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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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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머리 잘라 줄 이발사님은 어디 없나요?

2026.04.03 10:46

파킨슨병 악화 이후 전문 이발사 손질 없이 2년... 어설프게 잘라도 "잘했다"는 아빠를 보며【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tvN 예능프로그램 <보검 매직컬>에서는 박보검이 외딴 시골마을에 미용실을 차리고 동네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어주는 마법 같은 일을 벌인다. 박보검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도 '이건 꿈일 거야'를 외칠 판에, 내 머리까지 만져준다니 이건 정말 온 우주의 행운을 들이부은 마법이 아닐까.

초보 이발사가 한 가닥 한 가닥 정성을 다하는 가위질은 나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들지만, 진심에 최선을 얹은 그를 보고 있으면 응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에서 무주 시골 동네 어르신들이 참으로 부럽다.

 tvN의 예능프로그램 <보검 매직컬> 한 장면.
ⓒ tvN

25년 전 파킨슨을 진단받은 아빠는 건강을 잘 지켜오시다, 2년 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셨다. 바깥출입이 어려워지면서 아빠가 현관문 밖을 나가는 건 병원을 갈 때뿐이다. 매일 1시간씩 돌던 산책도, 아빠의 친구분들이 몸이 불편한 아빠를 위해 집 앞으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모임도, 산들바람에 올라탄 꽃내음이 풍성했던 꽃나들이도 이제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외출이 어려운 아빠 머리 자르는 딸

외출이 힘들어진 아빠에게 머리를 깎는 일상다반사는 어느 순간 너무나 큰일이 되어버렸다. 이발소를 가지 못한 몇 달 사이에도 아빠의 머리카락은 속절없이 자라고 있었다. 점점 자라나는 아빠의 머리카락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나는 결단을 내렸다. 단발머리의 아빠를 상상할 수는 없는 터! 이래 봬도 30년간 내 앞머리를 스스로 잘라 온 나이지 않은가. 앞머리나 뒷머리나 비슷하지 않겠어?

'그래, 내가 아빠의 머리를 잘라보겠어!'

문화센터라도 다니면서 이발 기술을 연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평일에는 회사에, 주말에는 본가 충청도에 내려가 아빠 병간호를 하는 나에게 그런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우리에겐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유튜브가 있지 않은가.

긴 영상도 사치다. 바쁘다 바쁜 현대사회에 4분짜리 영상이면 충분하지. 쓱싹쓱싹, 너무나도 쉽게 머리를 잘라내는 전문가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에 자신감을 충전한 나는 곧바로 이발도구를 주문했다.

 아빠의 단발머리를 상상할 수는 없는 터! 아빠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인터넷으로 이발도구를 주문했다.
ⓒ 변은섭

대망의 첫 이발의 날. 박보검이 손을 바들바들 떨며 조심조심 머리를 자르던 첫날의 마음이 그랬을까. 다들 평온하던 다른 가족과 다르게, 나는 몹시 분주했다. 혼자 뭐가 그리 바쁜지 의자에 앉은 아빠의 왼쪽 오른쪽을 백 번쯤 왔다갔다 하며, 수선스럽지만 날쌔게 몸을 움직여 첫 커트를 마쳤다.

'이발소에서 하고 나온 머리처럼 잘 됐다'는 가족들의 응원이 이어졌지만, 사실은 머리가 짧아져서 깔끔해진 것, 그게 다였다. 얼핏 보면 꽤 잘 자른 듯 보였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삐뚤빼뚤 일자로 맞는 선이 없었다. 그래도 '누가 아빠 머리를 자세히 뜯어볼 거냐'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더 이상 아빠의 이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이 정도면 중타 이상은 된다는 나의 뿌듯함은 눈에 필터가 쓰인 듯 머리가 예쁘게도 보였다. 문제는 2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전문가가 잡아주었던 머리 모양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내가 가는 길이 첫 길이자, 완성의 길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뒷머리를 자르다 '엇' 하는 순간에 땜빵이 생기면 급하게 옆머리를 당겨와서 땜빵을 숨겨보기도 하고, 영상을 몇 번을 돌려봐도 귓바퀴 주변 머리는 어떻게 자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잘라보다 상처를 내기도 했다.

윗머리는 짧게 자르면 위로 바짝 서있는 통에, 옆으로 잘 넘어가도록 자르지 않고 내버려두었더니 윗머리를 묶어 사과머리를 만들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머리를 자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어째서인지 쪼그라드는 실력에 한계를 느끼지만 방법이 없다. 결론은 하나, 내 안에 숨은 잠재력을 어떻게든 끄집어내 발휘해야 한다.

여차저차해도 이발을 끝내고 나면 얼추 깔끔한 맛이 있어서인지, 머리 모양이 좋아 보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대안도 없으니, 막내딸이 신중에 신중을 더해 자르는 모습이 고맙고 기특했던 아빠는 늘 머리가 마음에 든다며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말해주신다.

진심이 이뤄내는 마법

 <보검 매직컬>에서는 박보검이 시골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 tvN

3월 27일 <보검 매직컬> 방송에서는 박보검이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어르신 댁으로 출장을 나가 머리를 잘라주었다. 방문자가 박보검이면 그 기쁨이 만 배에 달할 것은 분명하지만, 설령 박보검이 아니더라도 자격증을 갖춘 이발사가 집으로 찾아와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는 것을 보니 부러워진다.

이발사가 우리 아빠 머리를 잘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이발사의 커트를 받을 날은 앞으로 있을까? 만감이 교차한다.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외로우셨을 어르신을 위해 내일 또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나는 박보검은 어르신의 머리만 다듬어 준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보듬어 준 거다.

<보검 매직컬>의 진짜 마법은 머리를 자르는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전해질 때 이뤄지는 것. 비록 우리 집에 박보검이 부리는 마법은 없지만, 선무당 막내딸의 얼렁뚱땅 가위질에 아빠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진심은 있다. 어설픈 가위질로 행복이 쌓이는 마법 같은 시간이 부디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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