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콩카과 오르는 '짠돌이팁' [산으로 간 남미]
2026.04.09 07:50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 남편은 20대 초반에 청소년 오지탐사대에서 만나 11년 전 결혼했다. 그렇게 식을 올리고 1년여 뒤, 우린 7대륙 최고봉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첫 계기는 완전한 우연이었다. 조지아를 여행하다가 가이드로부터 근처 국경 너머에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스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올랐다. 배낭여행 중이라 등산 장비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일단 무작정 찾아갔다. 장비 대여점이 있어서 이것저것 빌릴 수 있었고, 운이 따라 날씨도 좋아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배낭여행 중이라 돈이 많지 않아서 다른 등반가들은 다 설상차(스노캣)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는 17시간을 걷느라 많이 지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정상 직전 캠프에선 식사를 라면으로 때웠다. 참 낭만 넘치는 산행이었다.
그 이후 딱히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목표로 하진 않았다. 막연한 꿈이었을 뿐이다. 알래스카 여행을 갔을 때도 '언젠간 북미 최고봉도 오르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만 했다. 그러다 2024년 5월에 매킨리를 등정했고, 방송 촬영 덕에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도 올랐다. 그렇게 남편은 이제 남미 아콩카과만 오르면 5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니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의 작은 목표와 꿈을 안고 살아가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시간과 기회가 맞아 떨어질 때 가면 된다. 그래서 50여 일의 시간이 주어진 이번 봄, 남미로 향했다.
아콩카과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보다 훨씬 더 높다. 7,000m에 가깝다. 그래도 등반 난이도는 낮은 편이라 전문 등반가가 아니더라도 일반 여행자가 도전, 등정한 사례가 매우 많다. 다만 한국 여행자에겐 어렵다. 높이가 문제가 아니다. 거리 때문이다.
멀어도 너무 멀다.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이렇게 멀리 떠나본 적이 없었다. 아콩카과까지 가려면 최소 3번은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한 번,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산티아고로 한 번, 마지막 멘도사로 한 번이다. 순수 비행시간만 24시간이고 경유 대기도 해야 한다. 공항에 도착한 후에도 버스를 타고, 걷고 2일이 소요된다. 그래야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다.
아콩카과 원정은 여유 날을 많이 둬야 한다. 안데스산맥에서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라 상황이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콩카과 정상은 악천후라고 하면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 시속 100km가 넘는 강풍이 분다. 시속 100km면 20kg 배낭을 메고 있어도 몸이 바람에 날아간다. 그래서 넉넉히 20일 정도 일정을 잡는다. 그러면 적어도 그중 하루는 날씨가 좋다. 가장 이상적으로 떨어지면 10일 안으로도 끝낼 수 있다.
만약 아콩카과 등정 대신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서둘러라. 유명세 덕분에 예약이 엄청나게 힘들다. 칠레 지역 파타고니아인 토레스 델 파이네를 알아보니 이미 6개월 후까지 예약이 가득 차 있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산군 전체를 도는 150km O트랙과 당일치기 W트랙 두 개가 유명한데 O트랙을 걸으려면 캠핑장 예약이 필수다.
만약 서두르지 않았다면, 틈만 나면 취소 자리가 있는지 계속 웹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면 된다. 일주일 정도 그렇게 눈이 빠져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쳐다본 결과, 일주일치 숙박을 예약할 수 있었다.
'풀서비스'는 비싸서 저렴한 '로지스틱'으로
계획 다음은 짐이다. 짐을 싸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콩카과에는 '풀서비스'라고 불리는 원정대행사 상품이 있다. 이걸 이용하면 베이스캠프는 물론 고산캠프에서도 식사를 제공해 준다. 대신 가격이 5,000달러 이상이 든다. 여기에 약 200만 원인 허가비용까지 더하면 1인당 1,000만 원이 우습다.
솔직히 이 정도로 비쌀 줄은 몰라서 비행기 항공권을 취소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격이 매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고 한다. 가령 성수기 아콩카과 입산허가비용도 2018년엔 800달러였는데 올해는 1,700달러로 2배 이상 올랐다.
