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 채굴 시장 [이서윤의 인공지능&인권지능]
2026.04.05 18:40
이서윤 | 사법연수원 교수·판사
봄이다. 여기저기 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봄꽃 이름은 익숙하지만, 간혹 그 이름이 궁금한 녀석들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이미지 검색 기능을 활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결과 화면에 함께 뜬 실시간 검색어를 누르고, 관련 영상을 누르고…. 어느새 꽃은 안중에도 없고,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다. 디(D.) 그레이엄 버넷 프린스턴대 교수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주의(注意)가 하나의 자원으로 거래되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버넷은 ‘휴먼 프래킹’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개념으로 현상을 설명한다. 석유 프래킹, 즉 석유 채굴업자들이 고압의 물과 화학 물질을 지층에 주입해 자원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그 과정에서 주의라는 자원을 추출한다는 것이다.
석유 채굴은 규제의 대상이다. 지하수 오염, 지반 침하, 온실가스 배출과 같은 피해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디지털 산업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주의 채굴은 여전히 개인의 선택이나 절제의 문제로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주의력의 파편화, 청소년의 우울과 불안, 정치적 양극화와 공론장의 훼손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은 심리학자와 데이터 전문가를 동원하여 어떻게 하면 이용자들이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성과를 알고리즘에 반영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내면 환경을 훼손한다. 주의와 인지의 채굴은 단순한 집중력 저하를 넘어, 인간이 사유하고, 관계 맺고, 판단하는 능력 자체를 잠식한다. 온라인 플랫폼은 다양한 형태의 사고 과정을 짧고 강한 자극을 통해 단일한 패턴으로 수렴시키면서 인지의 생태계를 일종의 단일 경작 구조로 재편하고 있다. 다양성을 잃은 생태계가 그러하듯, 단일한 자극에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사고는 쉽게 무너진다. 나아가 알고리즘은 사용자보다 앞서 가장 그럴듯한 판단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 인지 과정 자체를 외주화함으로써, 복잡한 형량과 치밀한 계산을 요구하는 사고 능력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한때 환경 오염은 개인이 감수해야 할 불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염된 물과 땅, 공기가 공동체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문제로 인식되면서 비로소 규제가 생겨나고 환경권이 등장했다. 주의력 산업을 둘러싼 작금의 상황 역시 이와 유사한 전환의 초입에 있다. 인간이 자신의 주의를 온전히 사용할 권리,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에 의해 사고가 대체되지 않을 권리는 장차 보호되어야 할 법적 가치로 검토될 수 있다. 이는 결국 플랫폼 설계와 알고리즘 구조에 대한 규율이라는 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배심원단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중독적 설계로 청소년에게 피해를 끼쳤다면서 처음으로 플랫폼에 대해 약 90억원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 원고는 6살에 유튜브를, 9살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여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20살의 여성이었다. 학계에서도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알고리즘 추천과 같은 중독적 기능들을 설계 단계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미국 내에서만 1만건이 넘는 유사 사건들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1990년대, 수십년간 니코틴 중독의 위험성을 은폐했던 담배회사들에 법원이 책임을 인정했던 것처럼, 플랫폼 기업들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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