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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전체가 등 돌려도 퀄컴은 포기 안했다...CDMA가 세계 표준이 된 사연

2026.03.30 14:01

퀄컴의 전쟁<2>


1980년대 국내에서 '카폰'은 부의 상징이었다. 1984년 KT의 자회사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통해 국내에 도입된 카폰은 자동차에 설치된 이동전화였다. 차량에 기다란 안테나와 전화기를 설치하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설치 비용이 당시 자동차 값에 육박하는 수백 만원대여서 부자나 유명 정치가, 스타급 연예인들이 주로 사용했다. 따라서 차량에 카폰 안테나가 설치돼 있으면 소위 '잘 나가는 사람'으로 부러움을 샀다. 그러다 보니 과시용으로 모양만 흉내 낸 모형 안테나를 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카폰으로 대표되는 1세대 이동통신은 문제가 많았다.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고 자주 끊겼다. 퀄컴은 이 점을 노렸다. 아날로그 방식의 한계를 디지털로 극복하려고 했다. 기존 방식의 단점을 새로운 기술로 돌파하려는 혁신이 퀄컴의 출발점이 됐다.

자동차에 설치했던 이동전화 카폰. 한국일보 자료사진


잘 끊긴 벽돌폰, 1세대 이동통신



이동통신망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은 1940년대 말 벨연구소였다. 당시 무전기 등 휴대 통신기기는 출력이 낮은 신호만 내보낼 수 있었다. 출력이 낮은 신호는 멀리 가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벨연구소는 중간에 기지국을 설치해 신호를 받아 다음 기지국으로 전달하는 식으로 멀리 보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기지국을 여러 개 만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이들의 신호가 겹쳐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도 복잡했다. 그 바람에 이동통신망 개념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동통신망 개념은 1983년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상용화됐다. 이를 시작한 회사는 AT&T였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 정부가 반독점 규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통신시장을 독점한 AT&T를 여러 회사로 강제분할 했는데 이때 이동통신 사업부를 분리해 아메리텍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로 만들었다.

아메리텍이 채택한 방식이 벨연구소에서 개발한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1G) 이동통신 시스템(Advanced Mobile Phone System, AMPS)이다. AMPS는 주파수분할 다중접속방식(FDMA)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FDMA는 통화 중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각의 이용자마다 주파수를 배정한다. 즉 이용자별로 서로 다른 주파수를 배정해 다른 사람의 통화와 섞이지 않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통신업체가 갖고 있는 주파수를 모두 배정하면 다른 이용자들이 통화를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여기에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통화가 자주 끊어졌다. 해당 지역의 기지국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 경우 주파수 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신업체들이 더 많은 기지국을 세워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고 복잡했다.

더군다나 휴대폰은 너무 크고 비쌌다. 1983년 모토로라에서 만든 최초의 휴대폰 '다이나택'은 무게가 약 1㎏이나 됐다. 그래서 별명이 '벽돌폰'이었다. 10시간 걸려 완전 충전하면 최대 30분간 통화할 수 있었다. 가격은 3,995달러로, 당시 약 80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을 적용하면 약 320만 원이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승용차 '포니2' 가격이 360만~400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였다.

결국 1세대 이동통신이 성장하려면 통신망의 용량 확대가 가장 시급했다. 그래야 가입자를 늘리고 통화 품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폰박물관에 전시된 모토로라가 만든 세계 최초의 휴대폰'다이나택 8000X'.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디지털 전쟁의 시작, 2세대 이동통신



아날로그 방식의 문제 해결을 위해 2세대(2G) 이동통신은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 음성을 그대로 전파에 싣는 아날로그 방식과 달리 디지털 방식은 음성을 0과 1 두 가지 신호로 바꿔 압축해 보내기 때문에 용량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같은 주파수 대역을 더 많은 이용자들이 사용하게 돼 용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때 두 가지 전송 방식이 충돌했다. 하나는 많은 통신장비업체들이 택한 시분할 다중접속(Time Division Multiple Access, TDMA) 방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퀄컴이 개발한 코드분할 다중접속(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CDMA) 방식이다. 여기서 유명한 TDMA와 CDMA의 전쟁이 시작됐다.

2세대 이동통신은 TDMA와 CDMA의 표준 채택을 위한 싸움이었다. 이는 곧 기득권 세력과 신흥 세력의 싸움이기도 했다.

TDMA는 디지털로 압축한 음성신호를 초 단위로 쪼개서 전송한다. 시간차를 두고 나눠서 전송하는 방식이어서 시분할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렇게 되면 같은 주파수 안에서 여러 사람의 통화를 시간차이를 두고 전송할 수 있어서 용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CDMA는 디지털로 압축한 음성신호를 잘게 쪼갠 뒤 각각의 조각마다 암호(코드)를 붙여 동시에 전송한다. 수신측에서는 암호가 같은 조각들을 이어붙여 완성된 음성을 재현한다. 여기서 암호, 즉 코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코드분할로 불리게 됐다. CDMA 역시 동시에 많은 통화를 처리할 수 있어 주파수 용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CDMA가 TDMA보다 더 많은 이용자의 통화를 지원하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실시간 암호 처리를 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와 세밀한 디지털 운영 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많은 통신장비업체들이 CDMA는 당시 기술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보고 TDMA를 지지했다.

하지만 퀄컴은 반대였다. 이들은 1985년 미국의 항공방위산업체 휴즈항공이 발주한 위성이동통신 시스템 구축사업을 수주하면서 CDMA 방식을 고안했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이동통신은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1세대 이동통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했으나 기술적, 제도적 문제로 무산됐다.

모의 시험을 통해 CDMA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 퀄컴의 창업자 어윈 제이콥스 사장은 이를 2세대 이동통신에 적용하기로 했다. CDMA가 이동통신에 도입되면 그동안 군과 정부 사업 위주로 일했던 퀄컴은 방대한 민간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동통신에 CDMA를 적용하는 것은 퀄컴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CDMA 방식의 이동통신 장비들. 퀄컴이 개발한 CDMA는 2세대 이동통신의 표준을 놓고 TDMA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하지만 TDMA와 치르는 전쟁은 처음부터 CDMA에 불리했다. 미국 통신서비스 업체와 관련 장비업체들의 모임인 통신산업협회(TIA)는 1989년 투표를 거쳐 2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TDMA를 결정했다. 이로써 퀄컴은 승부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됐다.

사실 TDMA는 미국 이동통신업체들의 단체인 이동통신산업협회(CTIA)가 요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CTIA는 2세대 이동통신이 1세대보다 주파수 용량을 10배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TDMA는 최대 3배 확대가 가능했다. CDMA는 이론상 40배까지 늘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TIA가 TDMA를 택한 이유는 이미 노키아, 에릭슨 등 통신장비업체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TDMA 장비 개발을 시작했고, 유럽연합(EU)도 TDMA에 기반한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방식을 2세대 이동통신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기술 방식이 같으면 해외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글로벌 로밍에 유리했다.

이미 끝난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퀄컴은 포기하지 않았다. 퀄컴의 경영진은 TDMA의 표준 채택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통신업체들을 일일이 만나 CDMA를 도입하라고 설득했다. 그 바람에 퀄컴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말썽쟁이 취급을 당했다. 대부분의 이동통신업체들은 퀄컴의 제안을 뿌리쳤다. 업계 전체가 TDMA를 도입하는 마당에 외톨이처럼 CDMA를 도입하는 업체는 장비 공급 등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와중에 구원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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