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자가 채점하는 격' 환경영향평가부터 고쳐야
2026.03.30 15:16
사업자인 강릉시가 제출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 2025년 6월 강원특별자치도가 조건부 협의 의견을 내면서 사업은 강행 수순으로 치닫는 듯 했다. 강릉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끝에야, 강릉시는 사업 백지화가 아닌 '잠정 보류'를 선언했다.
질문이 남는다.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서야만 이러한 개발을 잠시나마 멈춰 세울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제도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한계 그리고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을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이하 기후부)에서 도지사에게 이양한 특별법 상 특례 조항의 문제다.
| ▲ 경포호 인공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강원특별자치도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협의 결과에 반대하며 400m에 달하는 인공 분수 예정 구간을 따라 인간띠잇기를 하고 있다. |
| ⓒ 경포호 인공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 모임 |
형식만 지키면 내용은 엉터리여도 괜찮은가
개발 사업은 대상 지역의 환경을 바꾸는 일이고,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파급 효과는 돌이키기 어렵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이러한 환경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정책 계획이나 개발에 앞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환경 영향을 미리 검토해서 따져보고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 관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주민은 사업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평가 절차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문제가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굵직한 국책사업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장 빈번하게 불거지는 문제는 평가서가 거짓되거나 부실하게 작성되는 경우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례와 같이 중요한 생물종이 누락되고, 지형적 특성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마저 은폐된 사실이 밝혀졌다.
원인은 환경영향평가서가 작성되는 구조에 있다. 평가서는 사업자가 직접 발주하고 대행업체가 작성한다. 사업자로부터 독립적인 평가가 나오기 어렵다. 여기에 평가서 작성을 담당하는 1종 대행업체와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2종 대행업체가 분리되어 저가 하도급으로 이어진다.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현장에 충실한 조사결과가 나오기는 더 어렵다. 거짓·부실 작성이 밝혀지더라도 처벌은 대행업체에 국한된다. 거짓·부실 등의 문제로 재평가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규정이 실제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잘못된 평가서를 시민이 검토할 수 있는 기회는 평가서 초안이 나왔을 때인데, 그나마도 비공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초안에 대한 의견수렴 절차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쳐 시민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 환경영향평가가 환경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불씨가 된 것은, 독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평가서, 불분명한 책임소재, 시민들에게 차단된 정보와 형식적인 절차 참여 기회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 ▲ 2025년 6월 11일 강원특별자치도가 경포호 인공분수 설치 사업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협의로 완료했다. 이에 경포호 인공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 모임과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6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특별자치도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규탄하며 모든 자료의 공개와 재검증을 촉구했다. |
| ⓒ 경포호 인공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 모임 |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 이양의 의미
경포호 인공분수 논란은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고질적인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강릉의 시민사회가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민관 합동 공동조사와 갈등조정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부 당했다. 그리고 협의 기관은 평가서에 대해 두 차례의 보완 요청 뒤 '조건부 협의'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여기에 협의 의견을 내놓은 주체가 도지사라는 문제가 얽혀 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협의 권한은 원래 기후부 장관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강원특별자치도를 비롯한 특별자치도의 환경영향평가 특례 조항은 이 권한을 도지사에게 이양했다. 개발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도지사가 해당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협의를 하는 구조다. 사실상 선수가 심판을 보고, 응시자가 채점을 하는 격이다.
여기에 민심을 얻기 위한 단기적인 경기부양책 혹은 치적을 쌓기 위한 개발을 선호하는 민선 자치단체장에게,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 이양은 '환경 자치'가 아니라 '개발 자치'가 된다. 경포호의 사례는 환경영향평가제도의 구조적 결함이 그대로 자치도에 옮겨졌음을 드러낸다.
