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밑줄 사용법] 다시, 활을 잡는 용기에 대하여
2026.03.27 17:41
정경화의 외침에 관객들 열광
완벽한 AI엔 없는 실패·결함…
인간만 가질 수 있는 큰 자산
2018년 9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일흔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스물넷의 젊은 천재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마주 섰다. 세대를 초월한 두 거장의 만남에 객석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베토벤의 첫 음이 어긋난 것이다. 당혹감이 객석을 훑고 지나가려던 찰나, 정경화는 연주를 멈추고 웃으며 외쳤다. "다시!"
그 순간 침묵으로 얼어붙었던 공연장은 생생한 현장으로 변모했다. 관객들은 실망 대신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질렀다. 거장의 '삑사리'는 실패가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지독한 결벽과 인간적인 열정이 충돌하며 낸 가장 정직한 소음이었다. 사람들은 그날의 완벽한 연주보다 '다시'라는 짧은 외침에 공감했다. 그것은 인공지능(AI)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존의 진동이었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경고가 도처에서 나온다. 트위터 창시자 잭 도시가 이끄는 '블록'의 행보는 상징적이다. 전체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4000명 이상의 해고는 기술이 인간의 설 자리를 얼마나 없앨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작곡까지 하는 AI의 결과물은 매끄럽다 못해 완벽을 향해가고 있다. 오류도 머뭇거림도 없다. 그러나 감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질문해야 한다. 오차 없는 데이터로 빚어진 완벽한 교향곡이 AI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과연 정경화의 공연장에서만큼 감동할 수 있을까.
인간이 예술에 감동하는 건 기술적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다. 이면에 깃든 창작자의 고통, 절망, 고독한 연습 시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곡가 중에는 절대음감을 가진 이가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취약성이 완벽한 음에 대한 더 큰 간절함을 만든다. AI 시대에 인간적이라는 가치는 역설적으로 이런 결함에서 발생한다. 완벽함은 기계의 영역이다. 하지만 완벽함을 향해 가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인간만의 서사다. 최근 TV보다 유튜브 예능이 더 재미있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대 자본과 수백 명의 스태프가 움직이는 TV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게임의 첫 판에서 전원이 탈락하는 사고가 생긴다면 PD는 준비한 방송 분량을 위해 재촬영이라는 보정을 가할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전원 탈락이라는 상황 자체를 콘텐츠로 삼고, 당황하는 제작진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한다. 준비되지 않은 무너짐, 그 가공되지 않은 리얼리티가 시청자에게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신뢰를 준다.
AI가 인간의 모든 직업을 위협한다 해도 뺏을 수 없는 게 그것이다. 실수할 권리와 다시 시작할 용기. 정경화의 실수에 관객이 열광한 건 그녀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실수에도 다시 활을 잡는 용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편집된 TV 예능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유튜브의 생명력과 닮아 있다.
실수는 제거해야 할 노이즈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AI와 구별되는 유일한 증거다. 레너드 코언의 말처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다. 빛은 바로 그곳을 통해 들어온다". 일본에는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붙여 수리하는 '긴쓰기(Kintsugi)'라는 예술이 있다. 이들은 깨진 틈을 숨기지 않고 강조하는 것으로 상처가 물건의 아름다운 역사가 된다고 믿는다. 우리 삶도 그렇다. 상처는 얼룩이 아니라 인간적 훈장이다. 미래의 가장 큰 자산은 AI적 '완벽함'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결함'이 될지도 모른다. 꽃길 아닌 자갈길 위에서 삑사리를 내며 걷는 그 투박한 발걸음 말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때로 음정이 어긋나고 박자를 놓쳐도 괜찮다. 활을 잡고 외치면 된다. "다시!" 그 짧은 외침 속에 우리의 진짜 인간다움이 살고 있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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