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보화각 지킨 ‘석사자상’ 부부,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된 사연
2026.01.06 14:06
한중 정상회담 계기로 중국에 기증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본에서 경매로 구입
1938년부터 87년 간 미술관 보화각 입구 지켜
"고향에 돌려줘야 한다"던 간송 유지 실천
"역사·예술적 가치 커…양국 우호 상징될 것"
87년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앞을 지켜온 중국 청대(淸代) 석사자상(石獅子像) 한 쌍이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을 거친 긴 타향살이를 마치고 귀환하게 됐다.
6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유홍준 관장은 전날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청대 석사자상 기증 협약식’에서 라오 취안 중국 국가문물국장과 이런 내용을 담은 협약 문서에 서명했다. 한·중 정삼회담을 계기로 열린 이날 협약식에는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함께 서명 장면을 지켜봤다.
일본서 사온 ‘간송 컬렉션’
석사자상은 국내 대표 사립미술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이 소유해온 문화유산이다.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1933년 일본에서 조선시대 석탑, 석등 등과 함께 경매로 구입하며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1938년 간송이 건립한 보화각(葆華閣) 입구에 배치하며 현재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란 뜻의 보화각은 평생에 걸쳐 국보급 유물을 수집한 전시장이다. 석사자상은 이런 ‘간송 컬렉션’을 찾는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온 셈이다.
석사자상이 중국에 돌아가게 된 배경엔 간송미술관의 통 큰 결정이 있다. 양국 우호를 증진하는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유물을 기증하는 형태란 점에서다. 약탈 등 불법반출로 나간 문화유산의 반환은 국제법이나 관례상 원 국가의 권리를 우선 인정하는 만큼 돌려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석사자상 역시 중국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과정에서 위법적인 소지가 있었을 것으로는 짐작되지만, 당시 간송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취득한 재산인 만큼 무상으로 기증하는 것이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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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증은 간송의 유지를 이행한 결과다. 간송미술관에 따르면 간송은 생전 “석사자상이 중국의 유물이니 언젠가 고향에 보내주는 게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전 재산을 쏟아부어 문화유산을 지켜왔던 만큼 본래 자리에 있을 때 유물이 가장 빛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간송미술관은 2016년 수장고를 신축하며 자체적으로 이 유물의 중국 기증을 추진했지만, 난항을 겪으며 중단됐다. 당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등으로 한중관계가 급속도로 경색됐던 시기다.
“한중 문화협력 상징될 것”
오랜 답보상태였던 석사자상 기증 논의는 이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미술관으로부터 기증 관련 사무를 위임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중국 측에 간송미술관 기증 의사를 전하자 중국 국가문물국이 전문가 5명을 미술관에 보내 석사자상 감정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역사·예술·과학적 가치를 갖춘 우수한 작품이라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감정에 따르면 석상의 재질로 볼 때 베이징이나 화북지방 대리석을 사용했고, 제작 기술이나 장식표현이 정교해 황족 저택인 왕부(王府) 앞을 지킨 택문(宅門) 석사자상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으로 액운을 막고 재부를 가져온다는 뜻을 담은 석사자상은 중국에서 주택 정문이나 분묘 앞에 주로 배치돼 왔다.
기증 협약이 체결되면서 석사자상은 조만간 중국 측에 인도된다. 유홍준 관장은 “앞으로 한중간 문화협력과 우호증진의 굳건한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 측은 “올해 간송 탄생 120주년을 맞이해 ‘문화보국’(文化保國)을 평생 실천한 유지를 실천하고자 유물을 기증하려 한다”며 “앞으로 양국의 활발한 문화교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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