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의 논쟁, 마르코 폴로의 고향은 어디인가?[뜻밖의 크로아티아]
2026.03.26 22:05
크로아티아에 처음 가는 사람은 아드리아 해의 풍경에 압도된다. 두 번째로 가는 사람은 그 풍경 뒤에 쌓인 이야기에 압도된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험가의 고향이라 주장한다. 동시에 인류가 처음으로 ‘격리’라는 제도를 법으로 만든 나라다. 한 사람은 경계를 넘어 동양과 서양을 이었고, 한 도시는 경계를 지켜 사람들을 살렸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두 이야기 모두 이 나라에서 시작됐다.
달마시아 해안에는 파도와 시간이 수만 년에 걸쳐 빚어낸 하트 모양의 섬이 떠 있다. 그런데 수도 자그레브는 헤어진 연인들이 이별의 물건을 들고 찾아오는 박물관이 있다. 사랑의 탄생과 사랑의 끝이, 같은 나라 안에 나란히 존재한다.
여행지로서의 크로아티아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그런데 더 깊이 알고 가면 풍경이 달리 보인다. 단순히 예쁜 해안선 뿐 아니라, 인류의 ‘처음’들이 살아 숨 쉬는 시간의 지층 위를 걷게 된다.
① 600년 간 지속된 마르코 폴로 출생지 논쟁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 마르코 폴로. 원나라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의 궁정에 머물며 동아시아의 풍경을 유럽에 처음 알린 13세기 탐험가이자, 『동방견문록(Il Milione)』의 저자다. 교과서에서는 그를 ‘베네치아(Venice) 출신’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크로아티아 달마시아(Dalmatia) 해안의 작은 섬 코르출라(Korčula)는 이 단정적인 서술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한다.
코르출라 섬 구시가지 안에는 마르코 폴로의 생가라 전해지는 돌집이 보존되어 있다. 1298년 제노바와의 해전에서 포로로 잡히기 직전, 폴로가 코르출라 앞바다에서 직접 싸웠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일부 역사 연구자들은 ‘폴로(Polo)’라는 성씨 자체가 코르출라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크로아티아어로 ‘폴로’는 ‘평원’을 의미하는 방언에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베네치아 측의 반박도 만만찮다. 1254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고, 폴로 가문이 베네치아 상인 계급이었다는 증거도 있다. 코르출라의 주장을 두고 “훌륭한 관광 마케팅”이라고 비꼬는 학자들도 있다.
이 논쟁은 600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13세기 지중해는 도시국가들이 뒤섞인 세계였고,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개념은 지금과 달랐다. 코르출라 섬은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였으니, 논리적으로는 코르출라 출신이면서 동시에 베네치아 시민일 수 있다.
방문 정보
코르출라 섬에는 마르코 폴로와 관련된 공간이 두 곳 있다.
마르코 폴로 센터 Marko Polo Centar
2023년 7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13~16세기 코르출라의 역사, 폴로의 여행 경로, 1298년 베네치아-제노바 해전을 멀티미디어로 풀어낸 공식 해석 센터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통합권을 사는 편이 낫다.
주소: Ul. Depolo 3, Korčula Town
운영: 연중 개관 / 비수기에는 월~금요일만 운영 (방문 전 확인 필요)
요금: 일반 6유로 | 아동(초·중학생) 3유로 | 가족(성인 2명+아동 2명) 15유로 통합권(시립박물관+레벨린 탑 포함): 12유로
마르코 폴로 뮤지엄 Marco Polo Museum
구시가지 남쪽 성문 바깥에 있다. 중세 의상을 입은 모형과 디오라마로 폴로의 여정을 재현한 공간이다. 전시 내용보다 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코르출라 전경이 더 인상적이라는 것이 방문자들의 솔직한 평가다.
