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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아픔 담은 '내 이름은', 제주로 돌아온 母 염혜란 (종합)[쿠키 현장]

2026.04.02 18:22

믿고 보는 배우 염혜란이 민족의 상흔을 투박한 듯 섬세한 연기로 촘촘하게 그린다. 제주 4.3 사건이 남긴 상처를 상징하는 인물로 돌아온 그의 열연이 스크린을 넘어 극장가를 압도할 수 있을까.

영화 ‘내 이름은’ 기자간담회가 2일 오후 서울 한강로3가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정지영 감독, 배우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이 참석했다.

‘내 이름은’은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세 아들 영옥(신우빈)과 까맣게 잊힌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의 궤적을 쫓는 영화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건이 남긴 아픔을 모자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정지영 감독은 연출을 맡은 이유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분이 하겠지’ 하고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남북 이데올로기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데 ‘남영동1985’를 했었다. 같은 이야기를 또 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동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다. 사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름을 찾아가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이 소재를 가지고 마음대로 고쳐서 영화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2년 동안 열심히 고쳤다”고 밝혔다.

작품 구조는 표면적으로 둘로 나뉜다. 4.3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98년, 정순은 잃어버린 9살 전 기억을 찾기 시작하고 영옥은 내분을 조장하는 전학생 경태(박지빈)에게 저항한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진실을 쫓아가면서도 이 폭력의 매커니즘을 또 하나의 사회인 학교를 통해 다루면서 메시지를 강화한다. 정지영 감독은 “공동체가 있을 때 외부인이 들어와서 질서를 다시 잡으려고 할 때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집단폭력이 된다”며 “끔찍한 폭력을 추적해서 느닷없이 보여주면 충격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완충지대로서 학교폭력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염혜란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로 분했다. “비교하자면 정순이는 명이 길었다”는 너스레로 운을 뗀 그는 “질곡의 한국사를 견뎌온 강인한 어머니라는 점은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이 인물이 현재를 사는 우리와 닮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4.3 사건을 다룬 작품과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참고하면서 인물을 구체화했다고 덧붙였다.

출연 계기는 입체적인 서사와 캐릭터였다. 염혜란은 “문학적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아서 좋았다. 단순히 4.3사건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 78주기인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제시해서 매력적이었다”며 “캐릭터도 평평하거나 전형적이지 않았다.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한 다층적인 인물”이라고 짚었다.

정지영 감독과의 인연도 작용했다. 염혜란과 정 감독은 정 감독의 전작 ‘소년들’(2023)에서 만났다. 정 감독은 “그때는 염혜란 배우가 작은 역할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반했다. 연기가 맛깔나고 리얼하다. 저런 연기자는 더 큰 역할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염혜란 배우가 다음 작품도 같이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주인공에 염혜란을 놓고 시나리오를 고쳤다. 염혜란 씨가 젊은데 나이 먹은 여자를 연기해야 해서 미안했지만 시나리오를 읽으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비화를 전했다.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은 정순의 아들 영옥 역, 영옥의 단짝 민수 역, 서울에서 온 전학생 경태 역을 각각 맡았다. 실제로 신우빈과 최준우는 20세, 박지빈은 31세다. 모두 교과서로 접했던 4.3사건의 아픔을 다룬 이 작품에 합류하면서 염혜란 못지않게 중압감을 느꼈을 법하다. 신우빈은 “내가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한 가정과 모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엄마아빠가 생각나기도 했다. 최대한 이 부분에 집중해 연기했다”고 했다. 최준우 역시 “민수라는 캐릭터에 초점을 뒀다. 영옥이가 엇나가려고 하면 최대한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게끔 무게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박지빈은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존재하는 캐릭터지만 조심스러웠다”며 “경태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영옥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표현하기 위해 감독님께도 자문을 구하고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텀블벅 펀딩 참여자들의 이름을 비롯해 작품을 위해 마음을 보탠 이들의 이름이 표기됐다. 정지영 감독은 펀딩 참여자들을 언급하며 “이분들 덕분에 시드머니를 만들어서 영화를 시작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이러한 영화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 특정한 투자자가 없다. 제가 앵벌이하고 연기자와 스태프도 희생해줬다. 아픈 이야기지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염혜란 또한 “귀하게 세상에 나오게 된 작품 잘 부탁드린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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