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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막으면 지하철 덜 붐빌까…‘무임승차’ 논쟁에 가려진 것

2026.04.04 09:00

출근길 혼잡 해소냐 노인 이동권 침해냐…실효성 논란 다시 불거져
도시철도 손실 보전 위해 연령 상한, 시간 제한, 차등 적용 등 거론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개찰구 모습. 연합뉴스


[주간경향] 임미령씨(68)는 서울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일찍 나오는 날은 오전 8시, 보통은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쯤 퇴근한다. 임씨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는 일부러 피하고, 일찍 나갈 때도 있는데 그때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고유가 장기화에 대비한 대중교통 이용 권장을 위해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집중도가 높아서 괴롭지 않으냐. 피크타임만 (노인의) 무료 이용을 한두 시간만 제한하는 것은 어떤지 연구해보라”며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출퇴근하는 노인들과 구분해 “놀러 가거나 마실 가는 분들을 제한하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임씨는 이렇게 말했다. “출퇴근할 때는 젊은 사람들도 지하철 열차를 몇대씩 보내고 탈 수 있는 시간대잖아요. 놀러 가는 노인들이 그 시간에 지하철을 많이 타겠습니까.”

이 대통령의 지시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논하는 자리에서 나왔지만,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였다. 고령화로 지하철 운영 손실이 커진다는 지적에 따라 노인 연령 상향, 출퇴근 시간대 무임승차 제한, 소득별 차등 요금 부과 등 여러 방안이 논의돼왔다. 다만 이 제도가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이기 때문에 이를 변경할 때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몇 가지 쟁점을 짚어봤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하철 1~8호선 승하차 인원 중 출퇴근 시간대(오전 7~9시, 오후 6~8시) 노인 무임승차 이용객은 전체 승객의 8.3%로 조사됐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서울 지하철 1량의 정원은 160명이고, 출퇴근 시간대 혼잡도가 150%로 나오기 때문에 1량에 240명가량 탄다고 할 수 있다”며 “출퇴근 시간대 1량에 노인 승객(8%)은 최대 19명가량이 되는데, 이분들이 빠진다고 해서 혼잡도가 효과적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통수단은 개인 선택의 문제인데,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직장인들이 대중교통 혼잡도를 조금 낮췄다고 해서 대중교통을 선택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이용객 중 ‘출퇴근하는 사람’과 ‘놀러 가는 사람’으로 구분 지어 탑승을 제한한다고 할 때, 노인만 제한하는 것은 연령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 기준이 아니라 노인 포함 승객 전체를 ‘유임 탑승’으로 바꿨을 때, 노인 승객 중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다면 혼잡도 자체는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위원장은 “노인들도 느긋한 아침을 맞고 싶어하지 일찍 나오고 싶어서 나오는 분들은 많지 않다”며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을 타는 노인들은 민간이든, 공공(노인 일자리)이든 일하러 가는 분들이 많고 손주 돌봄을 위해서 그 시간대 움직여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대한노인회는 이미 회원들에게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라고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퇴직자지부 준비위원회는 지난 4월 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무임승차 제한은 교통약자인 노인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것이자 명백한 노인 차별”이라며 “정부는 노인 전철 요금 유료화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 퇴직자지부 준비위원회 제공


서울의 경우 탑골공원 등에서 여가를 보내기 위해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는 노인들이 있다. 고 위원장은 “지역의 노인복지관 등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먼 곳까지 이동하는 분들”이라며 “(서울 도심에서 주는)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분들은 제때 줄을 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아침 일찍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하철 혼잡도를 낮추고자 한다면 차량 증편, 환승 개선, 일터의 수도권 쏠림 해소 등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데 혼잡도의 책임을 노인으로 돌리고 표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6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출퇴근 시간 어르신 대중교통 무료 이용에 대한 일부 제한은 초고령사회, 초유가 시대 해결을 위한 논의 과제”라며 당이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통령의 제안은 ‘대중교통 이용할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라며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거나 대상 연령을 변경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앞서 3월 23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도시철도 운영 손실 구조와 관련해 “결국 노인 연령 상향 여부와 중앙정부 지원, (지자체의) 자구적 노력과 소비자 부담 등이 패키지로 타협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 대통령 지시를 두고 언론과 전문가, 시민사회 모두 대중교통 활성화 관점보다는 도시철도 운영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3월 25일 발표한 ‘6개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 분석’ 자료를 보면, 2017~2025년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교통공사 등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무임승차 손실액은 5조3652억원에 달한다.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서 노후 차량 교체, 신규 노선 개설, 안전시설 투자 등이 어렵고 인력 구조조정 압박도 심해지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재정 안정화 방안으로 공공재라는 특성상 급격한 요금 인상은 어렵기 때문에 지자체는 중앙정부 재정 지원이 법률에 따라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손보는 방안이 있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1∼8호선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은 4488억원. 이중 경로 무료이용이 85%다. ‘고령화사회를 고려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개선방안’(‘교통연구’, 제32권 제3호, 2025. 9) 연구에서 서울 지하철 1~9호선을 대상으로 무임승차 허용 연령을 70세로 상향해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2025년 현행 무임비용 대비 약 34.7%의 손실 절감 효과를 보였다. 이 연구에서 기초연금 수급자 기준(노인인구 소득 기준 70% 이하만 혜택)으로 무임승차를 허용했을 때는 현행 대비 63.4%로 무임비용이 대폭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노인복지 측면에서 보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연구원 연구(2021)에 따르면 자살 감소,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의료비 절감 및 노인복지예산 절감 등의 편익이 발생하는데, 선행연구에 기초해 202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3650억원의 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중근 대한노인회 회장은 2024년 10월 노인 연령을 매년 1년씩 상향해 75세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그해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65세 이상’을 경로우대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다수의 노인정책 대상이 65세 이상으로 정해졌다. 노인인구 증가로 복지 재정 지출이 커지는 만큼 노인 연령 상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와 노인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노인 연령 기준 조정의 원칙과 단계적 적용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30년까지 3단계 조정방안을 제안했다. 1단계는 경로우대 제도 연령 기준 상향, 2단계는 공적연금 기준 연령 상향, 3단계는 추가 연령 상향 검토 단계다.

사회적 수용이 높은 정책부터 단계적으로 연령 기준을 높이자는 취지로, 1단계에 지하철 무임승차 허용 연령 상향이 포함됐다. 한국리서치의 지난해 1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찬성’이 72%로 높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68%였다. 개선안 중에서는 ‘제도 개시 연령 상향’(68%)이 가장 많은 동의를 얻었다. 석 교수는 “베이비붐 이후 세대가 노인인구로 진입하는 시기부터는 변화가 필요하다. 대중교통이나 공공기관 이용 시 일정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세대 간 형평을 도모하는 사회 규칙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정책은 노인의 이동권을 제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균형을 잡는 정책을 만들어봄 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인 연령 상향은 노인복지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가난한 노인과 중산층 이상의 노인층에 적용하는 정책을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면서 “당장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손본다면 연금 수령액이 적은 저소득층에게는 삶의 변화가 클 것”이라고 했다. 이어 “초고령사회에서 ‘대도시 지하철’을 빼면 오히려 교통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가 고통 분담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정부는 멀리 내다보고 연금, 일자리 등 노인정책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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