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길 산책]삶의 한 주기에서 새 기운을 얻다
2026.03.27 11:02
무대 통해 성찰의 시간 가져보길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작업을 이어온 극단들이 창단 이후 지나온 세월을 기리는 공연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극단 노을은 창단 20주년을 맞아 대표 레퍼토리 '왕은 죽어가다'(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연출)를 연우무대에 올렸다. 경계없는예술센터도 20주년을 기념해 2인극 시리즈를 선보였다. 지난해 12월 대표작 '어떤 내기'(체호프 원작, 윤기훈 연출)에 이어 2월에는 신작 '부재중 만남'(윤기훈 작·연출)을 문래 스페이스 T에서 공연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 극단 연우무대는 창단 50주년을 맞아 '터키 블루스'와 '클럽 라틴'(박선희 구성·연출)을 예술의전당 자유극장에서 공연하며 중장년층 관객을 대거 끌어들였다. 극단 마방진 역시 창단 20주년 기념으로 대표 레퍼토리 작품인 '칼로막베스'와 '리어왕외전'(이상 셰익스피어 원작, 고선웅 각색·연출)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차례로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각 극단의 특성과 궤적이 다른 만큼 공연들의 성격과 규모, 관객층 그리고 공연장의 특성 또한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각 극단과 함께 호흡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그려낸다.
한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극단의 많은 인력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한 노고를 힘들게 이어온 만큼 극단들은 그들의 여정 한 주기를 맞아 스스로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연극 자체가 바로 삶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기운과 지혜를 얻는 행위 아닌가.
연극의 기원 역시 이러한 성찰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534년, 봄을 맞는 3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은 경배하는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는 축제에서 최초의 연극 경연대회를 열었다.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풍자극을 올린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를 선정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거장들이 등장했다.
매년 3월 열리던 이 경연대회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극작가는 소포클레스였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테베의 왕위에 올라 자신의 생모와 결혼까지 하는 주인공을 그려낸다. 도시를 덮친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선왕의 살인자를 추적하던 그는 끝내 자신이 그 살인자이자 선왕의 아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의 핵심 요소로 '발견(anagnorisis)'을 꼽는다. 플롯상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는 의미인데 한편으로 공연을 지켜보던 관객들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된다.
소포클레스는 엄청난 진실 앞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대신, 스스로 징벌하며 왕으로서의 약속을 지키고 표표히 유랑을 떠나는 오이디푸스를 그려낸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걸어가야 할, 살아가야 할 존엄한 미래를 보여준다. 이 비극적 반전 속에서 관객은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긴장을 덜어내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동시에 내일의 존엄한 자신을 위한 새로운 기운을 얻는 것이다.
각종 기념일의 홍수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잠시라도 극장을 찾아 자신과 마주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
이화원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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