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대신 데이터센터 수출하겠다"…미국 이어 2위 오른 호주 가보니
2026.04.05 15:45
"과거 호주가 자원을 수출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를 수출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호주 캔버라에서 만난 제이미 모스 맥쿼리 테크놀로지 그룹 산업·정책 총괄은 호주 정부의 데이터센터 유치 전략을 이렇게 소개했다.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것이 과거 자원 수출처럼 호주 경제에 새로운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산업전략이란 의미다. 맥쿼리 그룹은 호주에서 데이터센터를 처음 상업화한 기업이다. 현재 정부의 각종 데이터를 관리하는 ‘소버린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으로, 호주의 데이터센터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호주 시드니 맥쿼리파크(Macquarie Park)에 위치한 대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 사진=맥쿼리 테크놀로지 그룹
부동산 컨설팅사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2024년 호주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데이터센터 투자를 유치했다. 유치 규모는 67억 달러에 달한다. 아마존은 지난해부터 2029년까지 호주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200억 호주달러(약 2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마이크로소프트도 50억 호주달러(약 5조3000억원)를 투입해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와 AI 인프라를 확장할 계획이다.
전 세계가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략 자산이자 AI 경쟁의 핵심 인프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데이터센터가 데이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디지털 창고’에 가까웠다면, 오늘날 AI 데이터센터는 수천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바탕으로 AI를 학습시키는 핵심 기반으로 기능한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제니 웡 룽 선임분석가는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상업 자산이 아니라 21세기의 국가 전략 자산”이라며 “AI 모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를 구동하는 데이터센터가 해외에 있다면 데이터 주권과 기술 주권을 온전히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경쟁에서 호주가 앞서 나가는 배경으로는 흔히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경쟁력을 끌어올린 핵심 요인은 정책적 지원이라는 평가가 많다. 호주 역시 동남아시아의 저렴한 전기료와 경쟁해야 하는 여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호주 연방정부는 지난해 12월 ‘국가 AI 계획(National AI Plan)’을 발표하고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를 인도·태평양 지역의 데이터센터 투자 최적지로 육성하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고, 직접 지원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방식의 인허가 제도다.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전용 인허가 제도인 국가중요개발(State Significant Development·SSD)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의 투자실행지원청(Investment Delivery Authority·IDA)가 대표적이다.
SSD는 2021년 도입된 제도로,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형 인프라 사업이 여러 부처를 거치지 않고 단일 창구를 통해 승인받을 수 있도록 했다. IDA는 대규모 투자 사업의 인허가 절차를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전담 기구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절차를 일원화해, 통상 수년이 걸리던 인허가 기간을 수개월 수준으로 단축하고 있다. 맥쿼리 측은 “실제로 시드니 북부에 위치한 AI 데이터센터인 맥쿼리파크 프로젝트도 SSD를 활용했는데 행정 절차를 줄여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전력 직접구매계약(PPA) 제도도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 사업자)가 호주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발전사업자와 장기 계약을 맺어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이미 모스 총괄은 “기업들은 호주의 다양한 민간 발전사업자와 직접 PPA를 체결해 장기간 원하는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조달할 수 있다”며 “전력 확보 가능성이 뒷받침돼야 투자 계획이 세워지고, 그래야 실제 건설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에프알브이 호주(FRV Australia)가 운영하는 300MW 규모 월라 월라 태양광 발전소와 15년 장기 계약을 체결해 데이터센터 운영 전력을 확보했다.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인 것은 호주만이 아니다. 인도는 외국 기업에 최대 20년 세금 감면과 데이터센터 경제특구 조성 등 종합 인센티브를 내걸었고, 말레이시아는 최대 100% 투자세액공제와 승인 후 12개월 내 전력망 연결 보장을 앞세워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와 국회도 AI 데이터센터 지원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처 갈등에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법안의 핵심은 비수도권에 한해 민간 전력 직접거래(PPA)를 허용하고, AI 데이터센터 확충 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하는 데 있다. 다만 AI 데이터센터에만 특례를 부여할 경우 다른 전력 다소비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를 넘어 액화천연가스(LNG)까지 PPA를 허가해줄지를 두고 부처 간의 이견도 커 법안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9일 법안 상정도 기후에너지부의 반대로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 데이터센터 경쟁에서 뒤처진 채 AI 강국이 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한국도 전력계통영향평가 패스트트랙 같은 속도감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수도권 집중도 문제인데 데이터센터는 전력, 부지, 인허가, 네트워크가 모두 맞물려 있는 만큼 종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여성기자협회 주관 ‘딥테크 관련 호주 연구개발(R&D) 및 정책’ 현장 취재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캔버라·시드니=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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