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쌈짓돈' 오명 쓸 뻔한 군인연금…독립성 확보해야
2026.01.07 03:33
일본 따라 만든 한국 연금제도...군인연금 취약성 키워
전용 시도는 국가재정법 위반 넘어 헌법질서 침해 소지
불법 전용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 보완해야
이 기사는 2026년01월06일 21시32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12·3 비상계엄 당시 군인연금을 계엄 자금으로 활용하려 했던 혐의가 포착되면서 군인연금에 대한 제도적 독립성과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인연금이 군인과 유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기금인 만큼 본래 목적 이외의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일 이데일리 단독 취재에 따르면 군 수사당국은 ‘12·3 비상계엄’ 당시 군인연금 활용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계엄 가담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자금’ 마련 지시에 따라 국방부에서도 내부 자금 활용을 검토하던 과정에서 군인연금까지 손을 뻗은 정황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양상이다.
군인연금 부서 내 책임자 및 전반을 상대로 조사 및 자료 확보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기사 [only 이데일리]尹, 계엄 때 군인연금 탈취 시도 의혹
군인연금은 이미 적자가 누적된 상태지만, 매월 퇴역 군인과 유족 등 수급 대상자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대기자금으로 ‘지급 준비금’을 유지한다. 이 대기자금을 계엄 주도 측에서 사실상 ‘가용 현금’처럼 보고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주요 쟁점으로 알려졌다.
군인연금은 군인의 퇴직연금과 유족연금 지급을 목적으로 지난 1960년 도입된 공적 연금 제도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과 함께 3대 직역연금으로 분류되며, 군 복무라는 특수 직역의 위험성과 희생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상하는 장치다. 재원은 국가부담 기여금, 정부 보전금, 기금 운용수익 등으로 구성된다.
군인연금은 군인연금법에 따라 군인과 유족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특정 목적에만 사용하도록 엄격히 제한돼 있다. 법률상 목적 외 사용이나 임의 전용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국방부 산하에 있는 군인공제회와는 성격이 다른 연금으로, 군인연금이 국방부가 직접 관리하는 공적 연금 제도라면 군인공제회는 별도의 법률에 따라 설립된 회원 상호부조 성격의 투자·복지 기관이다.
법조계에서는 전용 시도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단순한 국가재정법 위반을 넘어 헌법 질서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중대 위법 사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헌법 제76조에 따른 긴급명령권이 발동된다 해도 군인연금과 같은 특정 목적 기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행정부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으로 전환될 수 없다는 평가다.
군인연금을 계엄 관련 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만으로도 헌법 위반과 함께 국가재정법·군인연금법 위반 소지가 성립할 수 있으며, 이를 지시하거나 직접 관여한 자에게는 직권남용, 국고손실, 업무상 배임 등 중대 형사 책임이 동시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유재원 메이데이 대표변호사는 “군인연금기금 같은 특수목적기금은 목적 사항이 법으로 명확히 규정된 자금으로, 통치권자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전용 시도만으로도 헌법과 국가재정법, 형법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며 “군인연금을 활용하자는 구상을 낸 사람은 국내 법 체계, 예산과 회계의 기본 원칙을 모르거나 혹은 이를 경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백히 법적으로는 전용이 불가능한 기금임에도 전용 시도 정황이 있었다는 점 자체가, 현재 군인연금의 관리 체계가 정치·행정 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충분히 독립돼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군인연금의 재정 상황은 이미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지난 2024년 말 기준 군인연금의 누적 부채는 266조9167억원에 달한다. 같은 시점 군인연금기금 자산은 8965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400억원 감소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적 적자가 오래전부터 고착화된 상태다.
정부는 50년이 넘게 매년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연금 지급을 보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취약한 재정 구조를 감안할 때, 단 한 차례의 불법적 전용 시도만으로도 군인과 유족에게 지급돼야 할 자금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군인연금이 국방부 직속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인연금은 장·차관을 수장으로 하는 국방부 조직체계 하에서 인사복지실 산하에 보건복지관이 관할하는 ‘군인연금과’로 운영되고 있다. 경제 및 연금 전문가들은 국방부 내부 조직으로 있어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부 견제 장치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별도 공단 체제인 국민연금의 경우 민·관·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위원회 등을 통해 다층적인 견제 구조가 작동하고, 공무원연금·사학연금 역시 다수의 전문위원 체계를 통해 빈번한 외부 평가 및 감시가 이뤄진다.
반면 국방부 내에 하나의 부서 조직으로 존속하는 군인연금은 중요성에 비해 외부 거버넌스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대기성 자금 규모가 훨씬 큰 다른 연금보다 군인연금을 활용하려 했다면, 바로 이 구조적 취약성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치적·행정적 위기 국면에서 외부 통제가 약한 연금이라 상대적으로 더 전용 대상으로 삼을 시도를 하기가 쉬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군인연금의 거버넌스 취약성을 두고 시장에서는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하던 과정에서 남은 부작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연금 문제에 정통한 한 투자업계(IB) 고위 관계자는 “우리 연금 제도의 기본 틀을 일본에서 따온 점이 현재의 군인연금 구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별도의 군인연금이 없고 공무원과 함께 군인이 연금을 받는다”며 “군인연금을 벤치마킹할 제도가 없어 그냥 국방부 하에 뒀기에 군인연금이 별도로 공단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연금 전용 고스란히 국민 부담…장치 마련해야
향후에도 유사한 헌정 위기 상황이 반복될 경우, 지금과 같은 체계하에서는 군인연금이 다시 위협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계엄이나 국가 비상사태 등 극단적 상황일수록 재정 운용을 권력층으로 집중시키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제도적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연금은 언제든 목적과 다르게 전용될 위험이 있다. 헌정 위기 속에 연금이 부당하게 전용되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연금 가입자에게 돌아가고, 궁극적으로는 국민 세금과 정부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는 “모든 게 비밀리에 이뤄졌던 비상계엄 당시에는 여러 비상식적 조치가 검토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군인연금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해외 선진국 사례들을 비교해서 군인연금 제도를 투명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선은 군인연금 관리 기능을 국방부 내부에서 분리해 독립 기구화하는 방안을 충분히 검토할만 하다”며 “외부 전문가 참여를 더 확대하고 관리·감독 구조를 투명하게 강화해야 정치적 외압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금제도 개혁이 거론되는 가운데, 군인연금 문제도 안정성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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