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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가 김홍도 작품의 특색, 소의 엉덩이를 자세히 보세요

2026.04.04 10:46

[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인간과 동물 ③ 공존 상대인 소
 김홍도 <논갈이> 18세기 후반
ⓒ 퍼블릭 도메인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김홍도는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에 필요한 그림을 제작하는 도화서 화원이었고,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진화사로 임명되었으니 그의 실력은 당대에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김홍도가 신윤복과 함께 조선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화가로 자리 잡은 데는 풍속화의 역할이 컸다.

신윤복이 주로 양반들의 뒷이야기를 풍속화에 담았다면, 김홍도는 백성의 일상에 더 관심을 두는 편이었다. 특히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논갈이>도 그중의 하나다. 앞에서는 두 마리의 소에 쟁기를 걸고 땅을 갈아엎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뒤로는 농부들이 쇠스랑을 이용하여 논을 고르고 있다.

이용하되 폭력적이지 않은 관계

김홍도가 평소에 관찰한 각기 다른 장면을 하나로 모아 그린 듯하다.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 상당히 경사진 진 땅을 오르는 구도인 데 반해, 뒤의 그림은 평지에서의 작업이니 말이다. 보통 경사가 심하거나 척박한 땅은 두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끌었음을 고려할 때 언덕배기의 거친 땅을 오르는 중이지 싶다. 체중이 쏠리는 뒷발로 버티고 앞발을 내디디고 있다.

김홍도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도 엿보인다. 먼저 쟁기를 끄는 농부의 오른쪽을 유심히 보면 가느다란 선이 하나 보인다. 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오른손으로 소를 제어할 때 쓰는 회초리를 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왼쪽 어깨가 얼굴을 전부 가릴 정도로 올라가 있다. 옷도 따라 올라가 허리춤의 살이 그대로 보인다.

쟁기를 깊게 박아야 하는데 한 손으로 눌러야 하니, 쟁기 손잡이를 가슴이나 어깨에 대고 힘을 주어서 나타난 자세다. 다리로 버티며 힘을 주기에 농부의 종아리에도 근육이 불끈 솟아올랐다. 김홍도가 평소에 농부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에 기초하여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소의 묘사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땅에 깊게 박힌 쟁기를 온몸으로 당기며 앞발로 나아가는 중이어서 어깨 쪽 근육이 잔뜩 부풀어 있는 상태를 강조했다. 또한 어깨와 목 사이에 걸려 있는 멍에로 인해 생긴 주름도 놓치지 않았다. 나아가 소 특유의 지저분한 엉덩이에도 신경을 썼다. 소는 하루에 워낙 많은 양의 분뇨를 배출하는데, 튄 분뇨가 꼬리를 자주 흔들기에 엉덩이 전체에 퍼져 지저분해진다.

김홍도는 농부들보다도 오히려 소를 더 꼼꼼하게 관찰하고 공을 들여 그림에 묘사해 놓았다. 조선과 같은 농경 사회에서 소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논을 갈고 농토를 일구는 데 소는 필수적이었다. 물론 빈농의 경우에는 소가 없어서 사람이 쟁기를 끌었지만, 전체적으로 농본 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소를 사들이거나 외양간을 지을 때는 길일을 받아 시행했다. 축사 관리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보름마다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외양간의 보온뿐만 아니라 지푸라기 덮개를 만들어 소를 덮어주었다. 농사철이면 낮에는 풀을 뜯기고 밤중에 죽을 많이 먹여서 힘을 보충하게 했다. 농한기에는 소의 살을 찌우고 힘을 기르게 배려했다. 종종 양지바른 곳에서 털을 골라주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켰다.

조선 조정에서는 소를 함부로 도살해 식용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엄격히 통제했다. 아무나 자유롭게 소를 잡아 고기를 판매할 수는 없었다. 자연사했어도 관아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만 매매나 식용으로 이용했다. 농부들은 소를 식구까지는 아니어도 일을 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의 '생구(生口)'로 불렀다. 적어도 사람으로 생각할 만큼 존중하고 보살피는 태도를 지녔다. 농경 사회에서 소를 이용하되 함부로 대하지 않는, 친근한 관계를 이어갔다.

친근한 공존 상대로서의 소

같은 농경 사회라 해도 우리보다 척박한 토지와 기후 조건에 있던 나라에서는 더 특별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인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도를 직접 여행했든, 아니면 매체로 접했든 소와 관련된 희한한 현상을 알고 있다. 인도의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와 골목을 누비는 소 무리 이야기 말이다.

