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에서 코스피까지… 전쟁의 무기가 된 경제 [박일근의 이코노픽]
2026.04.16 04:30
편집자주
다양한 경제, 산업 현장의 이슈와 숨겨진 이면을 조명합니다."엥~" 공습 사이렌이 울린 곳은 중동이었다. 그런데 경제적 피해는 아시아가 더 컸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틀어막자 유가는 치솟았고, 미국이 역봉쇄에 나서며 공급망엔 빨간불이 들어왔다. 전쟁에서 두 나라가 꺼내든 가장 강력한 무기는 드론도 미사일도 아닌 바로 ‘경제’였다. 호르무즈 봉쇄는 물가를 자극해 금융 시장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까지 흔들었다. 미국의 역봉쇄도 이란의 석유수출 자금줄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렇게 경제가 전쟁 무기로 쓰이며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가장 큰 피해국이 됐다. 외국인은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순매도 공세를 폈다. 한국 경제의 맨살이 드러난 순간이다. ‘전쟁의 경제학’이 바꾼 현대전 양상과 전쟁이 끝나도 이어질 경제 후폭풍을 점검하게 된 이유다.
1. 전쟁 최전선이 된 경제
경제적 우위나 지배력을 앞세워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방식은 오랫동안 미국의 전유물이었다. 금융 제재, 수출 통제, 관세 부과, 달러 결제망 차단이 구체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국제 질서가 재편되고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며 이러한 구도도 무너지고 있다.
전환점은 지난해 4월 미중 관세 전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관세를 145%까지 인상하자 중국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했다. 첨단 제품과 군수품 생산에 필수인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막아 조용히 급소를 찔렀다. 사실상 전 세계 희토류 공급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반격에 미국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나라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관세율을 낮추는 데에 합의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 삼아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뒤 관세 전쟁의 휴전까지 도출한 셈이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대규모 공습이란 군사 공격에 호르무즈해협 봉쇄란 경제 카드로 대응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깜짝 놀란 미국은 결국 휴전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첫 회담은 결렬됐지만 추가 협상 기대감이 크다. 이란은 군사적으론 미국에 대적할 수 없었지만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을 뒤흔들어 미국과 동맹국의 부담을 키우는 식으로 전장의 규칙을 바꿀 순 있었다.
이젠 미국도 군사력만으론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7월 워싱턴에서 일본 호주 인도 외교 장관과 함께 핵심 광물에 대한 공급망 확보와 다각화 협력을 모색했다. 경제의 무기화는 향후 국제 질서의 상수란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전략 경쟁, 각국의 산업 안보 강화 기조에 이미 글로벌 공급망은 분절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전쟁이 벌어질 땐 항공모함과 전투기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원유 광물 물류 금융 식량까지 모든 경제적 자원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경제는 이제 전쟁의 최전선이 됐다.
2. 한국은 왜 가장 흔들렸나
경제가 무기가 된 시대, 전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국가는 더 이상 전장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이 벌어진 곳과 경제적 연결 고리가 가장 깊은 나라가 더 위험하다. 이번엔 한국이 바로 그런 나라였다.
실제 한국은 에너지의 중동 의존도가 너무 높다. 100% 수입하는 원유 중 중동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70%나 된다. 뉴욕타임스가 2024년 국제 무역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중동 국가로부터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나라는 파키스탄(81%) 일본(57%) 태국(56%) 한국(55%)의 순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총 에너지 수입량은 170억 달러, 태국은 430억 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1,390억 달러, 한국은 1,440억 달러에 달한다. 중동발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휘청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의 총 에너지 수입량(4,130억 달러)이 더 크긴 하지만 중동 의존도(35%)는 훨씬 낮다.
더 난감한 건 수입선 다변화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정유 석유화학 설비는 중질유인 중동산 원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다. 경질유인 서부텍사스산 원유로 대체하는 게 쉽지 않다.
여기에 물류 취약성까지 겹쳤다. 중동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핵심 경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으로서는 에너지 조달 비용뿐 아니라 수출입 물류비용까지 뛰는 이중 타격을 받게 됐다.
금융 시장의 구조도 충격을 키웠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증시는 위기 시 현금화하기 가장 용이한 시장 중 하나다. 그동안 많이 오른 만큼 차익 실현 욕구도 컸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질 땐 신흥 시장(이머징마켓) 성격이 큰 한국은 우선적인 매도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환율도 외국인 이탈을 부추겼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 기준 수익률은 하락하게 된다. 한은과 정부가 1,500원대 환율을 용인하는 듯한 신호를 보낸 것도 이런 외국인의 매도세를 부추겼다. 물가가 들썩이며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한미 기준금리 차가 줄어들 것이란 기대도 사라졌다.
이러한 이유로 외국인은 지난달 코스피에서 36조 원을 순매도했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상무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석유화학이나 정유 등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의 비중도 높다”며 “유가 충격에 따른 한국의 성장률 영향이 독일의 5배, 일본의 2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고 밝혔다.