그래서 정보를 찾았다. 국내 커뮤니티에는 정보가 많이 없어서 주로 해외사이트인 레딧Reddit을 참고했다. 그곳에서 풀서비스가 아닌 기본적인 원정대행(로지스틱이라고 한다)만 이용해서 등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행사를 기적적으로 찾았다.
원정대행이라고 해서 별로 특별한 건 아니다. 입산허가증 발급을 도와주고, 뮬라(당나귀)로 1인당 약 20kg의 짐을 베이스캠프로 운반해 주는 것. 이게 전부다. 비용은 1인당 1,100달러인데 이 대행사를 통해서 입산허가증 발급 신청을 진행하면 500달러 할인이 들어간다. 그러니 실질 비용은 600달러란 말이다.
직접 20일치 식량을 한 번에 옮기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반드시 고산등반 구조보험을 들어야 입산허가가 나와서 추가 비용이 1인당 100달러가 들었다. 그러니 총 1인 비용은 2,500달러다. 물론 입산허가증 발급만 따로 하고 짐 운반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으면 돈을 더 아낄 수 있긴 한데, 그러면 아무래도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배고파서 등반에 실패하는 것보다는 날씨가 좋을 때까지 충분히 에너지를 보충하며 건강하게 정상을 향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참고로 카드 결제는 안 된다. 무조건 달러를 넉넉하게 뽑아야 한다. 카드가 되도, 쓰면 안 된다. 암환율 등의 요인으로 굉장히 손해를 많이 볼 수 있다.
이제 몸과 짐만 만들면 된다. 둘 다 그리 어렵진 않다. 아콩카과 등정은 기술 난이도는 낮다. 정상 노멀 루트는 걸어서 올라간다. 다만 7,000m에 육박하는 높은 해발고도가 주는 고산병과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속 80~120km의 강풍이 변수다. 이 둘만 잘 제어하면 등정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정상 공격일에 1,000m 정도 고도만 올리면 된다. 느린 속도로 오래 움직이는 지구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렇다보니 특별한 등반 기술을 숙달할 필요는 없다. 고소적응과 장시간의 산행, 무거운 짐 운반이 핵심이다. 우리나라 산으로 치면 지리산 화대종주 12~14시간, 불수사도북 8~9시간 정도 걸려 완주할 정도면 일단 '체력' 때문에 정상을 못 갈 일은 없다고 본다. 다른 해외 등반가들은 남미 안데스의 다른 5,000~6,000m급 산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며 미리 고소적응을 하고 온다. 그러면 성공률이 아주 높아진다.
훈련은 15~20kg의 배낭을 메고 산에서 느린 페이스로 오래 걷는 걸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좋다. 몇 달간 꾸준히 하면 고산에서 짐 무게에 대한 부담이 적어진다. 매일 산에 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매일 Zone 2 러닝을 섞자. 이는 최대 심박수의 60~70%로 꾸준히 뛰는 걸 말한다. 이 훈련은 최대산소섭취량VO2max 향상에 도움을 준다. 6,000m대 산에선 산소섭취량이 약 50% 감소하므로 기본적으로 최대량이 많으면 여유가 생긴다.
식량 및 장비는 대부분 한국에서 가져갔다. 동계침낭, 텐트, 우모복, 삼중화, 크램폰, 버너 등이다. 현지에서 대여 및 구매는 모두 가능하다. 텐트는 20년 전 아콩카과에 다녀온 김영미 대장에게 강풍에 강한 4계절 3인용 텐트(노스페이스 VE25)를 빌렸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텐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 2인조인 우리에게 3인용 텐트는 생활하는 데 무척 편했다.
현지에서 구매한 장비는 한국에서 가져갈 수 없는 이소가스뿐이었다. 현지에선 450g 한 캔이 무려 2만 원쯤이다. 한국의 4배다. 하지만 비행기에 실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식량은 대부분 건조식으로 챙겼고, 현지에선 참치캔, 버터, 오트밀, 파스타, 당근, 사과, 빵, 치즈, 말벡 와인(멘도사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지다)만 샀다.
국립공원 레인저와 의사와는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데, 대행사 직원 등은 영어를 못 해 번역 앱을 통해 대화해야 했다. 숫자와 음식 등 간단한 스페인어만 알아도 소통의 질이 올라간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겹고 피곤한 비행을 견디면 등반이 시작된다. (다음 호에 계속)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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