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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 자르고, 퇴직한 김 부장 다시 부른다…요즘 대기업 풍경

2026.04.07 05:01



퇴직 직원을 숙련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즉시 전력감이 필요한 기업과, 업무 부담을 덜면서도 소득의 끈을 이어가려는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제도를 공식화하는 추세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LG전자 노사는 내년부터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직원을 대상으로 정년 이후 최대 1년간 계속 일할 수 있는 정년 후 재고용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포스코·HD현대중공업 등도 비슷한 제도를 안착시켰거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세 자녀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정년 후 재고용을 제도화하기로 합의했다. 그간 ‘삼성 명장’ 출신을 중심으로 시니어트랙을 운영 중이었는데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박경민 기자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제 운영 사업장 중 재고용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2021년 27.2%에서 지난해 40.6%까지 증가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지난해 기준 59.2%, 300인 미만은 40.4%가 해당 제도를 운영 중이다.


기업 입장에선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숙련 근로자를 기존 임금의 60~80% 수준으로 고용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선 비록 임금은 줄어들더라도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2033년 65세)까지 소득 공백기를 메울 수 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구직 스트레스도 없다.

박경민 기자

이는 최근 인공지능(AI)이 저연차 직원의 업무를 대체하며 청년 채용 문턱을 높인 이른바 ‘김 대리의 비애’ 현상과 대비를 이룬다.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시니어의 노하우는 첨단 기술로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년 후 재고용’ 제도를 두고 사실상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을 합리화하려는 사측의 ‘꼼수’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기존의 근로조건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퇴직자를 1년 단위의 비정규직(계약직)으로 전환해 언제든 해고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만 65세까지 정년 연장’을 즉각 법제화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요구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직종을 고려하지 않은 근로시간 제도 등을 고치지 않은 상황에서 정년만 늘릴 경우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정년연장에 따른 비용 추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60~64세 근로자의 고용에 따른 비용이 연간 30조2000억원에 이른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60세 근로자가 은퇴하면 신입 직원 2~3명을 채용할 자금 여력이 생기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정년연장이 청년 실업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4년 펴낸 ‘60세 정년 의무화가 청년 및 장년 고용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60세 정년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이후 청년 고용이 16.6%나 줄었다는 결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부터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했지만 방식은 기업의 자율에 맡겼다. 기업이 ▶정년 폐지 ▶정년 연장 ▶재고용(1년의 기간제 계약을 65세까지 갱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 획일적인 정년 연장을 강제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본 기업이 99.9%가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고 있고, 이 중 67%가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택했다.

재계에선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고용 유연화’ 카드를 언급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뒤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노동계가 고용 유연성을 양보하는 대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그 비용을 고용 유연화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부담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65세까지 계속근로가 가능할 경우 향후 10년간 성장률은 0.9~1.4%포인트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정년 후 계속 고용’ 제도 논의는 기업의 인력운용 현실과 산업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 설계해야 할 것”이라며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더 확대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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