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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가서 창억떡만 먹니? 91년 된 극장 가고 양갱·개성주악 먹고 [요즘 여행]

2026.04.01 07:30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광주 북구 창억떡 중흥본점에서 구매한 호박인절미.


광주 북구 창억떡 중흥본점을 방문한 고객이 떡을 여러 박스 구매하고 있다.


“야구 경기 있는 날에 떡집 밖으로 줄이 50m 넘게 섰다니까. 내 평생 떡집에 사람들이 이리 줄 서는 건 처음 봐...”

광주송정역(호남고속선)에서 택시에 타자마자 ‘창억떡’으로 가달라고 하니 기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읊었다. 온갖 지역 사람들이 광주에 떡을 사러 온다는 것이다.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에 이어 올해 확고한 ‘대세’로 자리 잡은 먹거리가 창억떡 ‘호박인절미’다. 차이점이라면 창억떡은 이번 유행 한참 전부터 지역민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라는 점. 그만큼 맛은 보장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광주까지 선뜻 걸음하기 망설여지는 이들을 위해, 창억떡 사는 김에 함께 둘러볼 만한 코스를 소개한다.

커피와 개성주악, 수제양갱과 전통차

남구 양림동 호양호림의 개성주악과 아이스 커피. 야외 평상에 앉아 불어오는 봄바람을 느끼며 즐기기를 권한다.


남구 양림동 호양호림의 개성주악과 아이스 커피. 위가 애플시나몬 개성주악, 아래가 호두정과 개성주악.


남구 양림동 호양호림 본채의 마루.


광주 옛 도심 인근에는 창억떡 외에도 여행객 침샘을 자극하는 디저트 가게가 즐비하다. 한옥, 근대 유적, 공예거리 등이 어우러진 남구 양림동과 트렌디한 가게가 밀집해 ‘동리단길’로 불리는 동구 동명동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양림동 호양호림은 전통 간식에 커피를 페어링했다.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개성주악과 스페셜티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대표 메뉴다. '한국적인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슬로건에 걸맞게 매장은 전통 한옥을 개조해 지어졌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기와담장을 따라 어린 대나무가 심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당 한편에 세 칸 평상이 있어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계절에 즐기기 좋다. 'ㄱ'자로 지어진 본채도 한옥답게 시원하게 창이 나 있어 산들거리는 대나무가 실내까지 들어온 기분이다.

봄바람 잘 드는 평상에 앉아 찐득하고 달콤한 개성주악 한입에 경쾌한 산미가 살아있는 커피 한 모금 곁들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조청이 가득한 맛있는 주악이다. 커피는 화려한 향미의 대표주자인 페루산 게이샤 원두, 가향 무산소 발효한 콜롬비아 엘 파리이소 농장 원두, 산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브라질산 원두까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개화기 시절의 풍류가 이랬을까 상상해 본다. 뚝배기 크기 항아리에 한가득 담겨 나오는 ‘항아리 티라미수’와 계절 메뉴 ‘항아리 빙수’도 호양호림의 시그니처 메뉴다.

동구 동명동 티소하의 백차 다관세트.


동구 동명동 티소하의 3색 양갱.


동구 동명동 티소하 입구에서 바라본 가게 내부 모습.


‘티소하’는 동명동을 대표하는 전통 찻집이다. 백차, 녹차, 홍차, 우롱차 등을 직접 우려 마시는 ‘다관세트’와 차를 기반으로 제조하는 ‘티칵테일’이 주력 메뉴다. 다관세트의 커다란 나뭇잎 모양 거름망이 인상적이다. 다관에 뜨거운 물을 붓고 제공되는 모래시계로 우리는 시간을 맞춰 마신다. 정기적으로 구성이 바뀌는 자그마한 다식 종지가 함께 제공된다. 말린 과일, 견과류, 한과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백미는 무설탕 수제 양갱. 밤·말차·백, 3색 3미가 준비돼 있는데 다식에도 작은 조각 하나가 포함된다. 수분감이 촉촉하고 당도가 낮아 찻물에 부드럽게 흘러 내려간다. 과일 말차 파르페, 복숭아 백차 칵테일, 위스키 홍차 칵테일 등 전통 다도를 과감히 탈피하는 메뉴도 도전해 봄 직하다.

내부는 여백의 미를 살린 현대적인 공간이다. 검은색과 흰색 위주로 색의 사용을 최소화해 평온함이 느껴진다. 분재와 백자 등 전통 소품을 이용해 곳곳에 포인트를 줬다. 카운터 뒤로 보이는 뒷마당의 수목이 천연 수묵화 역할을 한다.

동구 동명동 물흐르듯의 주공간은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지도록 조성됐다.


과거 세탁소였던 동구 동명동 물흐르듯의 작은방.


동명동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물흐르듯’을 추천한다. 스페셜티 원두 두 종류, 디카페인 한 종류, 고소한 일반 원두 한 종류, 총 네 종류의 원두를 취급한다. 원두 풀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기본기에 충실하다. 에스프레소 머신 없이 오직 핸드드립 커피만 취급한다. 잡미나 탄맛, 쓴맛 없이 커피 본연의 화사하고 달곰한 풍미를 잘 살린다. 주인장의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공간 구성은 덤. 과거 세탁소였던 공간은 아늑한 다락방처럼, 슈퍼마켓이었던 공간은 시원한 개방감과 레트로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휴양지 바처럼 조성돼 있다. 차양막 아래 캠핑 의자에 기대듯 앉아 홀짝이는 커피에 시간 흐르는 줄 모른다.

