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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었다” 25세 여성, 남자 넷과 북극 무인도에서 겪은 일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에이다 블랙잭 편]

2026.03.27 23:51

브랑겔섬 탐험대(가운데 여성이 에이다), 1921년경 [작자미상]


203. 특별 사진전
에이다 블랙잭

2년간 ‘극한’ 북극서 살아남은 여인
허기·질병에 죽어간 탐험대 동료들
북극곰에 쫓겨 목숨 잃을 위기까지
오직 子생각하며 죽을 환경 버텼다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다큐멘터리(다큐리즘) 형식으로 꾸민 이번 기사는 200자 원고지 48매 가량입니다. 이 정도 분량은 읽기에 빠르면 10분, 여유를 가지면 20~30분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구독, 저장, 댓글을 활용한 스크랩 등으로 두고두고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미지의 땅 홀로 남은 여인,
마지막 유서까지 작성하다


겨울 옷을 입은 에이다, 1925 [빌잘무르 스테판슨 등/브랑겔 섬의 모험]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에이다 블랙잭은 키 152㎝, 몸무게 45㎏의 스물다섯 살 여인이었다. 평범한 외모와 왜소한 몸, 작은 손발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런 에이다는 지금, 북극 브랑겔섬에 홀로 갇혀 있었다.

1923년 6월. 당시 그 섬은 미지의 땅이었다. 그녀 말고 인간은 없었다. 그저 설풍이 몰아치고, 주위로는 북극곰과 범고래 따위만 활개 치는 곳이었다. 그녀와 함께 이곳에 온 네 탐험가? 셋은 이미 설풍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부정하고 싶지만, 아마 눈에 파묻혀 죽었을 것이었다. 괴혈병 탓에 누워있기만 한 나머지 한 명 또한, 얼마 전 그녀가 보는 앞에서 숨이 멎었다.

저에게도 곧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저의 죽음이 알려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여기 있는 검은색 띠를 챙겨주세요. 이 띠를 제 아들 베넷의 책가방으로 써주세요. 아울러, 제가 가진 모든 물건도 베넷에게 전해주세요.

얼마 전, 기약 없는 고립으로 절망의 밑바닥을 들여다본 날.

에이다는 이런 글도 썼다. 이것은 유서면서 편지였다. 부르튼 손으로 남기는 마지막 말이었다.

에이다는 그 종이를 다시 품에 넣었다. 얼마나 자주 읽었는지, 모서리는 타다만 불쏘시개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딱딱한 여우고기를 마저 씹었다. 돌아보니 또 잠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허기와 졸음 따위 욕구에는 눈치가 없었다.

에이다는 바다표범 가죽을 긁어 덧댄 파카를 다시 여몄다.

엉성하게 덧댄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과 장화를 살갗 끝까지 잡아당겼다. 자려면 몸이 따뜻해야 했다. 특히 머리와 손발의 체온을 잃는 순간, 밤은 밤이 아닌 고문이 될 터였다. 그나마 날이 풀렸다고 한들 북극은 북극이었다.

에이다가 누운 곳은 오트밀 자루 위였다.

눈을 감으니 귓가에 바람이 더 크게 맴돌았다. 가까이에서는 굳고 녹기를 반복하는 얼음 소리, 멀리서는 무언가가 대차게 물을 뿜는 소리 등이 울렸다. 에이다는 눈을 떴다. 여전히 혼자였다. 망망대해만큼 소름 끼치는 섬 위에서, 아직도 혼자였다. 이 불모지에 온 지도 곧 2년째였다. 에이다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재차 눈을 떴을 때….

남편 가정폭력, 연약했던 아들
살기 위해 길 위로 또 올라서다


에이다 블랙잭과 아들 베넷, 1923년경 [작자미상]


엄마. 우리는 왜 떠나야 해요?

이제는 전생 같은 과거의 한 순간. 에이다는 아들 베넷을 안은 채 눈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왜 가야 하는가. 집을 두고 왜 떠나야 하는가. 그녀는 베넷의 물음에 걸음을 멈췄다. 멍든 손등을 재차 바라봤다. 더 그럴듯한 답을 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문장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야.” 이 말밖에는.

에이다는 1898년, 알래스카 솔로몬과 그나마 가까운 오지 마을 스프루스 크릭에서 태어났다.

에이다는 무뚝뚝한 이누피아트(Inupiat)의 일원이었다. 즉, 날 때부터 동토의 원주민이었다. 다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인근의 거점 도시 격인 놈(Nome) 내 선교 학교에 다녔다. 그렇기에 요리와 바느질 등 가사에 익숙하고, 채집과 물개 사냥 등 생존 기술에는 서툴 수밖에 없었다.

