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분의 1' 줄여도 갔다…10년차 변호사, 통상 최전선 택한 이유
2026.04.03 04:30
변호사로 ISDS·WTO 등 국제분쟁 맡다
2022년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 전직
"급변하는 통상질서 파악하려 연봉 포기"
"당장 수급 차질을 빚는 나프타보다는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헬륨이 더 걱정됩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민관을 넘나든 통상전문가로 손꼽히는 김세진 법무법인세종 통상산업정책센터장(선임외국변호사)은 최근 한국일보와 만나 장기화하는 미국·이란 전쟁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는 반도체 공급망 한가운데 있는 초크 포인트"라며 이같이 말했다. 헬륨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과정에서 추출되는 부산물이다. 외신에 따르면 전 세계 헬륨 공급량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는 카타르는 지난달 이란 공습으로 라스라판 LNG 시설이 파괴됐다. 헬륨 생산도 타격을 입어 연간 헬륨 수출량은 약 14% 감소했고, 복구에는 최대 5년이 걸릴 전망이다. 그는 "국내 기업이 헬륨 6개월분을 비축해 당장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 이후 물량은 어떻게 확보할지 아직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산 석유화학제품 도입 문제에 대해서도 "최근 기업의 문의가 많았다"며 "결제 문제를 풀어야 하니까 정부가 금융거래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센터장은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때 1년간 미국 워싱턴대학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기회를 잡으면서 '통상'으로 진로를 틀었다. "관심이 많았던 공동체 문제나 공적(Public) 영역을 많이 다뤄 정치학을 선택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워싱턴대학에 있어 알게 됐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최대 현안 중 하나였고, 미국처럼 통상 분야에 변호사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던 시기여서 국제변호사가 돼 통상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죠."
"나프타보다 헬륨 더 걱정... 세계 반도체 혼란 올 수도"
2005년 9월 입학한 워싱턴대 로스쿨을 마치고, 2010년 해군 법무행정장교로 입대해 군복무(3년)도 해결한 뒤 2013년 법무법인 태평양에 입사했다. 10년간 국제상사중재·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해외소송·세계무역기구(WTO) 소송 등 고난도 국제분쟁을 수행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당시 ISDS 소송이나 투자중재 등의 실무를 경험한 국내 전문가가 드물어 연세대 겸임교수로 국제투자법 강의(2015, 2016)도 했다.
한창 현장에서 뛰던 그는 통상 질서 변화를 감지했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고, 여러 국가에서 우후죽순 규제가 생겼다. "금기어나 다름없던 보조금을 각국 정부가 대놓고 주고, 강력한 분쟁해결 기구인 WTO 상소기구는 마비됐죠. 정부 간 협의해 체결한 국제 협정과 규범을 준수하는 자유무역시대가 흔들렸어요. 유럽이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에 비례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계획을 공개한 것도 2019년쯤입니다. 각국 규제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줬죠. 원하는 곳에 진출해 공급망을 만드는 시대가 저무는 격변기에 통상 흐름을 빨리 파악하려면 정부에서 통상 정책을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 진심 알아준 '맞벌이·3자녀 양육' 아내 고마워"
그는 2022년 중반 산업통상부가 통상분쟁대응과장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심은 섰으나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당시 10년간 변호사로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다 연봉이 4분의 1로 줄어들 처지였다. 그가 조언을 구한 주변 지인 10명은 "그래도 도전해 보라"고 응원했지만, 맞벌이로 직장 생활하며 자녀 3명을 양육하는 아내는 반대할 거라 생각했다. "아내에게 '급변하는 통상 질서 속에서 우리 기업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려면 정부 일원으로 최전선에서 일해볼 필요가 있고, 우리 자녀 세대의 운명도 걸린 문제'라고 설득했더니 집(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조건으로 아내가 허락해줬어요. 진심을 알아준 아내가 정말 고마웠죠." 그는 2022년 10월부터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SRT 첫차를 타고 7시 30분까지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찍 귀가해 아이들도 돌봤다고 한다.
쉰들러 ISDS 승소... 한미 세탁기 분쟁 승소 '정부 표창'
3년간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으로 정부의 통상전략을 수립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 수입으로 심각하게 피해를 봤다"는 자국 기업의 의견을 받아들여 WTO에 제소한 '한미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분쟁사건'에서 승소를 이끌어내며 정부 표창도 받았다. 최근 승소한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 홀딩 아게'의 3,200억원 상당 ISDS 분쟁 변론에도 참여했다. 또 미국을 비롯한 각국 규제와 보조금 정책 변화를 짚어주고, 반도체 배터리 화장품 등 산업별로 기업들의 법무 수요를 파악, 논의하는 세미나(통상법무카라반)도 매월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7월에는 '조건부 자유무역시대'라는 책도 펴냈다.
지난해 10월 3년 연장에 재계약했던 그는 지난 1월 개인사정으로 불가피하게 공직을 내놓고, 최근 법무법인 세종으로 옮겼다. "통상과 산업, 공공정책을 간과하고는 기업이 글로벌 변화에 대응할 수 없는 시대라 셋을 아우르는 '통상산업정책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는 제 의견이 반영돼 센터장을 맡게 됐어요. 공직을 나온 아쉬움이 크지만, 그동안 배운 걸 민간에서 마음껏 펼쳐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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