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난하지 않는 완벽한 연인"... 청년들의 열광, 전문가의 경고
2026.03.31 10:41
이런 현상은 미국 여성 Ayrin 한 사람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커뮤니티 레딧(Reddit)에는 AI와 정서적 관계를 맺었다는 이용자들의 글이 최근에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으며, 일부는 인간보다 더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 레딧의 ‘내 남자친구AI(r/MyBoyfriendIsAI)’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이용자가 AI를 ‘동반자’로 표현하며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러한 애착은 단순한 '사용'을 넘어 '종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2025년, 전 세계 5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청원 플랫폼 Change.org에는 OpenAI를 대상으로 기존 GPT-4o 모델을 유지해달라는 서명운동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2만 3천명 이상이 참여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미국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이곳은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단체를 대상으로도 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로, 이용자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주목할 점은 이 청원이 공식적인 모델 종료 발표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 기존 모델이 즉각 사라지기보다 점진적으로 축소되거나 접근성이 제한되는 방식으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용자들은 기존 모델의 '사라짐'을 체감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청원이 확산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GPT-4o 모델은 단계적인 축소를 거쳐 2026년 실제 서비스에서 제외되며 종료 수순을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청원은 현재까지도 참여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도 유사한 청원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이 특정 AI 모델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정서적 관계 대상'으로 인식하며, 지속적인 사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술의 버전업이 이용자에게 '연인의 상실'이나 '정서적 단절'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 Change.org에 올라온 GPT-4o 유지 청원 페이지. 2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참여하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
| ⓒ change.org |
이같은 'Ai와의 사랑'은 국내 통계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2월 한 달간 이용자 수가 약 402만 명이었던 국산 AI 캐릭터 플랫폼 '제타(Zeta)'의 같은 기간 총 사용 시간은 약 1억 1341만 시간으로, 이용자 수가 2239만명이었던 챗지피티의 5047만 시간의 무려 배가 넘는다. 정보가 필요할 땐 지피티를 짧게 이용하지만, 위로와 대화가 필요할 땐 제타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의 분석에 따르면, '아바타 채팅' 유형 AI 서비스의 사용 시간은 20대가 약 3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20대 미만(36.8%) 세대까지 더하면 30대 이하 이용자가 73.8%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 청년들이 AI를 업무 효율을 높이는 '비서'가 아닌, 정서적 의존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 와이즈앱·리테일·굿즈 분석 결과, 아바타 채팅형 AI 서비스는 20대 이용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 ⓒ 와이즈앱·리테일·굿즈 |
청년들이 기계의 품에 매달리는 이유는 통계가 말해준다. 국무조정실의 '2024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시대 청년들이 겪는 고충 중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경제적 어려움'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 또,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1%가 "사람보다 AI의 조언이 더 낫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나를 비난하지 않아 솔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처받을 위험이 없는 '안전한 기계'에 감정과 관계를 '외주'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가성비 좋은 위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MIT 사회심리학 셰리 터클(Sherry Turkle) 교수는 일찍이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을 통해 사람들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위험은 피하면서 친밀감의 보상은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함께 있어도 외로운' 상태를 심화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용자의 감정에 정교하게 반응하고 관계의 형태까지 모방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그의 우려는 오늘날 더욱 뚜렷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갈등 없는 기계와의 교감은 인간의 공감 능력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더 깊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를 거스르는 '불편한 타인'이 삭제된 관계 속에서 인간은 결국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대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갈등 없는 관계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가 아닌 '기능'을 소비하게 된다.
바야흐로 사회는 이제 기술이 개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청년층의 인간관계 피로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오프라인 공동체의 회복 역시 숙제로 떠올랐다.
덧붙이는 글 | 정승예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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