에이다는 1914년 무렵에 결혼했다. 당시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남편 잭 블랙잭은 사냥꾼이자 개 썰매 몰이꾼이었다. 그와 세워드 반도(Seward Peninsula)에 살며 세 명의 아이도 봤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잭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내였다. 에이다는 매 순간 그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이런 가운데, 둘 사이 자식 중 베넷을 뺀 둘은 일찍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베넷 또한 병약했다. 아이는 결핵에 걸려 있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언젠가 잭은 또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에이다를 후려쳤다. 에이다는 베넷을 감싸며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잭은 짐승 소리와 비슷한 괴성을 지르곤,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런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에이다는 이제 홀로 집안을 꾸려야 했다. 둘이서 먹고살 돈이야 어떻게든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베넷의 약값까지 모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떠난 것이었다. 살아가기가 그나마 더 익숙한 곳, 다시 놈으로.

“살기 위해서요?”

“그래. 정확히는, 살아가기 위해서야.” 에이다가 베넷을 끌어안은 채 간 거리는 40마일(약 64㎞)이었다.

“탐험대의 재봉사 겸 요리사 구함”
‘파격’ 구인 광고에 신청서를 쓰다


앨런 크로퍼드와 프레드 마우러, 그리고 론 나이트, 1922 [빌잘무르 스테판슨]


놈으로 돌아온 에이다는 말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남의 옷을 짰다. 오후가 오기까지 남의 집 마당을 쓸고, 저녁이 다가오면 남의 밥을 차렸다. 틈틈이 광부들의 작업복을 빨았으며, 어느 날은 헤진 그물을 완전히 다시 꿰매기도 했다.

돈은 늘 아쉬웠다. 병은 언제나 야속했다. 결국 에이다 베넷과 떨어져야 했다. 더 나은 치료 환경을 위해, 보육원 격인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에이다는 조금 울었다. 먼 지평선을 보며 끝없이 걸어봤다. 코는 시큰거렸고, 목울대는 자꾸만 뜨거워졌다. 그녀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돈을 더 벌겠다고 맹세했다. 그것만이 베넷을 하루빨리 되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은 채.

이 무렵, 에이다는 파격적인 공고를 볼 수 있었다.

이는 구인 광고였다.

네 명의 청년 탐험대가 재봉사 겸 요리사 동료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이 목적지로 삼은 곳은 놈에서 북서쪽으로 800~900㎞가량 떨어진 브랑겔섬이었다. 사실상 북극해 한복판에 있는 무인도였다. 조건은 1년 계약에 월 50달러. 즉, 거기서 어떻게든 1년만 버티면 600달러를 쥘 수 있는 구조였다. 이는 당시 알래스카의 웬만한 노동자 임금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천과 가죽은 얼마든 기울 수 있었다. 청소와 요리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이누피아트족인 만큼, 북극 심장부의 잔혹함이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전문가들과 함께라면 무조건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1년만 견디면 베넷을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곧장 지원서를 썼다. 이것은 기회이자 운명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보였던 대책 없는 행보였다.

‘브랑겔섬 정복’,
대책없는 탐험의 이유


앨런 크로퍼드와 고양이 빅토리아, 1922년경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그런데 알고 보면, 탐험대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40대였던 탐험가 빌잘무르 스테판슨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무인도 격인 브랑겔섬을 영국 또는 캐나다 땅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절 브랑겔섬은 굳이 따지자면 러시아 영토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위치가 워낙 동떨어져 있는 만큼 통치의 입김이 닿기에는 미약한 감이 있었다.

캐나다 출신의 스테판슨은 그 빈틈을 노리고 전략을 짰다. 본인의 탐험대가 그곳에 깃발을 꽂고 ‘알 박기’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이렇게 1~2년만 흐르면, 우리 세력이야말로 통치권을 주장할 명분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실현된다면? 막대한 부와 명성, 위대한 개척자로 칭송받으리라는 희망도 품었을 것이다.

다만, 영국 측과 캐나다 측 모두 스테판슨의 구상을 구상이라고 보지 않았다. 외교적으로든 국제법으로든, 이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성적으로 보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우리는 브랑겔섬에 갸아 합니다.
그곳을 정복하는 건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모험으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스테판슨은 꿈을 접지 않았다.

강연과 출판 등으로 이 낭만적인 청사진을 거듭 설파했다. 그런 오지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이른바 ‘친절한 북극(The Friendly Arctic)’ 이론을 펼쳤다. “문제없어요. 그곳에는 매일 봐도 경이로운 풍광이 있고, 옷과 식량으로 삼을 동물이 넘실대며, 농장과 목장 등 대대적 사업을 펼치기에 딱 맞는 광야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당연한 듯 당당하게.

