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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이어 석화 제품도 수출금지 검토

2026.03.28 01:33

이란 전쟁발 한국 공급망 위기
세계 최대 헬륨 가스 생산 시설인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단지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 2일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라스라판 산단이 멈춰 서면서 LNG·헬륨 생산이 중단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한국 제조업의 공급망 위기가 심화하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산업통상부는 27일 자정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 안정을 위한 규정’을 전격 고시하고 시행했다. 5개월간 석유화학 산업 기초·핵심 원료인 나프타의 국내 생산분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전량 내수 전환하는 내용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국외 도입 지원 등으로 나프타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보건의료와 핵심 산업, 생활필수품 생산에 영향이 없도록 최우선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나프타에 이어 석유화학 제품 수출금지도 고민 중이다.

나프타는 에틸렌(플라스틱 원료)·부타디엔(합성고무 원료) 등 생산의 핵심 원료다. 나프타 재고가 바닥나면 생필품 등 생산도 멈출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 공급되는 나프타의 절반은 정유사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서 얻고, 나머지 절반은 중동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수입 물량 중 절반 이상(54%)은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쿠웨이트에서 수급하고 있어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데 직격탄을 맞았다.

나프타 5개월간 전량 내수 전환, 생필품 생산 차질 막는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석유화학 업계도 대응에 나섰다. 롯데케미칼은 27일 여수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초 여수 공장은 다음 달 18일부터 정기 보수(대정비작업)로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었는데, 3주가량 일정을 앞당겼다. 이에 앞서 LG화학은 지난 23일 여수산단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정부는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재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2022년 7월) 이전까지 러시아는 한국의 최대 나프타 공급처였다. 2021년 기준 러시아산 수입 비중은 22.8%(5764만 배럴)로 2위인 UAE(3499만 배럴)를 크게 웃돌았다. 다만 실제 수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대러 제재와 유럽연합(EU) 등 주변국 반응이 변수다. 댄 요르겐센 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은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에너지장관 회동에서 “전쟁자금을 간접적으로라도 지원할 수 없다”면서 “EU는 러시아산 에너지를 다시는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에 따른 공급망 위기는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산업도 강타하고 있다. 이란의 계속된 공습으로 생산시설에 피해를 본 카타르의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QE)는 24일 한국과 중국 등과의 일부 장기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계약에 대한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QE는 앞서 4일에도 헬륨 등 기존 계약분에 대한 불가항력을 선언한 바 있다. 불가항력 선언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계약을 정상적 이행할 수 없을 때 배상 등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고지하는 것이다. LNG 생산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인 헬륨은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산업용 가스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웨이퍼 냉각 등에 쓰는 헬륨을 전량 수입한다. 특히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헬륨의 64.7%는 카타르산이었다. 카타르 외에 미국·러시아·알제리도 헬륨을 생산하고 있지만 반도체 업계는 순도 문제 등으로 카타르산을 선호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술 수준에선 헬륨을 완전히 대체할 방안이 없어 당장 공급망을 다변화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업계의 헬륨 비축분은 3~4개월 정도 물량으로 알려져 전쟁이 길어질 경우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업계는 반도체를 만들 때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 공정에 쓰이는 브롬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국내 브롬 수입량의 97.5%가 이스라엘산으로 중동 지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이스라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란의 공격으로 피해가 발생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이 밀집해 있다. 이들 기업의 장비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도 공급돼 장비 공급 문제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헬륨·브롬 공급망은 전쟁이 끝나야 정상화될 전망이다.

해상 물류 정상화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핵심 원료나 소재를 수개월분 비축해 당장 문제는 없지만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업계에 미칠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질소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도 전쟁 이후 수입이 뚝 끊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농업용 요소 35만여t 가운데 38%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왔다. 중동은 한국의 최대 요소 수입 지역으로 전체 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수입 2위 국가인 중국(약 20%)의 두 배 수준이다. 질소 비료는 벼와 채소 등 대부분의 농작물 재배에 사용된다.

현재로썬 당장에 요소 공급 차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정부는 비료 생산업체 등 민간이 약 6개월분 요소 재고를 확보하고 있어 단기적인 수급 불안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과 함께 고유가·고환율 등 복합 리스크가 농업 생산비와 식품 물가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응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6일 대응 점검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가수요 방지를 위한 공급량 조절과 수급 안정 지원방안 등을 논의했다. 송 장관은 “정부 전체로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는 만큼 긴장감을 낮추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한국의 공급망 가운데 중동 국가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적지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동 및 인근 국가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즉각 관리 대상’ 품목은 41개다. 원유(사우디)를 비롯해 이차전지 원료인 니켈 매트(튀르키예), 전기차·전선 소재인 정련동(튀르키예), 반도체·정밀화학 원료인 요오드(이스라엘) 등이 있다. 특정국 쏠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41개 즉각 관리 대상 품목은 튀르키예(24개)·이스라엘(4개)·사우디(3개) 등 상위 3개 국가에 75% 이상이 집중돼 있다. 정형곤 KIEP 선임연구위원은 “특정 국가 쏠림이 심한 만큼 중동 전체가 아닌 국가별 집중 관리 체계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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