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 미식 여행
‘조용한 여행’ 하기 좋은 진안
소문나지 않은 숨은 맛집들 그득
1만원 ‘특’에 암퇘지 새끼보 순대
남원·제주 흑돼지와 다른 ‘깜도야’
‘시골순대’의 순대국밥은 푸짐하다. ‘보통’은 8천원, 암뽕순대가 들어간 ‘특’은 1만원이다. 박미향 선기자 전북 진안은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역은 아니다. 하지만 그 덕에 자연은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생명을 잇고 있다. 대표 여행 명소는 마이산이다. 말의 두 귀가 쫑긋 솟은 모양의 마이산은 4월이면 벚꽃 천지가 된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며 도열해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도 명소다. ‘조용한 여행’을 하기 좋은 이곳엔 맛집도 여럿 있다. 전국권으로 소문나지 않은 숨은 보석들이다. 식재료의 질은 좋은데, 가격은 ‘착하다’. 전주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인 진안은 맛 여행 하기 좋은 곳이다.
“‘특’을 시켜야 암뽕순대를 맛봐요. ‘특’에만 나온다니까요. 그거 주문하시지. 맛이라도 볼래요?” 진안읍에 있는 ‘시골순대’에서 만난 옆 테이블 손님이 암뽕순대 하나를 건네며 한 말이다. 이 집 순대국밥 ‘특’은 1만원, ‘보통’은 8천원이다. ‘보통’은 이름만 ‘보통’일 뿐 양은 두 사람이 먹고 남을 정도로 많다. 50년이 넘은 이 집은 진안 일대에선 유명하다. 전국권 맛집이 될 역량을 갖췄다. 최근 서울을 비롯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보통 최소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영업도 하루 3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2시30분)만 한다. 목요일엔 문 닫는다. “할머니가 시작하셨는데, 저녁에 고기 삶고 만들어야 해서 바빠요. 그래서 3시간만 해요.” 밀려드는 주문에 손이 바쁜 식당 주인 아들을 붙잡고 겨우 알아낸 이유다. 3대째 운영 중이다.
‘시골순대’의 암뽕순대. 박미향 선임기자 순대는 돼지, 소 등 동물 창자에 갖은 재료를 넣고 찐 음식이다. 조선 시대엔 양이나 개의 창자도 재료로 쓰였다. 고서적 ‘시의전서’(1800년대)엔 ‘도야지(돼지)순대’를 비롯해 ‘어교(민어 부레)순대’ 등의 조리법이 적혀 있다. 돼지 창자와 민어 부레가 재료다. 깨끗이 씻은 창자나 부레에 무, 숙주, 미나리, 두부 등과 마늘, 생강, 깨소금, 고춧가루 등을 버무린 양념을 넣어 찐다. 돼지 피가 들어가기도 한다. 출판업계 원로인 고 홍석우 탐구당 대표의 고모 홍정씨가 소장해 후대에 전한 귀한 책이 ‘시의전서’다. 이 책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건, 지금 서민 음식인 순대가 당시엔 고급 음식이었단 점이다. 돼지와 민어는 백성들이 쉽게 구해 먹기 어려운 식품이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누구나 쉽게 사서 먹는 지금의 당면순대는 1960년대 이후 대중 음식으로 확산되었다고 본다. ‘시골순대’ 손님이 말한 암뽕순대는 암퇘지 새끼보(자궁)가 재료인 순대다. ‘시골순대’가 있는 골목 앞쪽엔 ‘진안고원시장’이 있다. 수제비, 칼국수 등을 파는 식당 등이 있다.
‘시골순대’의 순대는 반 정도 먹고도 남은 게 많다. 박미향 선임기자 진안은 흑돼지 주요 산지 중 한곳이다. 진안군은 2000년대 버크셔종과 재래종을 교잡해 태어난 돼지에 ‘깜도야’란 이름을 붙여 사육하고 있다. 진안 흑돼지 맛은 남원이나 제주와는 또 다른 풍미를 제공한다. ‘샘터가든’에선 흑돼지삼겹살 150g이 1만9천원이다. 흑돼지불고기도 있다. 물론 흑돼지 음식만 파는 건 아니다. 닭백숙, 아귀탕, 추어탕 등도 있다. 주인은 조자영(72)씨다. 조씨는 “2002년에 개업했고, 고추장, 청국장도 직접 만들고, 들기름도 직접 만든다”고 자랑한다. “진안, 장수 등에 있는 세군데 정육점에서 질 좋은 흑돼지만 받는다”고도 했다. 주문해 나온 흑돼지삼겹살은 비계가 골고루 분포해 있고 살의 붉은색이 짙은 게 신선해 보였다. 구울수록 비계는 바삭해지면서 특유의 감칠맛이 폭발했다. 돼지고기 비계라고 하면 무작정 잘라 버리고, 많으면 속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비계는 억울하다. 본래 토종 제주 흑돼지도 비계가 많고, 그 맛이 특별하다. 삼겹살은 비계 맛으로 먹는다고 강변하는 이도 있다. 진안 흑돼지의 삼겹살 비계 맛은 일반 백돼지 비계 맛과 다르다. 구운 뒤 고기 전체에 퍼진 육즙 맛은 눈을 절로 감게 한다. 유난히 지역 단체 손님이 많은 ‘샘터가든’이다. 지역민 다수가 추천하는 진안 흑돼지 식당이다.