이 말에 홀린 자들이 있었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캐나다 대학생, 앨런 크로퍼드. 이어 스물여덟 살의 미국 출신 프레드 마우러론 나이트. 그리고 스테판슨의 비서 출신인 밀턴 갈레였다. 미국 태생의 갈레는 고작 열아홉에 불과했다. 넷 중 그나마 탐험 경험이 있는 이는 최연장자인 마우러와 나이트, 둘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탐험대 네 명의 정체였다. 스테판슨은 길 떠나는 네 청년에게 동화 같은 경험을 즐기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면 영국과 캐나다가 영광을 안겨 줄 것이라고 재차 바람을 불어넣었다. 정작 본인은 가지도 않았다. “어린 친구들. 누군가는 바깥에서 상황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유였다.

친절한 북극?
그런 건 없었다


늦가을의 캠프, 에이다 블랙잭이 메인 텐트 옆에 서 있는 모습. 1922년경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1921년, 9월.

에이다이들 넷, 그리고 고양이 빅토리아와 함께 브랑겔섬에 발을 디뎠다.

에이다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이곳.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 송곳처럼 날카로운 얼음, 은은한 비린내가 부유하는 대지는, 결코 인간에게 ‘친절’할 수 없다는 점을.

반면, 청년들은 캠핑장에 온 듯 들떠보였다. 리더 크로퍼드는 지도를 펼쳐 머물 곳을 찍었다. 마우러와 나이트, 갈레는 챙겨온 나무 상자를 하나씩 꺼내 옮겼다. 최소 1년, 아마 2년가량은 버텨야 할 이들이 가져온 식량은 많지 않았다. 고작 6개월치의 말린 고기 정도였다. 왜? 음식이야 풍요로운 이 섬에서 얼마든 구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총 몇 자루와 탄약, 덫과 그물 따위도 챙겨왔지만, 이 또한 넉넉한 수준은 아니었다. 역시나 낭만이 현실을 이긴 결과였다. “곧장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 남자들은 이 생각이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훗날 에이다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보게 된다.

탐험대가 눈으로 집을 짓는 모습, 1922년경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에이다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느질을 미루고, 요리에도 손을 놓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길을 잃었다. (…) 그녀가 수선을 하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깃대에 묶기도 했다.” 최연장자 중 한 명인 나이트는 이런 기록까지 남겼다.

하지만, 에이다의 입장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었다. 공포도 공포지만, 그녀는 속았다는 생각도 컸을 것이다. 어설픈 모험 놀이에 기만당했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에이다는 곧 마음을 바로잡았다. 일이 벌어진 이상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들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청년들이 덫을 놓고, 그녀는 가죽을 손질했다. 청년들이 사냥을 하고, 그녀가 사냥감을 끓이거나 말렸다. 고양이 빅토리아는 주변에서 수다스럽게 울었다. 그렇게 하루를 넘겼다. 일주일이 흐르고, 몇 달이 지났다. 아직 식량이 있고, 체력과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모험은 이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예외는 없었다. 자연을 얕본 인간에게 해피 엔딩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었다.

넷중 셋은 사라지고
나머지 한 명도 숨이 끊어졌다


앨런 크로퍼드와 프레드 마우러, 밀턴 갈레가 사냥에 나선 모습, 1922년경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구호선이 보여?”
“그럴 리가요.”
“스테판슨, 이 개자식!”

탐험대는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이들의 눈은 어느덧 붉게 물들었다. 근육질의 몸 또한 구멍난 듯 바람이 빠지고 있었다.

1922년 9월, 체류 1년차. 스테판슨이 약속한 구호선은 오지 않았다. 6개월치 식량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올해 겨울은 작년에 맞이한 첫 겨울과 다를 것 같았다. 그때도 혹독하긴 했지만, 이번 혹한은 차원이 다를 듯 보였다. 사냥감은 벌써부터 크게 줄고 있었다. 바다표범도, 바다코끼리도 당장의 심상찮은 공기를 알고 서식지를 옮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이대로면 탐험대 모두 굶어 죽을 운명이었다.

스테판슨이 장담했던 구호선? 스테판슨은 아직도 충분한 돈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허황된 구상에 지갑을 선뜻 여는 이는 흔치 않았다. 겨우 후원금을 구했을 때는 늦었다. 구호선 테디 베어(Teddy Bear)호가 뒤늦게 출항했지만, 그때는 브랑겔섬 전역이 벌써 얼음장에 포위된 후였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야 해요.”
“그게 무슨 말이죠?”

