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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퍼펙트스톰-정치] 원유 수급 불안, 정부 해법보다 정유사 역할론만 커진다

2026.04.08 09:01

최고가격제·수출 제한 가능성까지
정부 대체 공급선 확보 나섰지만
중동상황에 업계 압박 커진 상황
정부가 국제 정세에 따른 기름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가격 상한을 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30년 만에 시행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휴게소 내 주유소에서 운전자들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데일리안 = 김은지 기자] 중동 전쟁이 40일을 넘기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전반은 고물가·고유가·고금리 3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하고 정유업계의 손실 호소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나란히 2주 휴전 의사를 밝혔지만 전제 조건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으로 제시됐다. 여전히 호르무즈의 패권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우리 수입 원유의 60% 이상을 의존하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가 초미의 관건인 가운데, 청와대는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총 2400만 배럴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고 추가 물량 확보에도 나섰다. 다만 이는 수급 불안을 일정 부분 완화하기 위한 조달 대응에 불과하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정유업계가 원유 확보와 공급 유지의 최전선에 선 채 부담을 먼저 떠안고 있다.

7일(전날)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서울 평균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2000.27원으로 2000원을 돌파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됐던 동안 공급 불안이 누적되면서, 정부가 외교 해법을 제시하기 전에 소비자들이 먼저 가격으로 위기를 체감하는 양상이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이 2000원대를 기록한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던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정유업계는 현재 대체 물량 확보와 국내 공급 유지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다. 정유사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대체 원유 확보에 나서고 있고, 유통망 역시 한정된 공급 여건 속에서 주유소 공급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추가 개입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업계 부담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실제 업체별 대응은 각 사의 공급선에 따라 분화되는 모습이다. 에쓰오일(S-OIL)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의 대주주 구조상 중동산 비중이 높지만,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미국산 원유 확보에 나섰고 SK에너지 역시 미국산 조달을 추진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지만 업계가 이처럼 독자적인 조달망을 가동하며 버티는 사이, 정부는 수급 불안 대응의 무게를 가격 통제 쪽에 먼저 실었다.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 직후 원유 수급 불안 대응을 위해 내놓은 핵심 카드 중 하나는 석유 최고가격제였다. 지난 3월 13일 시행된 이 제도는 정유사가 주유소와 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에 상한을 두는 방식으로, 정부가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에 꺼내든 가격 통제 조치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해 지난 3월 27일부터 2차 최고가격제를 적용 중이다. 2차 최고가격은 보통 휘발유 리터당 1934원, 자동차·선박용 경유 1923원, 실내등유 1530원 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고가격제 시행 첫날이었던 3월 13일 엑스(X·옛 트위터)에 "어기는 주유소 등을 발견한다면 지체 없이 나에게 신고해달라"고 적으며 현장 감시를 공개 주문하기도 했다. 업계에 최고가격 준수와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 같은 인위적 가격 통제는 정유사와 유통망의 당장 비용 부담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로 발생한 정유사 손실을 사후 정산 절차를 거쳐 보전하겠다는 방침이나, 현장에선 부담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최고가격제에 따른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석유유통협회는 최근 긴급 호소문에서 석유 대리점 공급가와 정유사의 주유소 직접 공급가가 동일해지면서 기본적인 유통 비용조차 반영하지 못한 채 손해를 감수하며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협회는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석유 대리점은 공급 중단이나 폐업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정유사와 석유대리점, 주유소로 이어지는 석유 유통 체계가 흔들릴 경우 주유소 공급 차질과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정부는 업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들이 글로벌 조달망을 총동원해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서는 가운데, 정부가 상황 악화 시 수급 조정 명령과 수출 제한 조치까지 가능하다고 밝히면서 시장은 후속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지난달 CBS 라디오에서 '상황이 급해지면 정유사들이 수출하는 물량을 줄일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당연하다"며 "석유사업법이라는 법이 있고 그 법에서 최고가격제를 시행할 수도 있다. 그다음에 수급조정명령을 할 수도 있고 수출제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문 차관은 "비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검토를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최고가격제로 정유사가 공급가를 곧바로 올리기 어려운 만큼 수출 물량 운용은 수익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나프타의 경우 지난달 27일부터 이미 수출 제한 조치가 시행됐다.

업계 수익성과 물량 운용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도 수급 불안 완화를 위한 추가 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 상황 대응을 위해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7일 출국했다. 강 실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카자흐스탄 등을 방문해 원유와 나프타 추가 확보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UAE산 2400만 배럴 긴급 도입에 이어 추가 물량 확보에도 강 실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산업통상부도 같은 날 중동전쟁 대응 브리핑에서 4월 5000만 배럴, 5월 6000만 배럴 등 총 1억1000만 배럴 규모의 대체 원유를 계약 기준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도입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UAE를 비롯해 브라질, 호주, 콩고, 캐나다 등 17개국에 걸쳐 다변화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한계도 분명한 상황이다. 강 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중동 상황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대체 공급선 확보가 절실하다고 했고, 산업부가 발표한 대체 원유 확보 물량 역시 평년 같은 기간 도입량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7일(현지시간)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하게 개방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조건으로 나는 2주 동안 이란에 대한 폭격과 공격을 중단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공지했다. 이는 양쪽 모두에 적용되는 휴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군사적인 전쟁이 끝나더라도 에너지 수급 영향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공급망 복구·항로 재개 등에는 시간이 추가로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2주 단위 조정 원칙에 따라 오는 10일 3차 최고가격제를 시행할 예정이라는 점도 변수다. 산업부는 3차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국민 부담, 수요 관리 등을 함께 고려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해법이 여전히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가격 통제와 유통 부담, 공급 불안이 얽힌 업계의 복합 압박 국면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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