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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병원비 간절했던 70대 어머니 1000만원 끝내 못받았다…법적 보호에 밀려난 AI부업 [AI시대 프리랜서 : 디지털 부업의 그늘②]

2026.04.16 15:46

A‘I시대 프리랜서 : 디지털 부업의 그늘
② 데이터라벨링 프리랜서 임금 체불 피해
정부 주도 AI 사업으로 중년 여성 다수 유입


AI는 단숨에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그 뒤에 남은 노동은 더 길어지고 복잡해졌다. AI 확산으로 노동 구조와 방식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프리랜서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AI 시대 프리랜서 노동의 그늘을 추적하고 사각지대를 메울 제도적 과제를 짚어봤다.


프리랜서 작업자가 데이터라벨링 작업을 하는 모습을 AI로 구현했다. [제미나이로 제작]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사이트가 닫혔습니다. 이제 제가 얼마나 일했는지도 확인이 안 됩니다.”

경기도 판교의 데이터 설루션 기업 에이모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 라벨링 업무를 했던 프리랜서 작업자 김모 씨는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업 내역과 정산 정보를 확인하던 플랫폼이 폐쇄되면서 자신이 수행한 업무 기록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김씨가 참여한 데이터 라벨링 작업은 정부 주도 AI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공정이다.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분류하고 라벨을 붙이는 이 작업은 사실상 프리랜서 노동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다. 수많은 작업자들이 산업 성장의 초기 단계를 떠받쳤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기본적인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에이모의 단체 임금 체불 문제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에서 처음 임금 체불 신고가 접수된 때는 지난해 5월이다. 정규직 직원들은 지난해 4월부터 4대 보험이 미납됐다. 회사는 재무 사정이 악화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임금을 받지 못한 재직자와 퇴직자들 중 일부는 지난해 6월 단체 고발에 나섰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회사 쪽에 “3월 14일까지 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검찰에 넘기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사건은 지난달 17일 검찰로 송치됐다. 오는 24일에는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에이모 대표 피해 사례


단체 임금 체불로 기소…방치된 프리랜서


데이터 라벨링은 AI 산업의 가장 하단을 떠받치는 작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 분야 역시 급격히 확대됐다. 2020년 디지털 뉴딜 정책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이 일을 디지털 일자리로 적극 홍보해 왔다. 현재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운영하는 AI 허브를 중심으로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와 고용노동부 역시 교육과 일자리 연계를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에이모는 정부 지원과 민간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2019년부터 6년 연속 정부로부터 AI 바우처 지원사업과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 공급기업으로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1위로 꼽힐 만큼 회사 규모가 컸고 수많은 프리랜서가 이곳을 통해 일감을 받았다.

그러나 산업의 기반을 형성한 노동은 여전히 프리랜서라는 이름 아래 방치돼 있다. 작업자들은 에이모에서 정식 계약서 없이 플랫폼 이용약관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일을 시작했고 임금 체불 이후에도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리랜서 작업자는 “AI 산업을 위해 데이터를 만들었지만 정작 우리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돈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회사가 파산하면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프리랜서 피해 인원·규모조차 파악 어려워”


AI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현재까지 확인된 임금을 받지 못한 프리랜서는 154명, 약 4억원 규모다. 재택근무 특성상 전국에 흩어져 있어 정확한 피해 인원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산 채널에 참여한 인원만 약 280명으로 소액 피해자와 숨겨진 피해자까지 더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 등 해외에서 비대면으로 업무에 참여한 프리랜서들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가 20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고 근로자들은 본다.

이 일자리는 진입 장벽이 낮고 시간 제약이 적다는 점에서 ‘디지털 부업’ 형태로 확산했다. 실제로 경력 단절 여성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주요 인력으로 유입됐다.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에이모 프리랜서 임금체불 피해 자료를 보면 여성 비율은 88.2%, 40대는 47.1%였다. 임금을 받지 못한 프리랜서 중엔 70대 여성도 있었다. 이들 상당수는 지자체 등에서 데이터라벨링 기본 교육을 받은 뒤 일자리를 구했다.

피해자들은 단순한 임금 지급을 넘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근로자 인정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임금 체불 상황이라도 정규직과 프리랜서의 처지가 크게 달라서다. 정규직과 달리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청을 통한 구제나 형사 절차를 활용할 수 없다. 사실상 민사소송이 유일한 대응 수단이다.

일부 작업자들이 지급명령을 신청했지만 회사 측이 형식적인 이의제기를 통해 민사소송으로 넘기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 프리랜서 피해자는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회사가 이의를 제기해 시간을 끌고 있다”며 “그마저도 결국 파산이나 회생 신청을 하면 돈을 받지 못하는 구조”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에이모 대표는 헤럴드경제에 “임금을 다시 지급하기 위해 투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회사 운영에 대한 작업자들의 우려와 관련해서는 “18명의 최소 인원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임금 지급을 위해 노력한 일들을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AI 발전에 직접 고용 감소…보호장치는 미흡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프리랜서·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1000명의 특별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


AI 산업의 확산은 고용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AI 개발에는 대량의 데이터 구축과 반복 작업이 빠른 속도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러한 특성상 기업들은 필요한 만큼 인력을 투입하고 즉시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선호하게 된다. 그 결과 정규직 고용 대신 프로젝트 단위로 프리랜서를 활용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인력을 쓰고 계약을 종료하는 구조다 보니 기업의 책임은 줄어드는 반면 노동자는 지속적인 고용과 보상을 보장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에이모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AI 산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에이모 프리랜서 피해자 단체는 “작업을 할 때 회사 소속 직원의 교육, 정해진 업무량, 슬랙과 팀즈, 단체카톡방 등을 통한 지시를 받아 일한다”며 “회사가 언제든지 해고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작업하면서도 여러 차례 말을 하기 때문에 갑자기 잘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일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네모난 상자를 물체에 그리는 작업은 단가가 적으면 5원, 많으면 130원 선에서 이뤄진다. 최저임금 선에 맞추려면 약 40초에 상자 1개를 그려야 가능하다”며 “회사는 작업자는 또 구하면 되니까, 5원이어도 한다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의 비정상적인 단가, 불합리한 요구로 인해 작업자들은 을로서 작업할 수밖에 없단 설명이다.

임창근 노무법인 도원 노무사는 “AI 산업이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고용 형태가 아닌 간접 고용 관계가 많아졌다”며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구조는 같지만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노무사는 “현행 노동법상 프리랜서에 대한 구제 수단이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노동 환경에 맞춘 입법 활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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