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서도 "즉각 폐지해야"…'시행 4주차' 석유 최고가격제 어찌할꼬
2026.04.07 08:59
"사물 아닌 사람 지원으로 전환해야"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소비 늘기도
석유 유통점들은 경영난 호소
"6월부터 LNG 가격 폭등할 수도"
지난달 13일부터 시행돼 4주 차를 지나고 있는 석유 최고가격제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민의 유가 부담을 낮춘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오히려 석유 소비를 부추기고 국가 재정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유사나 석유 유통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 정권에 호의적인 진보 진영에서도 석유 최고가격제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6일 국회 더좋은미래,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 에너지시민연대, GCN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국회에서 공동 주최한 '중동발 에너지 위기 대응 긴급토론회 : 수요관리·재생에너지 전환과제'에서 발제를 맡은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 현재 국내 석유 소비의 66%를 수송 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수송 부문의 대대적인 소비 감축이 필수적"이라며 "석유 가격이 본연의 수요 관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석유류 제품에 대해서는 최고 가격제 폐지와 김영삼 정부의 유가 자유화를 통한 석유 수요 관리 기능을 원상 복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석 위원은 "석유 가격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으로 책정한 최고 가격 지원 5조원을 재난지원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정책 기조를 석유 등 사물에 대한 지원에서 사람에 대한 직접 지원 방식으로 바꾸고, 재난지원금 성격의 대국민 지원을 통해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가 석유 가격을 억누르자 오히려 석유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도매가격을 2주 단위로 묶자 소비자들은 향후 가격이 오를 것을 대비해 미리 사두고 있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석유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차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3월 2주 차(9~15일) 25만7423킬로리터(㎘)였던 휘발유 주유소 판매량은 4주 차에 32만1051㎘로 24.7% 급증했다. 같은 기간 경유 판매량도 35만2300㎘에서 40만9949㎘로 16.3%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2차 석유 최고가격을 지정했는데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1차에 비해 ℓ당 210원씩 인상됐다. 이에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가격이 오를 것이란 인식을 갖게 됐고 가격 인상 전에 소비하려는 유인이 생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3차 석유 가격은 오는 9일 고시될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제도 시행 당시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연구원도 보고서에서 "가격상한 정책은 초과 수요를 유발할 수 있으며 품귀, 대기행렬, 가격 획일화 등 비가격적 배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기름값 통제가 지속되자 유통점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석유유통협회는 6일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정유사의 석유대리점 공급가와 주유소 직접 공급가가 동일해지면서 기본적인 유통 비용조차 반영하지 못한 채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며 대리점 공급가는 최고가격보다 낮게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석유 제품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가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해 석유 대리점에 판매하거나 직영 주유소에 공급하는 구조다. 그동안 석유 대리점은 주유소보다 낮은 가격에 석유 제품을 대량 구매해 이를 주유소에 납품했다. 하지만 최고 가격제 시행 이후 이러한 구조가 무너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6월부터 폭등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석 위원은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글로벌 가스 공급 차질로 인해 EU의 LNG 가격이 단숨에 6배 폭등한 바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이번 중동 사태를 심층 분석한 결과 최악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질 경우 그 공급 충격 규모는 러·우 전쟁 당시를 훌쩍 넘어 최대 10배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거대한 공급 충격으로 인해 당장 오는 6월부터 국내 LNG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할 가능성 이 크다"고 경고했다.
LNG는 전기 및 난방 요금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발전소는 주요 발전원 중 가장 발전단가가 높다. 한국전력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LNG 가격이 급등하면 전기요금 상승 압력이 커진다.
그런데 정부가 전기요금을 통제하면 한국전력의 재정이 악화한다. 지난 러·우 전쟁에서도 정부가 전기 요금 상승을 억누르면서 한전의 누적 부채가 200조원을 넘겼다. 한전의 차입 규모가 커지면서 국내 금융 시장이 요동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수요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논의됐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위기를 극복하려면 당초 계획을 1년 앞당겨 내년까지 재생에너지 10GW 신규 설치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0 ~20GWh 규모의 ESS(에너지저장장치) 구축예산을 즉각 확보하는 등 명확한 타임라인 기반의 비상 처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정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단순히 에너지를 아껴 쓰는 차원을 넘어 전력망 안정성과 재생에너지 접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AI와 ESS 등을 결합한 실시간 수요 관리(DSM)로 국가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창민 그리드위즈 부사장은 "수요반응(DR)과 가상발전소(VPP) 등 수요 측 유연성 자원은 현 에너지 위기를 방어하는 가장 빠르고 경제적인 수단"이라며 "정부의 R&D 지원과 더불어 기업과 시민이 에너지 유연성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유인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공동 주최자인 오기형, 박지혜 의원을 비롯해 임미애, 민병덕, 김남근, 진성준, 허영, 김윤, 남인순, 이용선, 백혜련, 진선미의원 등 다수의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더좋은미래 대표를 맡고 있는 오기형 의원은 "현재 에너지 위기는 국제 정세 불안을 넘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지적했다. 박지혜 의원은 "전쟁 장기화에 따라 국내 에너지 여건이 우려할 만한 수준까지 이른 가운데 시민사회와 산업계, 국회가 힘을 모으는 자리를 통해 에너지 수요 감축 문제 해결을 위한 추진 동력이 마련되길 바란다"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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