주소: Ul. Plokata 19. travnja 1921. 24, Korčula Town
요금: 약 5유로
코르출라 가는 법
마르코 폴로 논쟁과 별개로 코르출라는 충분히 가볼 만한 섬이다. 중세 성벽 도시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구시가지를 걷는 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달마시아 화이트 와인 그르크(Grk)와 포쉽(Pošip)이 이 섬산이고, 8월 넷째 주 목요일에는 중세 기사 검무 모레슈카(Moreška)가 구시가지 광장에서 펼쳐진다.
스플리트(Split) 출발: 쾌속 카타마란 약 2시간 20분~3시간 40분 / 편도 약 8유로~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출발: 성수기 하루 최대 7편 / 약 1시간 40분 / 편도 약 9유로~
운항사: 야드롤리니야(Jadrolinija) · 크릴로(Krilo) · TP라인(TP Line)
선착장에서 구시가지까지 도보 5분
② 인류 역사상 최초의 격리, 두브로브니크
마르코 폴로가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연결한 인물이라면,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의 이야기는 정반대 로 흘러간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사람을 살린 이야기다.
1348년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쓸어갔을 때, 당시 라구사 공화국(Republic of Ragusa, 오늘날의 두브로브니크)은 두려움 앞에서 놀라운 선택을 했다. 그냥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1377년 7월 27일, 대평의회(Great Council)는 세계 최초의 법률적 격리 제도를 통과시켰다. 감염 지역에서 온 선박과 여행자는 도시 인근 무인도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야만 입성이 허용됐다. 처음에는 30일이었던 기간이 이후 40일로 늘었다. 이탈리아어로 40을 뜻하는 ‘콰란타(quaranta)’에서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영어 단어 ‘quarantine’이 탄생했다. 규정을 어기면 귀나 코를 잘리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이 결정은 사실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두브로브니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도시였다. 완전한 봉쇄는 곧 파산을 의미했다. 격리 제도는 ‘방역과 경제의 동시 유지’라는 현실적인 필요에서 탄생한 실용주의의 산물이었다. 베네치아가 46년 뒤인 1423년, 제노바가 1467년에 두브로브니크의 선례를 따랐다. 마르코 폴로와 검역, 이 두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방향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경계를 넘어 동양과 서양을 연결했고, 한 도시는 경계를 지켜 사람들을 살렸다. 모두 같은 시대, 같은 아드리아 해 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방문 정보
라자레티 Lazareti
1590년 공사를 시작해 1642년 완성한 10개 건물·5개 안뜰의 복합 시설로, 유럽 지중해 연안에 현존하는 유일한 완전 보존 검역 시설이다. 현재는 두브로브니크의 문화 허브 공간 역할을 한다. 여름 화·금요일 저녁 9시 30분에는 크로아티아 전통 민속무용단 린조(Linđo)의 공연이 열린다. 입장권 25유로, ulaznice.hr에서 예매 가능하다. 흑사병을 막던 돌벽이 지금은 재즈 공연장과 갤러리가 됐다는 아이러니가 크로아티아답다.
주소: Frana Supila 8, Dubrovnik (구시가지 동쪽 플로체(Ploče) 성문 바로 바깥)
입장: 외부 마당 무료 상시 개방
두브로브니크 가는 법
자그레브에서 버스 약 10~11시간
스플리트에서 버스 약 4시간 / 쾌속선(5~10월) 약 5시간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시내버스 또는 택시 약 25~30분
③ 자연이 수만 년 동안 다듬어 고백한 마음 — 갈레슈냐크 하트 섬
2009년, 누군가가 크로아티아 달마시아 해안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다 멈칫했다. 완벽한 하트 모양의 섬이 바다 위에 떠 있었던 것. 파도와 바람과 시간이 수만 년에 걸쳐 빚어낸 완벽한 하트 모양에 과학자들도 심쿵했다.
