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알루미늄… 호르무즈 한 달 막히자 아시아 공급망 연쇄 쇼크
2026.03.28 00:54
“전시(戰時)에 준하는 엄중한 상황 인식 하에서 중대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합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7일 6개 경제단체와의 긴급 간담회에서 현 시국을 사실상의 전쟁 상황으로 규정했다. 정부는 이날 0시를 기해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나프타를 활용해 만드는 석유화학 제품, 항공유와 휘발유 등 정제유(석유 제품) 수출 제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초강수는 이번 사태가 코로나19 팬데믹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충격을 넘어서는 ‘사상 최악의 공급망 대란’으로 치닫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석유화학 수출 425억달러, 석유 제품 수출 455억달러를 기록한 ‘큰손’ 한국이 빗장을 걸면, 한국산 항공유 의존도가 높은 호주, 화학제품 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 등지로 충격파는 확산할 전망이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은 자국 산업 생태계 생존을 위해 수출 빗장을 걸고 있다. 중국은 정제유뿐 아니라 인산 비료 수출까지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유 수요의 약 40%를 중국·태국에 의존하는 베트남에선 항공유 가격이 치솟고 항공사의 노선 축소가 시작됐다. 한국·일본·중국에 원유 공급을 요청했지만 어디서도 확답을 받지 못한 필리핀은 지난 24일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사실상 ‘아시아의 위기’”라고 경고한 이유다.
아시아가 유독 충격이 큰 데는 두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한국·일본·대만·중국이 세계 반도체·석유화학·정유·배터리·자동차 산업의 핵심 거점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이 구조에서, 원자재 공급이 끊기면 충격이 산업 전반으로 즉각 확산된다. 또 하나는 지리적 근접성이다. 동남아·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중동과 거리가 가깝고 운송 비용이 낮아 중동 의존도를 높여왔다. 그 합리적 선택이 이번에는 외통수가 됐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약 86%, 카타르산 LNG의 9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는 것은 이 두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대체 불가능한 필수 소재들이 호르무즈 해협 너머에 갇히면서 파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동이 글로벌 공급의 45%를 담당해 온 석유화학의 뿌리 나프타의 수급이 끊기며 여천NCC 등 아시아 주요 석유화학사들이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나프타에서 파생되는 에틸렌·폴리에틸렌은 식품 포장재와 PET병, 배터리용 도전재와 분리막, 의료용 고무장갑·합성섬유에 이르기까지 소비재 전반의 원료다. 아시아 전역에서 비닐 포장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 충격도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 헬륨 공급의 30%를 차지하는 카타르발 수출이 중단되면서 반도체 웨이퍼 냉각·식각과 EUV 리소그래피 공정에 필수적인 고순도 헬륨 수급이 불안해졌다. 삼성·SK하이닉스는 단기 재고를 확보해 놓았지만, AI 반도체 생산 강도가 이례적으로 높은 지금 그 재고가 얼마나 버틸지는 불확실하다. 중동산 황의 공급 차질은 황→황산→니켈·코발트 제련→전기차 배터리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를 타고 충격이 번지고 있다. 자동차·가전의 핵심인 알루미늄, 식량 생산의 근간인 비료와 차량용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 공급도 동시에 차단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석유·화학 기반 제조업은 물론 농업 등 식량 생산 분야에서도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충격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수요가 무너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는 에너지 공급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에너지와 산업 공급망 모두 충격을 받은 복합 타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공급 차질’로 규정했고,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지난 50년간 가장 큰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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