크로퍼드의 말에 에이다가 되물었다.

1923년 초. 탐험대는 텐트에 빙 둘러앉아 바닥난 식량을 긁어먹고 있었다. 가죽 같은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쩍쩍 마른 입은 입김조차 피워내지 못했다. 역시나, 이번 한파는 특히나 더 사나웠다. 몇 날 며칠을 더 있어도 보이는 건 오직 눈과 산, 얼음과 바다뿐이었다. “우리도 곧 저렇게 되기 전에… 어서 탈출해야 해요.” 크로퍼드의 눈빛은 나이트를 향했다. 나이트는 끙끙대며 누워 있었다. 괴혈병이었다. 영양분이 부족할 때 고개 드는 그 병이었다. 건장했던 나이트는 1년 반 사이 몰라볼 만큼 살이 빠졌다. 잇몸은 통째로 흔들렸다. 곧 떨어질 듯 대롱대롱 매달린 치아 또한 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에이다 씨. 저희가 어떻게든 구조대를 데려올게요. 그러니… 이곳에서 잠시 나이트를 돌봐주세요.”

크로퍼드마우러, 갈레는 이미 말을 맞춘 듯 보였다.

어쩌겠는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이들은 꽝꽝 언 바닷길을 90마일(약 140㎞)가량 가로질러 시베리아 지역에 갈 계획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세 청년은 그렇게 설풍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에이다가 본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이들은 다시 목격되지 않았다.

론 나이트의 무덤 앞에 선 에이다 블랙잭, 1924년경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남겨진 에이다는 이제 의사 겸 간호사, 사냥꾼이자 파수꾼 역할도 해야 했다.

에이다는 나이트의 식은땀을 닦았다. 그의 입가로 음식을 흘려주는 한편, 때때로 경련을 일으키면 팔다리를 힘껏 잡아줘야 했다.

그렇게나 총을 무서워했던 에이다는 이를 직접 쏘고 맞추는 법도 익혀야 했다. 이제는 덫도 스스로 놓고, 매일 6마일(약 9.6㎞)을 오가며 땔감도 들고 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날이 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춥고 척박했지만, 북극에도 북극 나름의 봄과 여름은 잊지 않고 찾아왔다.

다만 상황이 절박했던 만큼, 에이다나이트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한때 나이트는 그녀가 자신을 일부러 굶기고 있다고 의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 에이다 또한 밤낮으로 목숨을 걸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쯤에선 그녀 또한 제대로 먹지 못해 괴혈병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죽고 죽이려면 얼마든 더 쉬운 길이 있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에이다나이트의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한 날은 그해 6월23일이었다.

그가 몇 시에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날짜를 적어둔다.

그녀의 기록이었다.

에이다는 굳어버린 그를 침낭에서 꺼낼 힘조차 없었다. 에이다는 거처를 창고용 텐트로 옮겼다. 다섯에서 둘, 둘에서 하나. 이제, 그녀는 혼자였다. 에이다는 그날도 조금 울었다. 그녀 말고 살아남은 유일한 존재, 고양이 빅토리아. 갈비뼈를 훤히 내보이는 녀석이 그녀 곁을 힘없이 맴돌았다.

“북극곰… 전력을 다해 뛰었다”
아들 생각하며 또 하루를 살아가다


물개 가죽을 손질하는 에이다, 1925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베넷. 내 아들, 베넷.

에이다는 재차 눈을 떴을 때, 모든 게 꿈이었기를 바랐다. 아들이 그리웠다. 어느덧 1년 반 가까이 못 본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을 안고 종일 40마일을 걸었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에이다가 지금껏 버티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베넷. 내 아들, 베넷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장 보이는 건 여전히 눈과 바람이었다.

그새 설맹이 왔는지, 백야가 깔렸는지, 온 세상은 눈물겹게 하얗기만 했다.

에이다는 자신 또한 시한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또 겨울이 오면 그때는 틀림없이 굶어 죽든, 얼어 죽을 터였다. 이 모든 악몽을 구상한 스테판슨의 구호선 따위 진작에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에이다는 언젠가부터 북극곰 두 마리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기적적으로 바다표범의 흔적을 찾고서 뒤를 밟을 때였다. 기대한 건 살이 오른 사냥감이었지만, 정작 모습을 보인 건 어미 곰과 새끼 곰 한 쌍이었다. “…내가 마침내 그것이 북극곰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에이다는 당시를 이렇게 썼다. “나는 전력을 다해 뛰었다. 텐트와의 거리는 400야드(약 365m)였다. 텐트에 도착했을 때는 심장이 너무 뛰어 기절할 뻔했다.”

