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이 아닌 여행으로”…한진관광이 ‘트래블’을 택한 이유 [비크닉]
2026.04.01 11:19
문제는 지금의 여행이 그때의 여행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던 시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을 설계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한진관광이 4월 1일 ‘HANJIN TRAVEL’(한진트래블)로 사명을 바꾸는 이유다. 이는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여행을 설명하는 언어를 다시 고르는 일에 가깝다.
‘관광’이라는 단어는 오래도록 유효했지만, 요즘의 여행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보는 것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일정에서 경험으로 이동한 지금, 한진관광이 택한 새 단어는 ‘트래블’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듣기 위해 지난 31일 서울 중구 한진트래블 본사에서 이장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번 변화를 두고 “지금의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말했다.
깃발 따라가던 ‘관광’에서 벗어날 때
실제로 여행의 문법은 바뀌고 있다. 자유여행(FIT) 중심으로 이동했던 흐름은 다시 경험 중심의 형태로 확장되고 있고, 패키지 역시 이를 반영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이런 관점에서 ‘트래블’은 지금의 여행을 설명하는 데 더 적확하다. 올해로 창립 65주년. 기념비적인 시점을 기다릴 법도 한데 이 대표는 “이 변화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필요했다.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의지를 내보였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해 시장의 인식을 먼저 바꾸겠다는 시도다. 도메인도 기존 kaltour.com을 버리고 hanjintravel.com을 택했다. 사명과 주소의 불일치를 정리하고, 고객이 만나는 모든 접점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다. 브랜드 통합은 ‘지금의 여행을 하는 회사’라는 방향성 선언에 가깝다.
여행 사이트의 경쟁력은 ‘결제 속도’
홈페이지 개편 역시 ‘디자인’보다 ‘흐름’에 초점을 맞췄다. 이 대표는 “UI보다 UX(사용자 경험)가 더 중요하다”며 “얼마나 빠르게 결과를 얻고 결제까지 이어지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변화는 내부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과도 맞물린다. 특히 AI 기반 상품 설계 도입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담당자가 데이터를 일일이 조합해 상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AI가 초안을 구성하고 사람이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방식으로 전환 중이다.
기술이 설계의 효율을 높이고 있지만, 여행 경험을 완성하는 영역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이런 흐름에서 한진트래블은 기존 ‘투어리더’로 불리던 인솔자들의 명칭을 ‘여행 매니저’로 변경했다. 이 대표는 “요즘 고객은 이미 많은 정보를 알고 떠난다. 단순히 앞에서 이끄는 리더이기보다, 고객이 AI로도 다 알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고 현장에서 힘든 지점을 세심하게 케어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프리랜서 여행 매니저들에게 정기 건강검진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판단에서다. 여행 매니저의 컨디션이 결국 고객 경험의 질과 직결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여담’부터 ‘KALPAK’까지, 신뢰의 선순환
이 대표는 대한항공 공채로 입사해 브리즈번 지점장과 여객 컨텐츠마케팅 팀장을 거쳐 진에어 마케팅 본부장을 역임한 항공·여객 전문가다. 항공과 여행을 모두 경험한 이력은 시장 변화를 읽는 데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는 “항공 공급이 확대되면 고객 선택지는 늘어나고, 여행사는 더 다양한 상품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가 읽는 최근 여행 흐름도 흥미롭다. 그는 “여행은 다른 산업처럼 트렌드가 급격하게 뒤집히지는 않지만, 목적지는 굉장히 빠르게 바뀐다”고 말했다. 현재 여행 시장에서는 일본이 가장 강하고 중국이 그 뒤를 잇는다. 반면 동남아는 유류할증료 영향으로 주춤하고 있으며, 유럽은 “비싸도 간다”는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크루즈 역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진은 세 개의 축으로 여행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전통 패키지를 담당하는 ‘한진트래블’을 중심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플랫폼 ‘여담(여행을 담다)’, 그리고 초고가 프리미엄 브랜드 KALPAK(칼팍)이 각각 역할을 나눈다. 이 대표는 여담과 KALPAK, 한진트래블을 하나의 생태계처럼 본다. 접근성이 높은 여담으로 고객이 유입되고, 다시 한진트래블로 넘어온 뒤, 더 높은 경험을 원하는 고객이 KALPAK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특히 여담은 소규모 여행사와 현지 상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기존 한진트래블 상품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다양한 수요를 흡수하고, 전통 패키지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과도 접점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여담의 성장세에 대해 “전년 대비 유입자 수와 매출이 2~3배씩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결제 주체’의 세대교체다. 현재 한진의 주 고객층은 50대 이상으로, 자녀와 함께 여행을 가더라도 결제는 여전히 ‘아빠 카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젊은 층을 겨냥한 ‘여담’을 통해 자녀 세대를 유입시키고, 이들이 장성해 ‘내 돈으로 부모님을 한진에 보내드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가격과 경험의 수준은 달라도, 결국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신뢰가 이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상품 설계 방식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특히 진에어를 비롯한 에어서울·에어부산 등 한진그룹 산하 저비용항공사(LCC) 통합은 여행사 입장에서 상품 구성의 효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러 항공사를 각각 조율해야 했던 구조에서 벗어나 하나의 공급 구조로 단순화되면서, 보다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 설계가 가능해졌다.
이는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기존 고객은 대한항공 중심의 선호가 강하지만, 가격을 우선하는 고객층은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며 “이들을 끌어오는 역할을 여담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LCC 기반 상품을 세분화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 역시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다.
이 대표는 회사를 하나의 시계 브랜드에 비유했다. 학생이 처음 차는 입문용 모델부터 수백만 원,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고가 라인까지 한 브랜드 안에 공존하는 구조처럼, 고객의 생애 주기에 따라 경험이 이어지는 형태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처음 가볍게 시작한 경험이 더 높은 단계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듯, 여행 역시 한진트래블 안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진트래블은 전통적으로 높은 가격대의 패키지 상품을 중심으로 신뢰를 쌓아온 브랜드다. “우리 아이가 처음 혼자 여행 갈 때 부모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곳, 내가 부모님을 보내드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한진이었으면 한다”고 말한 이 대표는 비싸도 한진을 선택하게 만드는 이유를 결국 ‘끝까지 책임지는 경험’에서 찾았다. 최근 중동 분쟁 당시 두바이에 체류 중이던 고객들을 지원해 귀국까지 이어지게 한 사례 역시, 이런 책임과 신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한진트래블이 바꾸려는 것은 여행 상품이 아니라, 여행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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