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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의 아주 사소한 사회학]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도 아니었다

2026.04.09 15:15



태권도장까지의 거리는 8km였다. 게다가 편도 1차선의 꼬불꼬불 시골 도로여서 시간도 꽤 걸린다. 저녁엔 상향등을 꼭 켜야 할 정도로 어둡고도, 그걸 집에 도착할 때까지 끌 일이 없는 한적한 길이었다. 이런 길을 아이와 매일 16km를 이동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어색해서가 아니라, 안 그러면서 무섭기에 수다를 떨었다. 때론 지나가는 곳의 역사를 읊는 지루한 강의를 내가 했고, 때론 아재개그 동아리 소속이었던 아이의 싱겁고도 진지한 문답이 이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이 물음이 1년 넘게 차 안을 오갈지는 몰랐다. 시작은, 그저 오늘 떠들고 내일 까먹을 시시껄렁한 대화였다.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가 무슨 주식을 사라고 할 거다, 로또 1등 번호를 알려줄 거다 등등의 온통 돈 이야기만 하기 바빴다. 아이는 게임 아이템 그거 다 꽝이니 절대 사지 말라고 할 거라면서 어제의 속상함을 에둘러 표현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작 전날로 가는 게 말이 되냐고 하자, 인간은 1초도 되돌릴 수 없다면서 나름 철학적으로 대꾸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지구상에 단 한명에게만, 그것도 딱 한번만 주어진다면 어떠할까로 논의를 좁히니 대화는 진중해졌다. 행운의 주인공이 다시 현재로 돌아와, 과거의 자신에게 비트코인을 사라고 권했다 하면 인류애가 사라지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날로 가서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오송역으로 향하던 747번 버스를 타면 안된다고. 이태원으로 가면 안된다고. 세월호에 절대 오르면 안된다고.

하지만 어떤 재난 하나를 택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차라리 나쁜 놈을 죽여버리면 어떨까? 히틀러의 목숨을 끊으면 인류 평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타임머신 활용 아니겠는가. 요즘에는 수양대군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런데, 단종이 50년 재위했으면 태평성대였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세조가 없으면 그 훌륭하다는 성종도, 정조도 등장할 수가 없었으니 조선이 엉망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의 가정이란, 이토록 부질없다. 히틀러 같은 악마는 예외적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악마가 등장할 배경은 이미 독일 사회가 다 갖고 있었다. 트럼프를 떠올려도 다르지 않다. 양극화, 이민자 혐오, 기독교 보수주의 등의 조합이 세계를 관통하면서 터지지만 않았지 시한폭탄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과거로 가서 직접 개입한다는 건 지혜로운 답을 도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눈으로 확인만 할 수 있는 걸로 하자고 대화를 이어갔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있는 날로 가서 피겨 여왕 김연아의 완벽했던 그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고 하니, 아이는 유튜브로 보면 되는데 뭐 하러 그러냐면서 자신은 공룡을 보러 가겠단다. 공룡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공룡을 자세히 모른다고 무안을 주는 친구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벨로시랩터는 실제 크기가 작다, 새가 공룡이다 등등을 말하는 친구가 너무 거침이 없어서 위축될 때가 있는데 직접 보고 오면 하나라도 따질 수 있을 거란다.

정말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연쇄작용으로 공룡이 멸종되었는지도 알고 싶다고 했다. 멸종설은 지금도 새로운 게 등장할 정도니,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싶어서냐고 물었다. 어떻게든 주목받고 싶은 아빠의 의식수준을 눈치챘는지 아이는 피식 웃으며 그게 아니라 반에 공룡의 존재를 믿지 않는 친구가 있음을 말한다. 공룡 이야기하는 데마다 끼어들어서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목사님이 진화론을 믿으면 안된다고 말했다며 참견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니 공룡이 멸종했다는 사실만 분명해도, 오해를 풀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나는 아이의 순진함도 모르고, 평소 시조새 논란을 볼 때마다 지쳤던 마음을 이렇게 표출한다. “공룡만 득실거렸고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는 점도 꼭 전해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사라질 논쟁이 참 많다. 아틀란티스가 정말로 잃어버린 섬인지, 이스터섬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어떻게 운반되었는지 등도 궁금하지만 제주 4·3 사건 같은 국가폭력의 생생한 현장이 목격된다면 사회는 엄청나게 성숙될 거다. 진상 규명을 둘러싼 다툼 자체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기회에 한방 먹여주고 싶은 이들도 떠오른다.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다는 음모론자,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홀로코스트를 믿지 않는다는 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은 좌파 언론의 사기라는 극우주의자를 그 순간으로 끌고 가 눈으로 보고도 그딴 소리를 하냐며 따끔하게 혼내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있다. 누구는 말할 거다. 예수님이 진짜로 부활했는지 확인할 거라고.

나와 아이가 공동 집필, 아니 공동 상상한 단편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너도나도 자신이 과거로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서 다투기 시작하자, 결국 전 인류를 대상으로 컴퓨터 추첨을 하기로 했다. 누가 선발되었을까? 시골에 사는 열한살 어린이였다. 아니 근데, 이 친구가 50억년 전으로 가보고 싶다는 거 아닌가. 어른들은 가슴을 쳤다. 지구가 46억년 전에 생겼는데, 더 과거로 가는 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이래서 아이에게 중요한 일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소리가 등장했다. 80억 인류를 대표하는 만큼 신중하라는 각종 훈계가 이어졌지만 어린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타임머신에 탑승한다. 그리고 다녀와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지구는 없었어요. 태양도 없었어요. 텅 빈 우주공간뿐이었죠.”

이 마무리를 떠올렸을 때는, 베스트셀러감이라고 생각했다. 존재의 의미를, 문명의 한계를 압축한 어마어마한 반전 아니냐면서 분명히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이 난리 날 게 분명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는 한국의 앤디 위어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헛바람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뉴스만 틀면 자꾸만 저 어린이의 말이 진중하게 떠오른다.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인데, 아니 먼지조차 아니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서로를 죽이고 있는지 답답하다. 왜 전쟁을 하는지를 어른이 아이에게 설명조차 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너무 무기력하다. 우리는 단 1초도 되돌릴 수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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