강원영동생명의숲 윤도현 국장은 이를 두고 "환경청(현 기후청)에서 도지사로 대상만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협의 주체가 달라졌을 뿐 환경영향평가가 작동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권한 이양 전까지 협의 권한 주체였던 기후부에는 뼈아픈 질책이고, 권한을 이양받은 특별자치도에는 '지방자치라는 허울로 난개발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게다가 환경영향평가서 전문 검토기관으로 지정된 강원연구원은 재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강원특별자치도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 강원연구원은 올해 도내 산지의 케이블카 개발 근거자료 확보를 위해 오색 케이블카 관련 연구를 계획해놓은 상태다. 극대화된 도지사의 권한에 비해 시민들이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환경영향평가는 오히려 잘못된 개발 사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할 우려까지 있다. 윤도현 국장은 "특별자치도법이 규제로 하지 못했던 숙원 사업을 하려는 수단이 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가 이제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5극 3특' 행정통합 정책에 따라 환경영향평가의 협의 권한을 이양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월 출범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이하 전남광주특별법)의 특례 조항이 대표적이다.
특별법이라는 이름의 '난개발 면허' 경쟁
전남광주특별법 조문에는 '~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가 거의 모든 장에 한번 이상 등장한다.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닌 이 문구는 일반법 조항 뒤에 붙어 기존의 환경 규제를 해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전남광주특별법은 강원특별법처럼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을 통합특별시장에게 이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조항들을 함께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전남광주특별법의 특례 조항들은 환경 보전을 위해 쌓아온 일반법의 취지를 차근차근 무력화한다. 산지, 농지, 해양에 대한 권한을 더 넓게 특별시장에게 이양하고, 중앙정부에 의한 심의절차를 특별시로 이양하거나 아예 삭제해 버렸다. 인·허가 의제 조항 역시 기존 특별자치도법보다 확대해 규제 완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특별법에 따라 보전보호구역을 해제하고 개발 사업을 계획한 뒤, 필요한 인허가 절차는 물론 그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내릴 수 있는 수순이 법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전남광주특별법으로 끝나지 않고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다른 통합특별시의 법안에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더 많은 규제를 완화하는지, 얼마나 더 많은 국비를 끌어오는지, 얼마나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개발 사업을 하는지 겨루는 '나쁜 경쟁'이 염려되는 대목이다.
| ▲ 전남광주특별법 제172조와 제173조는 환경영향평가의 협의 권한을 통합특별시장에게 이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관성과 공정성을 갖추어 운영되어야 할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파편화가 우려스럽다. |
| ⓒ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면 개선이 시급하다
'지역이 지역 환경을 더 잘 안다'는 논리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의 취지대로라면, 지역의 생태적 특수성을 고려해 환경영향평가를 더 꼼꼼히 운영하며 '환경 자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특별자치도법과 전남광주특별법, 그밖의 통합특별시 법안들을 통해 환경영향평가가 강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포호 인공 분수 사례에서 보듯, 목적과 원칙을 잃고 단순히 권한만 이양된 환경영향평가는 기존의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문제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특별시·도지사가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도 갖는 이중 구조에서 과연 일관적이고 공정한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가 보장될지도 우려스럽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는, 생물다양성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은 지역 별로 쪼개서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산림과 갯벌을 통한 탄소 흡수, 생태축과 수계 관리, 보전 지역의 확대라는 국가 환경 전략들은 국토 단위의 통합적이고 일관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을 지역으로 분산하는 특례 조항은 이 통합성을 훼손한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사업자 발주 구조를 바꿔 평가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거짓·부실 평가서 작성에 따르는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초안 단계부터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의 의견이 촘촘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 개발 사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
마침 이재명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제도 혁신을 국정과제로 내놓았다. 공탁제와 정보 공개를 골자로 하는 정책적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새로운 통합특별시마다 분절적으로 운영된다면, 이 제도는 그 어떤 혁신적인 정책으로 개선될 수 없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개발 압력에 대응해 환경을 보전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경포호 사업은 강릉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잠시 멈춘 상태다. 다음 차례는 어디가 될까. 환경영향평가가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 답은 정해져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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