Since 1935, 광주극장

동구 광주극장의 영화 간판. 전부 직접 그린 영화 포스터다.


동구 광주극장 내부 상영관 앞 로비의 모습.


광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 광주극장이 있다. 상영관이 여러 개인 멀티플렉스 영화관까지 포함해도 인천 중구 애관극장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됐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최초 개관했는데, 당시 광주 시내 유일한 조선인 극장이었다. 극장 위치가 충장로5가인 이유도 당시 충장로1·3가가 일본인 상권이었던 반면 5가는 조선인 상권이었던 까닭이다. 영화와 더불어 판소리, 창극을 공연하고 조선인 단체 모임 장소로 활용되며 지역 거점 공간으로 기능했다. 1968년 화재로 건물 원형이 대거 소실된 후 대대적으로 보수해 현재에 이르렀다.

단관 극장인 만큼 상영관은 하나뿐이다. 개관 당시 1,250명을 앉혔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856석으로 운영된다. 매일 5회에 걸쳐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인 관계로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독립영화 등을 주로 상영한다. 일반 극장처럼 매표 후 관람하면 된다. 이번 주 상영작은 '아르코'(감독 우고 비엔베누) '햄넷'(클로이 자오) '극장의 시간들'(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센티멘탈 밸류'(요아킴 트리에) 등이다. 일제강점기 경찰이 관람객과 상영물을 감시하기 위해 앉았던 임검석(臨檢席)과 여전히 주1회 실제 상영에 쓰이는 필름 영사기는 타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광주극장만의 특징이다.

동구 광주극장 내부에 전시된 옛 홍보물.


상영관 외부 로비와 건물 외관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재건 당시 1960, 70년대의 공간감이 짙다. 중후한 나무 재질의 내장은 고요한 극장 분위기를 한층 차분히 한다. 빛바랜 홍보물에 쓰인 투박한 스텐실 서체는 촌스럽다기보다는 클래식하다. 무엇보다 극장 입구 위에 걸린 영화 간판이 화룡점정이다. 영화 포스터가 연달아 부착돼 있는데,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포스터다. 기성 인쇄 포스터를 사용하지 않고 미술실 화백과 시민들이 직접 그린 '수제 포스터'다. 2년에 한 번씩, 10월 광주극장 영화제 기간에 맞춰 간판을 새로 제작한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역사와 문화 가득한 양림동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에 고철로 만든 물고기가 여럿 전시돼 있다.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 건물 외벽에 광주 전역에서 모은 시계가 전시돼 있다.


양림동은 광주에서 가장 볼거리가 풍부한 지역이다.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일명 ‘펭귄마을’이라 불리는 한옥마을. 옛 주택 30여 채가 옹기종기 모인 이곳은 골목이 화랑이요, 외벽이 액자다. 소임을 다하고 버려진 고철을 조합해 만든 물고기 수십 마리가 골목을 헤엄친다. 부탄가스 덮개가 거대한 금태의 눈알이고, 음료캔은 화려한 비늘이다. 벽시계, 탁상시계, 뻐꾸기시계, 손목시계로 빈틈없이 덮인 건물을 바라보고 있자면 시간의 갈림길에 선 것 같다.

마을을 탐험하다 보면 ‘펭귄마을 촌장’이라는 명함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데, 지금의 펭귄마을을 만든 김동균(73) 촌장이다. 빈집 반, 어르신 가구 반이라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마을에서 집 한 채가 2013년 화재로 전소되자 텃밭을 일굴 겸 ‘정크아트’(고철 등 폐기물을 소재로 하는 예술)를 전시했다. 작품이 하나둘 늘다 보니 어느새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당시 김 촌장과 마을 꾸미기에 함께했던 어르신이 뒤뚱뒤뚱 걷는다고 얻은 별명 ‘펭귄아재’에서 마을 이름을 땄다. 3년 후 즈음부터 입소문을 듣고 타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왔다. 현재는 매년 20만여 명이 다녀간다고. 2019년 시·구청에서 인근 한옥을 매입해 공방 10여 곳을 입주시키며 ‘공예특화거리’로 거듭났다.

남구 양림동 이장우 가옥의 모습.


남구 양림동 이장우 가옥의 모습


펭귄마을에서 불과 100m 남짓한 거리에 ‘이장우 가옥’이 있다. 조선 말기 대저택으로 소박하고 밀도 높은 펭귄마을과는 공간적으로 대척점에 있다. 대문간, 곡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를 전부 갖춘 기와집이다. 마당은 서양식 정원수로 꾸며져 있고 주택 원형도 잘 보존돼 있어 당시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안채는 광주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899년 지역 최고 유지로 꼽혔던 정병호의 집으로 지어졌지만 1965년 동강 이장우 박사가 사들여 현재 이름으로 불린다. 낮 시간 동안 내부가 개방돼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이장우는 동강대, 동신대, 광주동신중·고교 등을 개교한 호남 지역 교육자다.

동구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에 전시된 옛 카메라 및 부속장비.


인근 최승효 고택과 기독간호대학교, 광주양림교회 사이 ‘오웬기념각’은 각각 일제강점기의 전통 한옥과 서양식 조적 건물로 함께 볼 만하다. 다만 별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내부 관람은 불가하다. 희귀한 사진·영상 장비를 수집·전시한 동명동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은 사진·영상 마니아들에게 보물섬 같은 장소다. 토요일만 문을 연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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