섬의 이름은 갈레슈냐크로, 면적 약 13만㎡의 무인도다. 달마시아 해안 파슈만(Pašman) 섬 인근 해역에 위치한다.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자 CNN과 BBC가 앞다퉈 보도했고, 크로아티아 관광청은 이 섬을 ‘사랑의 섬(Island of Love)’으로 공식 명명했다. 비욘세(Beyoncé)가 생일을 이곳에서 보낼 만큼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방문 정보
갈레슈냐크 보트 투어
섬에는 선착장과 편의시설이 없어 보트로 접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트 모양은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만 확인된다. 드론을 챙기거나 항공 사진 촬영이 포함된 투어를 선택하면 훨씬 실감 난다. 발렌타인데이 전후로 수요가 몰리니 미리 예약해야 한다.
출발지: 자다르(Zadar) 항구 또는 투란(Turanj) 선착장 (자다르 남쪽 차로 약 20분)
요금: 프라이빗 보트(1~5인) 총 50~100유로 / 반일~종일 투어 섬 내 편의시설 없음 — 물·간식·선크림 필수 지참
자다르 가는 법
자그레브에서 버스 약 3시간 30분
자다르 공항에서 시내까지 약 20분
④ 토스터기 하나로 시작된 박물관 — 이별이 예술이 된 자그레브
자그레브(Zagreb) 구시가지의 17세기 바로크 양식 쿨메르 궁전(Kulmer Palace) 2층에 이상한 박물관이 있다. 전시물이 예사롭지 않다. 토스터기, 곰 인형, 도끼, 의족, 고무 오리, 편지 한 통. 모두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겨진 물건들이다.
이별 박물관은 2003년 헤어진 두 사람에서 시작됐다. 영화 프로듀서 올린카 비슈티차(Olinka Vištica)와 조각가 드라젠 그루비시치(Dražen Grubišić)는 4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그 둘과 함께했던 물건들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이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넣는 대신 전하기로 한다. 2006년 컨테이너 하나를 전시 공간으로 꾸몄는데 이를 재밋게 여긴 로이터 통신이 취재요청을 해왔다.
박물관은 2010년 자그레브 구시가지에 정식 개관했다. 2011년 유럽 박물관 포럼(European Museum Forum)은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통념에 가장 대담하게 도전한 업적”이라며 케네스 허드슨 상(Kenneth Hudson Award)을 수여했다. 지금까지 35개국 68개 도시를 순회했고, 2024년 11월에는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에 두 번째 상설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각 전시물에는 기증자가 직접 쓴 짧고 익명의 이야기가 붙어 있다. 10년 관계가 끝난 뒤 전 연인의 아파트를 도끼로 부쉈다는 이야기, 헤어질 때 상대가 두고 간 허름한 슬리퍼를 끝내 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 웃다가 눈물이 나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자연은 사랑의 시작을 하트 모양 섬으로 빚어냈고, 인간은 사랑의 끝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이 두 곳이 같은 나라, 바로 이곳 크로아티아에 있다.
방문 정보
이별 박물관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에서 도보 약 10분, 자그레브 케이블카(Uspinjača) 탑승 후 도보 5분이다. 숍과 카페가 함께 운영된다. 자신의 이별 물건을 기증하고 싶다면 공식 웹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다.
주소: Ćirilometodska 2, Zagreb (쿨메르 궁전 2층)
운영: 매일 09:00~21:00 / 성탄절·신정·부활절 휴관 / 12월 24·31일은 09:00~15:00
요금: 성인 7유로 | 학생·노인 5.5유로
자그레브 가는 법
프랑크푸르트·암스테르담·이스탄불·비엔나 경유 약 13~16시간
자그레브 공항에서 시내버스 약 35분 / 택시 약 25분
엉뚱한 질문이 가득한 크로아티아
탐험가의 고향을 둘러싼 600년 논쟁, 647년 전 만들어진 격리 제도, 우연이 빚은 하트 섬, 이별의 물건들을 예술로 바꾼 박물관. 네 이야기는 제각각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크로아티아다운 방식으로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는가’는 결국 ‘우리는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어떻게 전염병을 막을 것인가’는 ‘위기 앞에서 인간은 어떤 제도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이다. 하트 섬은 자연이 만든 형상이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를 묻고, 이별 박물관은 상실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묻는다. 그 모든 질문이 아드리아 해 위의 이 작은 나라에서 나왔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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