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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 "누구나 영화 찍을 수 있는 시대, '원석' 발굴할 것"

2026.04.16 05:00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배우' 정준호는 영화인보다는 '연예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히트맨' 등 대표작은 작품성보다 대중성을 내세운 상업영화들이었다. 방송 출연을 비롯해 골프웨어·웨딩 사업 활동 등 배우 외적인 활동이 두드러진 적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정치할 것 같은 연예인'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이름으로 거론돼 왔다.

2022년 12월 14일 전주국제영화제(전주영화제·JIFF)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을 당시에도 반응은 비슷했다. 선임 당시 전주시 관계자가 아닌 영화인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영화제를 이끌 영화인으로서의 경험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이사였던 배우 권해효씨, 방은진 감독 등은 같은날 영화제 조직위원회를 사퇴했다.

지난 4월 8일 서울 을지로 모처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정준호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편한 길만 걸어오던 내가 갑자기 영화제를 대변한다는 게 좋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선임 당시를 회상했다. 주변 동료들도 "하지 마라" "정치 입문할라 그러냐"며 위원장직을 만류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봉사정신'과 '오기'였다.

"솔직히 처음 제의받았을 때 저는 전주영화제를 잘 알지 못했어요. 제안해 주신 우범기 전주시장님과 일면식도 없었고요. 다만 언젠가부터 '내가 너무 영화를 편하게 투자받고 찍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한 편 한 편을 어렵게 만들어가는 이들의 마음을 외면했다는 미안함이 마음 한편에 싹튼 거죠. 그래서 훗날 이들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니 '적어도 1년은 열심히 해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오기로 마음을 다잡고 수락하게 됐습니다."

대중과 자본 잇는 가교 역할

현 전주영화제는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0년 제1회 행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위원장은 고(故) 이은주씨와 영화 '하얀 방'의 일부를 전주에서 촬영 중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화제에 초대받고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민 위원장을 처음 만나게 된다. 정 위원장은 자신의 역할을 '배우와 집행위원장을 넘나들며 대중과 영화인을 잇는 가교'라고 소개했다. 민성욱 위원장은 내부 운영과 프로그램 구성 등 내실을 책임진다면, 정 위원장은 대중과 소통하고 자본 유치를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때문에 정 위원장이 영화제를 운영하는 관점은 명확했다. 그는 "'돈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와 즐길거리, 놀거리를 더 많이 선보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못내 남았다"며 "풍성한 영화제를 만들려면 자본을 최대한 확보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주어진 예산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 유치를 통해 규모를 확장하길 원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과정에서 전제로 둔 가장 큰 원칙은 '기브 앤 테이크'였다. 그는 "무작정 '영화 산업이 어려우니 후원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우리 영화제에 후원하는 대신 영화제는 후원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제가 진행되는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 제품 홍보와 식음료 증정 부스를 확대 배치하고, CJ와 직접 소통해 CGV에서 전주영화제 인기작들을 상영했다"며 "부임 초기에 100여개 기업을 선정해 후원을 독려했는데, 그 자리가 점점 채워지고 있다. 기업 대표들 반응도 좋다"고 했다.

또 다른 역할은 '영화제를 알리는 얼굴'이었다. 그는 영화제의 얼굴마담으로서 전주 시내 곳곳을 돌며 영화제를 홍보했다. 개·폐막식에는 전주 시민들을 초대하고, 자신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신현준씨 등 유명 배우들을 레드카펫에 초청했다.

"전주 시민들조차 전주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설사 영화를 본다고 해도 예매가 쉽지 않죠. 그래서 적어도 영화제의 처음과 끝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화려하게 연출해 '우리 동네에도 이토록 멋있는 행사가 열린다'는 걸 명확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같은 전략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열린 제26회 영화제는 코로나 시국 이후 처음으로 7만명대 관객 수를 회복했다. 일반 예매율이 81.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출품작 수도 1835편으로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올해 열리는 제27회 영화제를 기점으로 연임을 확정지었다. 새 임기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다. 정 위원장은 이에 "'가문의 영광'이다. 반대하셨던 영화인분들도 아직 부족하지만 나름 열심히 해나가는 저를 좋은 시선으로 봐주기를 바란다"면서도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좋은 영화들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스타'를 내려놓고 배운 3년

정 위원장은 지난 3년의 임기를 돌아보며 그 시간을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으로 정리했다. 초대받던 배우에서 손님을 초대하는 호스트로 입장이 변하면서 '스타 배우'라는 기존 정체성을 완전히 내려놔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저는 영화제에 참석하면 스포트라이트 세례에 VIP 대접을 모두 받았죠. 그런데 집행위원장은 그냥 스태프예요. 해외 나가서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녀야 해요. 예전에는 이미 투자된 영화에 출연만 했다면 이제는 투자받기 위해 기업이든 의회든 발로 뛰어야 합니다. 솔직히 내려놓기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내려놓지 않으면 배우라는 인식 때문에 상대가 저를 거만하다고 여길 것만 같더라고요. 초등학교에 재입학해서 한글부터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정 위원장은 열흘간의 영화제를 위해 일년간 바삐 일하는 수십 명의 운영진들을 향해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1차적으로 선별하는 김효정, 문석, 문성경, 전진수 프로그래머를 치켜세웠다. 상영작 최종 선정도 그들의 안목을 믿고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편이라고 한다. 정 위원장은 "지난 3년이 배우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상에 좋은 영화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전처럼 단조롭게 배우 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영화제를 집행해보니 연기보다도 연출(감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 위원장이 만들고 싶다고 밝힌 영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을 비추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임기 첫해(2023년, 제24회) 개막작이 다르덴 형제(칸영화제 경쟁부문 7회 수상)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였습니다. 그 순수한 아이들이 아무도 모르게 한 줌의 재처럼 생명이 꺼질 위기에 놓이는 걸 보면서 정말 큰 충격을 느꼈고 영화에 감동받았습니다. 사회의 여러 약자들을 어떻게 응시하고 조명할지에 대한 마음가짐이 잡혔달까요. 이처럼 우리가 몰랐던 누군가의 삶을 영화로써 비추는 행동이 전주영화제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정 위원장은 앞으로의 목표로 '대중과 시네필(영화애호가)이 원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좁히는 것'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꾸준한 후원과 해외 관객 유치를 꼽았다. 현재 위축됐다고 평가받는 국내 영화산업 속에서 영화제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정 위원장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영화산업이 위축된 건 관객이 없어서입니다. 관객이 없으면 투자자도 떠나죠. 숏폼·OTT 등으로 극장보다 편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에요. 다만 이런 시기일수록 오히려 더 많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신인이던 1994년 연극 무대에 설 때 관객이 한두 명이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자본에 덜 구애받을 수 있는 시대 아닙니까. 카메라를 들고 가능성을 보여주시면, 전주영화제가 원석을 발굴해 내겠습니다."

올해 영화제에 신설된 '가능한 영화' 부문도 정 위원장의 말과 일맥상통했다. 이는 자본과 제작 방식의 제약을 넘어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흘간 진행된다. 공식 상영작은 54개국 237편으로, 이 중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은 78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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