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금융 글로벌 전략 2.0, 양적 확장보다 리밸런싱이 필요한 시점 [삼정KPMG CFO Lounge]
2026.04.09 15:01
이재석 삼정KPMG 컨설팅부문 금융전략 담당 상무
이 기사는 04월 08일 10: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금융사는 해외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향해 본격적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 금융이 주목한 곳은 동남아시아 신흥국으로, 경제 성장과 인구 확대로 금융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금융 인프라는 미성숙했지만 성장 잠재력은 충분했고, 한국 금융은 국내에서 쌓은 리테일·대출 역량을 바탕으로 이들 국가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과거 국내 기업의 수출 금융을 지원하거나 교민을 상대로 한 진출 방식을 넘어 본격적인 신성장 동력으로 해외 진출을 바라보며 현지 금융사를 인수하거나 점포를 확장하는 ‘글로벌 전략 1.0’을 펼쳤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은 양적 성장과 더불어 일부 성과도 만들어냈다. 국내 금융권의 해외 점포 수는 2000년 209개, 2010년 340개, 2025년 9월 기준 475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해외점포의 자산 규모나 수익성 면에서도 개선세이다. 또한 과거 은행 위주에서 증권사, 보험사 등 비은행권의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9월 기준 업권별 해외점포 비중을 살펴보면 은행이 44%로 가장 높지만 금융투자업과 보험사 비중도 각각 27%, 16%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만큼 한계도 뚜렷해 보인다. 전체 금융권의 국가별 해외점포 비중은 베트남(12%), 중국(9%), 인도네시아(7%), 인도·미얀마·홍콩 각각 6% 등 아시아 지역 비중이 66%에 달한다. 동일 지역에 대한 편중으로 우리나라 은행 간 출혈 경쟁도 일어나고, 중국이나 동남아 일부 지역의 해외점포는 적자 폭이 확대되거나 자산건전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수년 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애물단지가 된 점포들도 있다. 일본 3대 메가뱅크의 해외 영업이익 비중이 70%를 상회하는데 비해 국내 은행의 해외점포 이익 비중은 2024년 10.7%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해외 시장 역시 디지털 전환, 플랫폼 중심 생태계의 등장, 데이터 활용에 기반한 금융사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해서 금융사들은 기존 방식의 해외 사업 확장을 넘어선 ‘글로벌 전략 2.0’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전략 2.0의 핵심은 해외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의 전환이다. 과거처럼 국내 대기업을 따라 해외에 진출하거나, 동남아 신흥시장 중심으로 거점을 늘리는 양적 확장 방식은 이제 효율성이 다소 떨어진다. 글로벌 전략 2.0 시대에 필요한 것은 외형 확대가 아니라 정교한 리밸런싱이다. 금융사가 어떤 사업모델로 진출할 것인지, 어떤 지역에 어떤 역할을 부여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재설계가 요구된다.
글로벌 전략 2.0은 해외 사업의 목적 자체를 자산 성장에서 자본 효율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대출 중심 모델은 높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국가별 규제 리스크를 크게 받는다. 반면 IB, WM, 브로커리지, 디지털 기반 사업 등은 상대적으로 자본 부담이 적고 수익 변동성 또한 분산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선진 금융사의 ROE는 한국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으며, 그 차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비이자이익 기반의 사업 포트폴리오다.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향으로의 재편이 필요하다.또한 글로벌 전략 2.0에서는 지역별 기능 분업화가 중요한 전략 축으로 부상한다. 전통적인 방식처럼 지역별 사업을 단일 시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밸류체인 관점에서 각 지역이 수행할 기능을 재정렬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미국은 글로벌 투자와 자산운용의 중심으로, 동남아는 플랫폼·리테일·결제의 실험장으로, 인도는 급성장하는 자본시장을 기반으로 WM과 브로커리지 중심 시장으로, 홍콩과 싱가포르는 글로벌 딜소싱 허브로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 기반 분업화는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지역별 리스크를 분산하며, 글로벌 성장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이처럼 글로벌 전략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진출 방식 또한 크게 변화하고 있다. 1.0 시대에는 사무소-지점-법인 설립을 중심으로 한 그린필드 방식과 M&A가 중심이었다면, 2.0 시대에는 JV, 파트너십, 디지털 기반 시장 진입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생태계를 활용하면 초기 진입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현지 고객과 빠르게 접점을 형성할 수 있고, 특히 리테일 금융 확장에 매우 효과적이다. 자본효율성 관점에서도 기존 점포 중심 방식 대비 월등히 우수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금융사의 전략적 선택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업권별로 해외 사업의 리밸런싱은 방향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은행은 기존 대출 중심 사업자에서 결제·정산·SME 공급망 금융 등 금융 인프라 사업자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으며, 동남아뿐 아니라 동유럽·중앙아시아로의 확장성을 높이고 있다. 증권사는 국적 장벽이 가장 약한 업권으로, 인도·미국·유럽·중동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크로스보더 IB, WM, 글로벌 세일즈·트레이딩을 확대하고 있다. 보험사는 중산층 확대가 두드러진 동남아 시장에서 지분투자·인수 방식의 진출을 통해 안정적인 외형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주주행동주의의 확산과 밸류업 요구는 국내 금융사들에게 더 높은 수익성과 성장성을 증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결국 ‘해외 시장’이다. 케이팝과 K-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감성을 지배했듯, K-금융 또한 전 세계인의 경제 활동을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이미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정교하게 재배치하고 효율화가 이뤄질 때 K-금융은 비로소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금융 시장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한국 금융인들의 열정과 기술력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려움 없는 도전과 정교한 전략의 실행이다. 2026년 K-금융이 전 세계 금융 지도 위에 선명한 획을 긋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주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