3. 가격 차 200배, 무기의 경제학
이번 전쟁은 누가 더 강한 무기를 가졌느냐보다 누가 더 적은 비용으로 상대의 비싼 자산을 흔들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전쟁의 새로운 문법을 보여줬다. 대표적 사례가 드론이다. 이란 샤헤드 자폭 드론의 가격은 대당 약 2만 달러(약 3,000만 원). 반면 이를 격추하는 데 쓰인 미국산 패트리엇(PAC-3) 미사일은 한 발에 400만 달러(약 60억 원)나 한다. 공격 무기와 방어 무기의 가격 차가 200배에 이르는 셈이다. 값싼 드론으로 상대의 고가 방공망을 소모시키는 전략은 상대의 전쟁 지속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린다.
이란은 중동 지역 미군 기지를 우선 겨냥하며 이런 비대칭 전략을 극대화했다. 고가의 레이더와 통신 시스템, 장거리 작전에 필수적인 공중급유기 등이 표적이 됐다. 미국은 손상된 장비를 바꾸는 데에 막대한 비용을 써야 했다. 보잉 E-3 센트리 조기경보기의 교체 비용은 대당 무려 7억 달러(약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개전 이후 미국의 전비는 빠르게 불어났다. ‘2주간의 휴전’이 발표된 지난 8일까지 미국의 총 전비는 420억 달러(약 63조 원)도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절대적인 군사력보단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기 마련이다. 군사적으론 우세해도 경제적으로는 불리해진다.
더구나 인공지능(AI)은 이러한 흐름을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인간의 명령이 없어도 목표물을 식별하고 공격하는 드론과, 인간 조종사가 탈 수 없는 속도와 고도로 자율 비행하며 공격하는 전투기를 개발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미 국방부의 AI 통합 시스템 ‘프로젝트 메이븐’은 드론 영상에서 우선순위에 따른 목표물을 찾아낸 뒤 가장 적합한 무기를 추천하고 연료와 탄약, 비용 등을 분석, 공격 계획까지 제시한다.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도 이러한 AI 시스템이 방대한 데이터를 수초 만에 걸러내 빠른 판단을 돕고 있다고 직접 강조할 정도다.
4. 전쟁이 끝나도 길어질 후폭풍
미국과 이란의 첫 휴전 회담은 21시간 만에 결렬됐다. 이란과 레바논에서 이미 5,000명도 넘는 희생자가 난 전쟁을 단숨에 끝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양측이 다시 만나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종전까진 갈 길이 멀다. 다행히 합의가 이뤄져 미국이 발을 빼더라도 주변 국가들이 과연 적대 행위를 멈출지도 미지수다. 만약 이스라엘이 계속 이란과 친이란 무장 세력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면 이란도 가만있을 순 없다. 이 경우 미국은 다시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정치적으론 종전이 가능해도 이러한 선언이 경제적 상처까지 봉합해줄 순 없다. 우선 이번 전쟁으로 중동 지역 정유 시설은 3분의 1이나 피해를 입었다. 바레인의 국영 석유회사는 시트라 정유 공장의 화재 이후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단지로 꼽히는 카타르의 라스라판 시설도 가동이 17%나 중단된 상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40개 이상의 핵심 에너지 시설이 손상된 것으로 집계하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공급 차질을 우려했다. 더구나 이를 복구하고 정상 가동시키는 데에는 적어도 몇 달, 길게는 2,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도 250억 달러(약 37조 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호르무즈해협이 당장 개방되더라도 국제 유가가 곧바로 떨어질 순 없다는 얘기다.
국제 유가 하락이 주유소 휘발유 가격에 반영되는 과정에도 시차가 생긴다. 휘발유 가격은 오를 땐 로켓처럼 빠르지만 내릴 땐 깃털처럼 느리다. 주유소는 비싸게 산 재고를 소진한 뒤에야 가격을 내린다.
충격은 에너지에 그치지 않는다. 식탁도 심상찮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식량가격지수(128.5)는 전달보다 2.4% 상승했다. 세계 2위 쌀 생산국인 베트남의 메콩강 지역에선 대형 정미소가 전기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멈춰 서기도 했다. 전 세계 비료 공급량의 3분의 1이 중동에서 생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농산물 전반의 가격 상승 압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거시경제 전망은 이미 하향 조정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4일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교란 등을 들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기존 3.3%에서 3.1%로 낮췄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내렸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도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앞으로 유가와 원자재 가격엔 더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전망이 마냥 비관적인 건 아니다. 한 글로벌 은행의 서울지사 대표는 “한국은 전쟁의 최대 피해국으로 지목되며 외국인 매도 공세를 받았고 낙폭도 가장 컸지만 반대로 긴장이 완화될 경우 외국인 자금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시장이 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이달 들어 15일까지 6조 원 안팎의 순매수로 돌아섰다. 코스피도 6,000선을 회복했다.
손인주 서울대 국가미래연구원 부원장은 “이번 전쟁은 해외 에너지와 물류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경제와 안보를 떼어 놓을 수 없는 시대인 만큼 우리도 이젠 안정적인 수급망과 ‘항행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전쟁이 더 이상 군사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해졌다. 유가와 희토류, 물류와 공급망, 드론과 AI, 증시와 환율 등이 모두 전쟁의 일부가 됐다. 이처럼 경제가 무기가 된 세계에선 가장 취약한 고리가 가장 먼저 끊길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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