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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가 드러낸 대한민국의 3가지 진짜 문제

2026.03.28 14:00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30년간 변하지 않은 '에너지 자립도'…에너지 수입 의존도 93.7%
美가 요구하면 피 흘릴 것인가…북핵 등 '동시다발 위기' 준비 필요


중동전쟁이 끄집어 올린 대한민국의 민낯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에너지 안보다. 에너지는 경제의 혈맥이다. 당장의 원활한 수급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번 전쟁에 따른 충격이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 공급 타격을 모두 합친 수준(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특히 한국은 유독 더 큰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수입 원유의 60% 이상이 중동에서, 그중 90%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초불확실성에 내몰리게 된다. 중동 지역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산업 핵심 품목이 40개를 넘는다. 산업연구원은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상승해 한국 산업 전반에 큰 충격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30년 전과 비교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에너지 체질'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26일 SNS를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호르무즈가 보여주는 위기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 문제는 에너지 안보이고, 한국의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와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교훈이어야 한다." 이 의원은 "우리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에 달한다.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석유 의존도 역시 매우 높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제자리다. 말로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고 하지만, 기름 사용을 줄이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위다. 



외부 변수 때마다 반복되는 '에너지 위기'

그런데 우리 사회는 비슷한 우려와 지적을 불과 얼마 전에도 똑같이 했었다. 4년 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역시나 지금처럼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불러왔고 그 후폭풍으로 당시 한국전력의 영업적자는 5배 넘게 폭증했다. 이 의원은 "그때도 에너지 위기라고 했다"며 "당장의 전쟁만이 문제라고 본다면, 또 다른 분쟁이 일어날 때 우리는 똑같은 얘길 반복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에너지 믹스'와 '에너지 효율' 등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전략과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나라 밖만 쳐다보는 천수답 구조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메아리는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정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국가 에너지 전략은 물론 경제 안보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 전환을 신속히 진행해 화석연료와 에너지, 재생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고,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에너지 소비 구조조정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립'과 '균형'이 결국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다행인 점은 최근 중요한 질문이 정부 측에서 제기됐다는 것이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3월25일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포럼'에서 "'방어적인 경제 안보 전략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서 "강대국들의 공세 때마다 잘 대응하고 빨리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다른 국가들과 협상할 때,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역량, 다시 말해 대체 불가능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이 절실한 때"라고 짚었다. 

에너지 안보가 먹고사는 문제라면, 중동전쟁은 죽고 사는 문제인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미국은 한국을 콕 찍어 호르무즈해협에 군함을 보내라는 요구를 한 바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무임승차론'까지 꺼내들며 파병 여부가 향후 대미(對美) 관계의 척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파병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방위 공약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엄포도 놓았다. 한마디로 '동맹의 값'을 치르라는 요구다. 

동맹국으로서 미국 요구를 마냥 거부하긴 쉽지 않다. 실제 트럼프는 한국의 대응 수준을 보며 주한미군, 핵우산 등 안보부터 관세 등 경제까지 한데 묶어 종합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3월1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동맹인 미국을 지원하지 않으면 한국도 지원하지 않겠다며 주한미군 철수나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 관세 카드 등을 꺼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딜레마는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요구를 마냥 따라가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파병하면 '미국의 전쟁'에 연합군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경우 중동의 주요국인 이란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호르무즈해협은 지금 이란의 기뢰·드론·미사일 위협으로 '킬 박스(kill box·죽음의 구역)'로 불린다. 당연히 우리 장병들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 

당장 중동전쟁에서 손해는 최소화하면서 국익을 지키는 게 급선무지만, 한국에는 같은 질문이 반복적으로 던져지고 있다. 세계 패권국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라는 구도 속에 '한국은 과연 어느 범위와 속도로 참여할 것인가'라는 시험대에 계속 서고 있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는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 것이며, 얼마나 피를 흘릴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위기 대응 '방향·속도'  명확한 합의 절실"

언젠가 선택의 시간이 올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선택지를 계속 붙잡고 있기엔 국제 질서의 변화와 재편이 심상치 않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외교 속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 식으로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국론을 모아야 한다. 그 전에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와 거부할 경우 우리에게 닥칠 비용과 편익을 냉철하게 계산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대체 '국익'이 무엇이며, 그 우선순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도 더 이상 미뤄둘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중동전쟁은 우리에게 외교 안보와 경제 안보라는 이중적 위기를 불러왔다. 여기에 만약 북핵 같은 복합적인 위기가 겹치게 된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조병제 경남대 초빙석좌교수가 3월25일 포럼에서 지적했듯 국제 질서의 전환기에 한국은 언제든 복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 모두를 뒤흔들 수 있다. 조 교수의 말처럼 동북아시아는 지정학과 기정학이 충돌하는 전략적 압축지대다.

중동전쟁이 준 교훈은 바로 '국가의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속도의 중요성'이다. 조 교수의 지적이다. "남은 문제는 시간이다. 새로운 질서는 빠르게 고착되고 있다. 전략은 장기 비전을 요구하지만, 실행은 집중과 속도를 요구한다.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명확한 합의와 실행에 대한 정치적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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