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모회사 씨앗서 나온 수확물, 경영자의 것?…하이브 사례 분석
2026.04.16 06:43
최근 법원이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에 대해 내린 가처분 결정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와 경영자의 충실의무에 대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법원은 민 전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배신적일 수는 있으나, 어도어에 대한 배임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배신'과 '배임' 사이의 간극은 현재 기업 경영 현장과 자본시장이 직면한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배신'은 되지만 '배임'은 아니다? 판결의 쟁점과 논란
가장 큰 논란은 계열사 대표가 경영권 독립을 모색한 구체적 정황이 발견되었음에도, 이를 '실행' 단계에 이르지 않은 '모의'로 판단한 대목입니다.
기업 인프라는 수많은 구성원의 땀방울과 주주들의 자본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계열사 대표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수탁자'이지, 이를 사유화할 권한을 가진 '특권층'이 아닙니다.
비판적인 측에서는 "실행 전 단계라면 경영권 탈취 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회사의 자원과 인력을 활용해 독립을 꾀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기업가치에 위해를 가하는 신뢰 관계의 파괴라는 지적입니다.
반면, 인적 자산이 핵심인 콘텐츠 산업에서 창작자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해묵은 과제 역시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아티스트의 도구화와 기업 가치의 훼손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무엇보다보호받아야 할 핵심 자산인 아티스트가 분쟁의 도구로 소모되었다는 점입니다.
뉴진스라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 아티스트가 경영권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그들이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와 활동의 연속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서적 피해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티스트의 활동 위축과 불확실성 증대는 곧 하이브라는 기업 전체의 '수익성 악화와 가치 절하(De-rating)'로 직결됐습니다.
콘텐츠 기업에 있어 아티스트는 기업 가치의 원천이며,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경영진이 오히려 갈등을 촉발해 자산 가치를 훼손한 것은 주주 입장에서 명백한 실책입니다.
◆상법 개정과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이번 사안은 최근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제382조의3 등)과 맞물려 주주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현재의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하고 있어, 이번 판결처럼 대주주인 하이브에 대한 '배신'이 자회사인 어도어에 대한 '배임'으로 직결되지 않는 법리적 공백이 발생합니다.
만약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된다면, 주주들은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더욱 강력하게 낼 수 있습니다.
첫째, 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직접 책임과 관련하여 특정 경영진의 독립 시도가 모회사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주가 등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면, 이를 이사의 의무 위반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업 기회 유용 방지와 관련하여 회사의 자본으로 일군 성과를 개인이 독점하려는 시도를 '기업 기회 유용' 관점에서 보다 엄격하게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거버넌스의 투명성과 관련하여 주주들은 경영진과 맺은 주주간계약이나 보상 체계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부합하는지 공개를 요구할 법적 명분을 얻습니다.
◆경영 윤리와 '공짜 사다리'의 함정
실력 있는 인재를 지원한 결과가 경영권 독립을 향한 갈등이라면, 자본시장의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비용과 리스크를 직접 부담하지 않고 모회사의 씨앗에서 발생한 수확물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의 본령에 어긋납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를 준 시스템에 감사하며, '내 것'과 '남의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법률 이전에 상식의 문제입니다.
결국 이번 하이브 사안은 법과 상식,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정신 사이의 괴리를 드러냈습니다. '배신적 행위'가 법적으로 면죄부를 받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기업 생태계의 선순환은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책임을 주주 가치 보호로 확장하고, 계약 관계에서의 신의성실 원칙을 더욱 구체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회사의 인프라는 누군가의 성공을 위한 '공짜 사다리'가 아니며, 주주의 자본은 결코 주인 없는 '공돈'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2, 제3의 성공 신화를 가능케 하는 거버넌스의 토대가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상법 개정이라는 흐름 속에서 경영진은 자신들의 결정이 아티스트라는 핵심 자산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시스템에 대한 존중과 주주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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