에이다는 그날부터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다.

냄새를 맡은 두 짐승이 언제 찾아와 가슴팍을 찢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에이다는 동물 가죽으로 엉성하게나마 배도 한 척 만들어봤다. 그러나 이 배는 물에 띄우기가 무섭게 물살에 휩쓸려 떠나가버렸다. 낙담한 그녀는 그날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제 정말 모든 게 끝인 듯했다. 에이다는 마지막으로 아기 신발 한 켤레를 짰다. 베넷을 떠올리며 만든 유품이었다. 그리고, 이제 살아가기를 포기할 무렵….

바다코끼리 머리 위에 있는 고양이 빅토리아, 1922년경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1923년, 8월19일께.

에이다는 멀리서 또 무언가가 대차게 물을 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는 지겹게 들어온 짐승의 소리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둔탁했다. 였다. 그것은 분명 가 물살을 가르고 튀기는 소리였다. 이를 깨달은 순간, 에이다는 자기도 모르게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제발,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구호선 도널드슨호는 에이다 앞에 멈춰 섰다. “혹시… 앨런 크로퍼드란 자의 구조 요청을 받고 온 건가요?” 에이다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누구입니까?” “아니면 프레드 마우러, 밀턴 갈레….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테판슨의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뱃사람들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랬다. 스테판슨이 뒤늦게 배를 보낸 것이었다. 상황이 나날이 심각해지자, 그제서야 그나마 모금한 돈을 모아 구호선을 파견한 것이었다.

에이다는 구조됐다. 그녀와 체온을 주고받으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고양이 빅토리아와 함께였다.

도널드슨호 선원들은 그 섬에서 2개월여 가까이 부패해가는 시신 한 구도 찾았다. 하지만, 반년도 전에 떠난 세 청년은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이게 다였다. 근 2년의 탐험과 체류로 달라진 건 없었다. 브랑겔섬은 영국의 땅도, 캐나다의 섬도 되지 못했다. 에이다는 죽을 고비 앞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앞길이 창창했던 청년 넷은 허무하게 죽었을 뿐이었다.

어떤 상황이 오든,
살아가자


살아남은 에이다와 고양이 빅토리아, 1925 [빌잘무르 스테판슨/브랑겔 섬의 모험]


‘여성 로빈슨 크루소의 탄생.’

언론과 대중은 에이다의 서사에 열광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입소문을 타고 팔렸다. 에이다는 아들 베넷과도 재회했다. 보수도 받았다. 약속한 금액보다는 적었지만,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는 있었다. 그렇다면, 에이다의 삶은 드디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에이다의 기적을 부정하며 “그녀가 식인을 했기에 유일한 생존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괴소문을 퍼뜨렸다. 스테판슨 또한 거듭해 속물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기가 책의 인세를 다 받아 챙기고선, 정작 그녀에게는 정당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에이다는 삶에 질렸다. 인간에게 실망하고, 운명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베넷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누리고 싶었다. 에이다는 미국 시애틀과 스포캔 등을 돌다가 알래스카로 다시 돌아왔다. 그곳에서 당연한 듯 가난하게, 늘 그래왔다는 양 조용하게 살았다. 에이다의 뼛속 깊은 희망이었던 베넷은 1972년, 쉰여덟 살 나이로 죽었다. 그녀는 10여년이 흐른 1983년, 여든다섯 나이로 알래스카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이누피아트족은 본인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좋으면 선물을 휙 던진 채 사라지고, 싫거나 속상하면 막대기를 든 채 한없이 걷는다. 에이다는, 살아서 돌아온 후에도 참 많이도 걷고 떠돌았다. 수없이 많은 곳에 수많은 막대기를 꽂고 돌아왔다. 그녀는 앵커리지 메모리얼 파크 공동묘지에 묻혔다. 비석에는 그제야 이런 글이 쓰였다. ‘영웅, 브랑겔섬 탐험대.’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가고자 한 인간. 그렇기에, 그녀는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 있는 흔치 않은 사람이지 않을까. 에이다의 삶이 줄 수 있는 울림은 무엇인가. 이는 짧고도 깊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자.

참고 자료


Stefansson, Vilhjalmur. 등, The adventure of Wrangel Island, London : J. Cape

Healy, Luke., How to Survive in the North, NoBrow

Caravantes, Peggy., Marooned in the Arctic : the true story of Ada Blackjack, the ‘female Robinson Crusoe’. Chicago, Illinois : Chicago Review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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