복잡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상점까지 불쑥 들어가 진열된 채소에 입을 대거나 상품을 훼손하는 영상을 접했으리라. 소 한두 마리라도 찻길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가뜩이나 교통지옥인 도로가 완전히 막혀서 난리가 난다. 아무 곳에나 배설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거칠게 대응하지 않는다. 찻길에서 소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고, 상점으로 쳐들어와도 안내하듯 길로 내보낸다.

심지어 가뭄이나 한파가 몰아닥쳐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암소를 잡아먹지 않는다. 서구에서는 인도의 '암소숭배' 전통을 야만적 사고의 한 종류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동양적' 사고로 규정하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편향도 나타난다. 하지만 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인도인의 소에 대한 특별한 문화가 농경과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인도의 특수 조건은 정기적으로 몬순 기후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 한발과 기아를 겪는 동안, 농부들은 가축을 잡아먹거나 팔아넘기고 싶은 많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이런 유혹에 굴복한 자는 한발에서 살아남아도 결국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결과가 될 것이다. 소를 없앤 후 비가 오면, 이미 토지를 경작할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몬순 기후는 여름에는 바람 방향이 해양에서 육지로 불며 고온다습해서 많은 비를 뿌린다. 인도는 이러한 계절풍 기후가 불확실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기 일쑤다, 또한 황폐화 상태에 이른 토지가 많다. 게다가 인도 농민의 대다수가 소규모 토지를 경작하는 영세농이어서 소의 노동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다.

그러므로 당장 가뭄으로 굶주린다고 해서 소를 잡아먹으면, 그 결과로 더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사태를 초래한다. 미국·유럽의 농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인도와 미국 상황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트랙터는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수소는 암소가 낳는다." 소를 둘러싼 인도의 문화는 후진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농경 사회의 특정한 조건에서 생겨난 소와 인간의 독특한 관계, 공존의 필요가 그 어디보다 강한 관계다.

가족과 같은 느낌을 주는 소

 최북 <기우귀가> 18세기
ⓒ 퍼블릭 도메인

조선 회화에서 소와 인간의 친밀하고 공존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도상이 있다. 소를 타고 가는 아이나 노인, 혹은 여인을 묘사한 그림이다.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가진 화가라면 한두 점은 그렸다. 조선 중기의 화가 최북(1712~1760)도 <기우귀가>(騎牛歸家)를 남겼다.

출신 성분이 낮고 가난한 직업 화가였던 최북에게 농부나 시골의 삶은 아주 익숙한 소재였다. 토끼·쥐·소·메추라기 등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을 묘사한 그림이 꽤 많다. 농부들과 삶을 함께하는 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림은 제목 그대로 한 아이가 소의 등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거의 평생에 걸쳐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살았고, 직접 보고 경험한 바를 주로 그렸던 직업 화가답게 소의 세부 묘사가 정교하다. 김홍도의 <논갈이>에 나오는 소와 비교하면 다른 점이 확실히 보인다. 무엇보다도 정성스럽게 온몸의 털을 그려 넣었다. 그저 짧은 선으로 털이 있음을 나타낸 데 머물지 않는다. 몸의 모양에 따라 털의 방향이 다른 모습을 반영했고, 등이나 다리의 억센 털과 배의 부드러운 털을 구분하여 그린 점도 눈에 띈다.

소의 뒷다리 형태도 비교할 필요가 있다. 김홍도가 그린 소는 거의 일자 모양으로 쭉 뻗어서 몸에 비해 빈약해 보인다. 이와 달리 최북은 뒤로 굽은 소의 다리 모양을 제대로 살려냈다. 게다가 축 늘어지고 큼직한 소의 음낭도 놓치지 않았다. 소의 다리 움직임을 따라 일렁이며 흐름이 바뀌는 물결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기우귀가'는 조선이나 중국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중국 남송 시대의 저명한 선승인 곽암사원이 시로 표현한 '십우도'의 한 단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진리를 깨닫는 열 단계의 순서를 소와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 내용이다. '기우귀가'는 망상의 굴레를 벗어나 본래 있던 마음속의 소를 타고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비유했다.

그렇다고 해서 최북을 비롯한 조선의 화가가 중국 선승의 십우도 내용을 무조건 따라 그렸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 농가에서 소를 돌보는 일은 큰 힘이 필요 없기에 아이들이 담당하곤 했다. 봄·여름·가을에는 들로 데리고 나가 풀을 뜯어 먹게 하고, 겨울에는 어른을 도와 소죽을 끓여 주기도 했다. 개천에서 소를 씻겨주고 양지바른 곳에서 털을 골라주는 일도 했다. 그렇게 소와 함께 성장하기에 식구처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조선의 화가들은 농가에서 흔히 접하는 광경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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