진안 흑돼지삼겹살. ‘샘터가든’은 지역민이 추천하는 삼겹살집이다. 박미향 기자 잘 구워진 ‘샘터가든’의 삼겹살. 박미향 선임기자 돈가스, 햄버그스테이크, 야채커리 등을 내는 명가도 있다. 서울의 특급 호텔 셰프 경력이 있는 조철(66)씨가 가족들과 운영하는 한옥 레스토랑 ‘모래재너머’다. 진안에선 반드시 가봐야 할 데다. 진안의 특산물 홍삼청이 들어간 사과소스를 다진 돼지고기에 뿌려 만든 돈가스, 제철 채소가 재료인 커리 등이 있다. 한옥에서 맛보는 서양식이 제법 근사하다.
‘모래재너머’의 돈가스. 박미향 선임기자 든든하게 속을 채웠으면 차 한잔이 그리운 법이다. 한옥 카페 ‘카페공간153’이 있다. 지역 대표 명소다. 카페에 들어서면 볼거리가 넘친다. 각종 여행 사진이 벽에 가득하다. 카페 옆엔 작은 독립 서점 ‘책방사랑’도 있다. 진안이 고향인 김현두(43)씨가 주인이다. 김씨는 과거 분홍색 커피 트럭을 몰고 제주를 포함한 전국을 여행한 이다. 3년6개월간의 여행이었다. 그의 나이 29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갑자기 떠나자 7년간 몸담은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났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면서 시간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내린 결정이었다.
‘카페공간153’ 외관. 박미향 선임기자 ‘카페공간153’ 내부. 박미향 선임기자 ‘카페공간153’ 내부. 박미향 선임기자 이른바 백수가 됐고, 미래 계획도 없었던 그의 트럭은 해를 거듭할수록 에스엔에스를 타고 유명해졌다. ‘커피 트럭 청년’으로 불리며 ‘우리 지역에도 와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트럭 위치와 도착 시기를 에스엔에스에 올리면 그를 만나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여러 인연이 생겨서 행복한 나날들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급기야 케이티(KT) 광고 모델로도 등판했다.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에 대해 알렸다. ‘사람을 여행합니다’(2014) 등 그의 시간을 담은 책도 출간했다. 2015년 그는 고향 진안에 정착했다. 지금 그는 바리스타이자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지역 살리기에 애쓰고 있다.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생겼다. “정말 제 인생은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로망하는 삶을 제가 살아서 부러워하셨던 거 같아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카페공간153’의 주인인 김현두(43)씨. 한때 그는 ‘커피 트럭 청년’으로 불렸다. 박미향 선임기자 “좋아하는 커피를 매개로 가까운 인연들과 놀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이룬 게 ‘카페공간153’이다. 이젠 “커피만 나누는 게 아니라 공연, 강연 등 문화 활동도 지역민과 함께하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각종 어린이책과 인문 서적 등을 큐레이션해 배치한 ‘책방사랑’도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리태 라떼’와 ‘히말라야 만년설’이 시그니처 메뉴다. 향긋한 봄 향기가 이는 요즘 더 맛깔나다.
‘카페공간153’의 시그니처 메뉴들. 박미향 선임기자 ‘카페공간153’ 옆에 있는 독립 서점 ‘책방사랑’ 풍경. 카페에 들어서면 책방 구경도 할 수 있다. 유난히 어린이책이 많다. 박미향 선임기자 진안에는 이 밖에 진안 제철 재료로 밥상을 차리는 ‘미담채’, 콩국수 전문점 ‘홍희네식당’, 애저탕 전문 식당 ‘진안관’ 등이 있다. ‘진안관’은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우리 전통 음식인 애저탕 등을 내는 식당이다. 애저탕은 어미 뱃속에서 죽은 새끼 돼지가 아까워 끓여 먹기 시작한 게 유래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진안(전북)/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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