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학살과 45억 톤의 탄소…한국도 '조용한 공범'이다"
2026.03.28 20:32
"저도 처음엔 가스전 개발을 모두에게 좋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모잠비크, 지역사회도 그 혜택을 받고요. 그런데 사안을 파고들수록 알게 됐죠. 그 이야기 모두 헛소리란 것을요."
관객들이 숨죽여 스크린을 지켜보는 가운데, 화면에 등장한 알렉스 페리(Alex Perry) 기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영되고 있던 다큐멘터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페리 기자는 2021년 모잠비크의 가스 개발 지역, 카부델가두 팔마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고문 사건을 세계에 처음 알린 기자다. '컨테이너 학살'로 세계에 알려진 이 사건은 2024년 "'전원 참수하라':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의 아프리카 거점 내 잔혹 행위 폭로"란 제목으로 미 언론 <폴리티코>에 보도됐다.
그는 왜 '헛소리'라고 말한 것일까. 지구 반대편의 그가 한국 시민들에게 말을 건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성동구 모처에서 단편 다큐멘터리 <가스의 저주, 모잠비크 : 조용한 공범>이 처음 상영됐다. 기후솔루션 주최한 제2회 선 넘는 기후 상영회에서다.
다큐멘터리는 모잠비크의 가스 개발과 그곳에서 수년간 계속되는 무력 반란, 그리고 한국과의 연결 고리를 담고 있다. 제목의 '조용한 공범'은 한국을 말한다. 모잠비크 가스전 개발에 적극 참여 중인 국가 가운데 한국도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6300여명 사망, 130만명 피난… 9년 분쟁, 아직 정확한 실태 파악도 전무)
가스전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살상
영화는 먼저 모잠비크 내 반란을 비춘다. 2017년 시작된 무장단체의 반란이 9년째 끝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 6000명 넘게 사망했다고 파악되나, 공식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정확한 실태는 모른다. 130여만 명의 주민이 피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컨테이너 학살 사건이 있다. 페리 기자가 취재한 2021년 6월경의 모잠비크 정부군 민간인 학살 의혹이다. 군인들이 민간인 남성 200여 명을 두 컨테이너에 몰아넣고, 감금, 고문, 살상 등을 자행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 정부군은 토탈에너지 가스 개발 지역을 경비하던 인력이었고, 컨테이너 또한 가스 개발 부지 내에 있었다. 페리 기자가 가스전 개발의 주 운영사 토탈에너지의 책임을 묻는 이유다.
제작진은 실제 학살 사건의 피해생존자도 가까스로 만났다. 그는 "컨테이너 두 동에 사람이 꽉 들어차 있었고, 대소변도 그 자리에서 처리했고 물이 없어 서로의 땀을 먹었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봤다.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했다.
생존자는 "(군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 당했고, 그러다 죽이기까지 했다"며 "남자끼리 강제로 키스를 시키기도 했다. 3개월 가량 감금돼 있었다"고 밝혔다.
"가스로 부자 만들어줄게"… 돌아온 가난
제작진은 이 지역을 오래 연구해 온 사회학자, 역사학자, 경제학자, 환경운동가 등도 만났다. 반란과 가스 개발과의 연관성에 대한 이들의 견해도 일치했다. "침략의 감각"이다.
가스가 발견된 카부델가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모잠비크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개발사들과 정부는 이런 주민들에게 '가스로 부를 가져다준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개발이 진행된 후 이들의 빈곤과 배제는 더 심화하기만 했다는 진단이다.
가스개발지에서 대대로 살아온 2700여 명의 주민은 집을 잃고 인근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카부델가두 대다수의 주민은 농업과 어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가스개발지에 포함된 농지가 대부분 강제 수용되고, 어장에도 접근하지 못하면서 현지 주민 대부분이 생계 수단을 잃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과 부유한 도시에 사는 청년 등 '외지인'들이 들어와 가스 개발과 관련된 모든 수익을 가져가고 주민을 배제한다는 집단적 감각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반란군 또한 이 정서를 이용해 "가스는 우리 것이다. 이 땅은 우리 것이다"라는 구호로 주민들의 지지를 모았다.
페리 기자는 "'알샤바브(무장단체)' 지도자 중 한 명이 '나는 가스 프로젝트를 공격한다'고 말하면서 반란을 시작했다"며 "가스와 반란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책금융기관이 모잠비크 전체 가스 개발 사업에 대출, 보증 등으로 지원한 규모는 4조 3384억 원 가량이다. 삼성중공업, 대우건설, HD현대삼호, 대우조선해양, 한국가스공사 등이 관련 계약을 수주했다. 제작진은 현장의 참혹한 실상을 차례대로 비추며 물었다.
"한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스의) 수익만 챙기면 되는가? 공적 금융기관의 투자가 들어간 사업인데, 공적 책임이 뒤따라야 하지 않는가?"
"한국 공적기관에 사회적 책임이란?"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한 카페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두 제작진을 만났다. 기후솔루션의 차유현 가스팀 연구원과 커뮤니케이션팀의 이정민 PD는 올해 초 모잠비크 카부델가두 현장을 취재하고 돌아왔다.
영상을 제작한 이유를 묻자, 두 사람은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알리기 위해 현지 방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차 연구원은 "지리적으로, 언어적으로 먼 나라의 문제라 심리적 거리감이 클 수는 있지만, 우리가 언제든 쓸 수 있는 가스의 뒤엔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 누군가가 생명을 잃은 흔적이 묻어있다는 것, 그 사실만이라도 우리가 알아둬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차 연구원은 한국과 같은 모잠비크 LNG 사업 대주단(대출·보증 등을 해준 금융기관 모임)에 속한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의 다른 행보를 강조했다. 이들 정부는 모잠비크 내 민간인 살상 등의 심각성을 고려해 자체 실사를 한 후, 지난해 12월 자국 공적금융기관의 금융 지원을 철회했다.
차 연구원은 "그러나 한국수출입은행 등은 자체 조사를 할 계획도 없고, 투자 지원을 철회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안타까운 실정이다. 공적금융기관의 책임성과 관련해 많은 고민이 드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는 바람도 남겼다. 주로 문헌자료를 기초로 보고서를 작성해 온 차 연구원도 "그동안 통계, 데이터 등 수치나 자료 속에선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실제 현장을 보고 직접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에서 배웠다"며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 문제의 심각성도, 우리(기후솔루션) 작업의 의미도 더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영상을 꾸준히 제작 중인 이 PD는 가스 발전 자체의 탄소 배출 문제도 우려했다. 그는 "모잠비크 가스전이 가동되면 최대 45억 톤의 온실가스가 대기로 배출된다"며 "하나의 가스전에서만 유럽연합 27개국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고 경고했다.
그는 "실제 지구에 탄소 배출이 감소했던 건, 코로나 시기 외엔 없었다. 즉 코로나 때처럼 세계가 움직여야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가스 개발을 계속 유지할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에 전면적인 투자와 지원이 시급하다"고도 강조했다.
당일 <가스의 저주, 모잠비크 : 조용한 공범> 상영회엔 90여 명의 관객이 함께했다. 기후솔루션은 28일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 담지 못한 내용은 쇼츠 등으로 SNS 플랫폼을 통해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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