고 있었던 '뉴 단간론파 V3'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로부터 등급 분류 거부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를 받았다. 전작들에 비해 수위가 높아진 것도 아니고, 반국가적 사상이나 표현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 인천 동춘동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범인이 캐릭터 커뮤니티에 빠져 있었다는 소식이 공중파를 통해 전해졌고, 이 커뮤니티 주제가 단간론파였다는 미확인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퍼졌다. 당시 게임위는 해당 사건과 등급 분류 거부는 관계가 없으며, 게임법과 청소년보호법 등을 이유로 들며, 범죄심리와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어 출시 거부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후 여명숙 위원장은 당시 동춘동 살인사건을 다룬 공중파 방송으로 인한 여론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공개된 심의 회의록에서는, 이러한 고민조차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심의 회의의 민낯이 명명백백 밝혀졌다. '인천 사건'이나 방송 프로그램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위원들은 "게임이 기분 나쁘다", "세뇌당할 것 같다"는 식의 주관적인 감상평만 늘어놓으며 등급을 거부했다. 사회적 비극을 핑계 삼아 자신들의 삐뚤어진 인식을 강요한 셈이다. 현실의 사건이 게임을 막은 게 아니라, 사건을 이용해 게임 하나를 한국 시장에서 매장해 버린 씁쓸한 사례다.
TOP 3. 절체절명도시 4 - 재난 생존 게임을 덮친 진짜 재난
재난은 예로부터 소설, 연극, 영화, TV 등에서 자주 쓰인 소재다. 당연히 게임에서도 재난 상황을 다룬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이런 게임들은 발매 시기를 잘못 맞추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무너지는 건물 사이에서 살아남는 생존 게임 '절체절명도시 4'의 원래 발매일은 2011년 3월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발매를 연기했는데, 그해 3월 11일.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난인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피해로 수많은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하고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후쿠시마 원전 주변이 죽음의 땅이 되어가는 마당에, "자, 이제 게임으로 지진을 체험해 보세요!"라고 홍보하는 건 사이코패스나 할 짓이다. 결국 개발사는 해당 게임의 발매를 전면 취소했고, 해당 게임의 주요 개발진이 독립해 세운 신생 업체를 통해 2018년에야 출시될 수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출시 취소 게임은 하나 더 있다. 레이싱 게임 모터스톰 시리즈다. 이 역시 지진과 자연재해로 초토화된 도시를 질주하는 게임이었는데, 결국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발매 취소, 그 외 국가들에서도 발매가 연기되고 말았다. 그 와중 한국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예정대로 발매된 것은 조금 웃픈 일. 이로 인해 모터스톰 시리즈는 막을 내렸으며, 후속작인 드라이브 클럽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TOP 2. 어드밴스 워즈 - 전쟁 게임의 주적은 현실의 전쟁
닌텐도의 귀여운 전략 게임 '어드밴스 워즈' 시리즈는 전쟁 탐지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01년, 시리즈 첫 작품이 북미에 발매된 다음 날 9.11 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유럽과 일본 발매가 무기한 연기됐다. 역대 최악의 테러라 불리는 사건 직후에 탱크와 폭격기가 도시를 부수는 게임을 내놓는 건 닌텐도답지 않은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무려 20년 뒤, 스위치로 제작된 리메이크판이 또다시 거대한 벽을 만났다.
'어드밴스 워즈 1+2: 리부트 캠프'는 당초 2021년 발매 예정이었으나, 개발상의 이유로 발매를 두 차례 연기해 2022년 4월 출시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매 두 달 전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또다시 연기됐다. 하필 게임 속 악당 세력인 블루 문이 누가 봐도 구소련 느낌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었던 데다, 스토리 시작부터 옆 나라를 침공하는 내용이었으니 닌텐도로선 기겁할 노릇이었다. 결국 전쟁의 포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1년 뒤에야 조용히 출시됐다. 이 시리즈는 다음 신작 낼 때 기도회+제사+굿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TOP 1. 전염병 주식회사 - 중국에서 '진짜 전염병' 취급
현실의 사건이 게임을 죽인 사례 중 가장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은 '전염병 주식회사'의 중국 퇴출 건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사람들은 이 정교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지 공부하며 공포를 달랬다. 덕분에 중국 앱스토어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순항 중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정부가 이 게임을 '불법 콘텐츠'로 규정하고 스토어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삭제 이유는 뻔하다.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를 풍자하듯 중국을 시작점으로 하고 병명을 코로나19로 짓는 플레이어가 많아졌고, 게임 속 정부는 전염병을 못 막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당시 중국 정부의 '완벽 방역' 선전과 배치됐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가짜 뉴스' 업데이트가 중국 당국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소문이다. WHO에서도 극찬했고 이전까지 잘 서비스되던 게임이 실제 전염병이 창궐하자 정치적 이유로 탄압받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결국 중국 게이머들은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전염병에 대해 입을 닫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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