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장국영
장국영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하늘로… ‘영웅본색’ ‘패왕별희’ 배우 장국영

2026.04.01 05:01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3년 4월 1일 47세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

홍콩 배우 장국영(장궈룽, 영어명 레슬리 청·1956~2003)이 출연한 1987년 개봉 영화 ‘영웅본색’은 당시 홍콩 영화 수준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 평론가 정영일은 “홍콩 영화의 수준이 국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웅본색’”이라며 “제약 속에 소재를 찾아내야 하는 우리 영화계 현실에 비해 자유로운 이야기나 그 묘사가 훨씬 넉넉하다”고 했다. 홍콩 영화 위상이 추락한 현재를 생각할 때 음미할 부분이 크다.

홍콩 영화 '영웅본색' 포스터.

“이미 홍콩 영화의 ‘상품 수준’은 세계적인 것인데,이 활극 멜러 드라마도 그렇다. 그 오락성으로나 제작 자본의 힘으로나 메커니즘으로 우리 영화의 그것을 웃도는 작품이다.(…) 여섯 대의 카메라로 15만 피트의 네가 필름을 썼다는 액션 장면의 재미는 미국 영화와 같다. 형제의 사랑, 친구의 의리와 우정, 경찰과 범죄 조직의 대결을 담은 ‘영웅본색’은 누선(淚腺) 자극도 강하다. 관객의 눈물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면서 격렬한 액션을 펼치는데 구창모의 중국말 가사(홍콩의 스타 가수 장국영이 부른다) 노래도 나온다. 오락영화로서의 서비스 정신 100점의 상쾌함은 우리의 그것과 견주어볼 때 부럽기도 하다.”(1987년 6월 10일 자 8면)

1994년 1월 5일자 16면.

장국영은 이후 ‘천녀유혼’(1987), ‘아비정전’(1990), ‘종횡사해’(1991) 등에 출연하며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국에서도 인기였다. 미소년 같은 귀공자 이미지로 초콜릿 광고 모델을 할 정도였다. 1993년 영화 ‘패왕별희’는 연기 변신을 한 작품이다. 기존 ‘철없는 동생’(영웅본색)이나 ‘백면서생’(천녀유혼) 같은 이미지를 벗고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 ‘패왕별희’는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장국영은 ‘패왕별희’에 출연하기까지 수년간 영화를 잠시 쉬었다. 다른 홍콩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의 미래에 불안해하며 장국영은 90년쯤 홍콩을 떠났었다. 대작 ‘패왕별희’는 캐나다에서 칩거하고 있던 장국영을 스크린으로 끌어냈다.(…) ‘패왕별희’를 음미해 보면 장국영은 어떤 선입견도 깨부수려고 작심한 듯 남자의 몸과 여자의 감정을 지닌 난해한 캐릭터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부분은 공리와의 관계. 경극 패왕별희에서 우미인 역을 맡은 장국영은 오랜 세월 동안 호흡을 같이한 항우 역의 남자 배우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상대 남자 배우가 창녀 출신의 여인(공리)을 아내로 들여앉히자 장국영은 심한 질투와 번민에 시달린다.”(1994년 1월 5일 자 16면)

장국영 패왕별희2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장국영은 여러 작품에서 “여성적인 섬세함을 바탕에 깔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로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카리스마는 담기는 그릇에 따라 바뀌는 물 같다. ‘아비정전’ ‘동사서독’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왕가위의 영화적 페르소나가 됐다. 왕가위 영화에서 그는 시간의 그물에 걸린 허무와 감상을 표현한다. 중국 거장 첸카이거(‘패왕별희’ ‘풍월’) 역시 그만이 뿜어내는 액체의 향취에 반해 거푸 그를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 왕가위 영화에서 그는 음울한 홍콩을 상징했고, 첸카이거 영화에서는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를 은유한다.”(1997년 9월 26일 자 37면)

1997년 9월 26일자 37면.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2003년 만우절인 4월 1일 거짓말처럼 갑자기 들려왔다.

“홍콩의 영화배우 겸 가수 장국영(張國榮)이 1일 홍콩 중심가 만다린 호텔 객실에서 뛰어내려 숨졌다고 AFP통신이 홍콩 언론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이 25층짜리 최고급 호텔에 투숙했던 장국영이 이날 오후 6시 40분쯤 24층 객실에서 투신, 퀸메리 병원으로 옮겼지만 오후 7시 6분 사망했다고 밝혔다.”(2003년 4월 2일 자 A11면)

2003년 4월 2일자 A11면.

장국영은 1980년대 청소년이었던 한 세대가 경험을 공유하는 아이콘 같은 존재로 남았다. 소설가 김경욱은 2005년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내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1970년대 태어난 세대를 ‘장국영 세대’로 규정했다.

2005년 5월 31일자 A21면.

“70년대에 태어난 저희 세대는 장국영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주윤발의 홍콩 누아르 영화에 열광했던 청소년으로, 90년대 대학에 가서는 장국영의 ‘아비정전’에 탐닉하면서 젊은 날의 추억을 각자에게 새겨넣었지요. (…) 저와 같은 30대는 386세대처럼 정치적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요즘 10~20대에 비해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 후천적 실어증에 걸렸기 때문에 출연한 영화마다 ‘소외와 침묵’을 보여줬던 장국영을 공동의 문화 코드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2005년 5월 31일 자 A21면)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장국영의 다른 소식

장국영
장국영
3시간 전
'영원한 별' 故장국영 23주기…만우절 다시 돌아온 '패왕별희' [스타이슈]
장국영
장국영
3시간 전
故 장국영, 호텔 24층서 투신…동성 연인·460억 논란 속 '23주기'
장국영
장국영
14시간 전
장국영 23주기, '연지구' 추모 상영회 열린다…정성일 GV까지
장국영
장국영
16시간 전
'믿보' 롯데시네마 추천작…'장국영부터 오드리 헵번까지'
장국영
장국영
16시간 전
연차 없이 떠나는 주말 홍콩여행 ‘48시간 코스’
장국영
장국영
1일 전
퇴근 후 떠나는 '48시간 홍콩 여행' 증가
장국영
장국영
1일 전
48시간이면 충분…홍콩 ‘주말 여행지’ 급부상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