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직후 '2.4조 기습 유증' 한화솔루션 폭락 사태…국민연금 길 터줬나
2026.03.26 17:57
한화솔루션이 정기 주주총회 종료 직후 2조4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특히 이번 증자의 법적 근거가 된 '발행주식 총수 확대' 안건이 주총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된 지 이틀 만에 전격 발표되면서, 이번 주총에서 99%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의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시설자금 및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2조 376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번 증자로 발행되는 신주는 약 7200만 주로, 기존 발행주식 총수의 40%에 육박하는 물량이다.
발표 직후 한화솔루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8.2% 폭락한 3만 68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유증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전 설계' 의혹이다.
한화솔루션은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4일 정기 주총에서 정관 제5조를 변경해 발행 예정 주식 총수를 기존 3억주에서 5억주로 늘리는 '제2-1호 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사측은 "미래 사업 확장과 경영상 유연한 자금 조달을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총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규모 증자 카드를 꺼내 들면서, 사측이 이미 유증을 확정해 놓고도 주총 현장에서는 주주들의 반발을 피하고자 침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주총 결과 공시에 따르면 해당 정관 변경 안건은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 기준 99%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는 지분 약 5.8%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수치다.
국민연금은 같은 날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 승인(제6호)과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 승인(제7호) 안건에 대해서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이유로 명확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반대한 이유로는 "보수 한도 수준이 보수금액에 비추어 과다하거나, 보수 한도 수준 및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 승인 안건에 대해서는 "자기주식 취득 당시에 공시한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 및 주주권익 보호인 반면, 임직원 보상 목적으로 자기주식을 보유 처분할 계획으로서, 자기주식 취득 당시 공시한 내용과 일관되지 않아 반대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 권한을 강화한 개정 상법에 발맞춰 소수 주주 권익과 기업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의안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 지침을 정해놓고도, 정작 주가 폭락의 계기가 된 발행 한도 확대 안건에는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규모의 유증은 주관사 선정과 실무 작업에 최소 수개월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며 "주총 당시 국민연금이 이 같은 기습 증자 가능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면 정보 수집 역량의 결여이고, 알고도 찬성했다면 수탁자 책임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자금 조달의 목적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한화솔루션은 조달 자금 중 1조5000억원을 채무 상환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증자액의 60% 이상이 '빚 돌려막기'에 투입되는 셈이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기술 투자(9000억원)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상은 업황 부진으로 악화한 재무 구조의 책임을 주주들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이미 개입을 시사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한화솔루션을 중점 심사 대상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유상증자 규모가 1조원 이상이고, 주가가 18% 하락하는 등 소액주주의 보호를 위해 중점 심사 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중점 심사 대상이 되면 유상증자 당위성과 의사결정 과정, 이사회 논의 내용, 주주 소통계획 등 기재 사항을 집중적으로 심사하게 된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주주 권익 보호를 이유로 대규모 유상증자에 엄격한 현미경 검증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한화솔루션의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 요구를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총 직후 이뤄진 기습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발행예정주식수를 5억 주까지 대폭 늘린 배경에 대해 당국이 구체적인 소명을 요구할 경우, 발행 일정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정운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대표와 박승덕 큐셀 부문 대표는 "신재생에너지 및 고부가가치 소재 등 핵심 성장 투자를 지속해 중장기 사업 경쟁력과 이익 창출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 배당 정책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주주환원을 유지하고, 사업 성장에 따른 주주환원 확대와 차입금 상환을 통해 재무 건전성 제고를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유증은 1년 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증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 6000억원 규모의 역대급 유상증자를 기습 발표하며 주가가 13% 이상 폭락,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타법인 취득 등 투자 명목이나, 오너가 승계 작업 의혹과 기존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일자 한화 측은 4월, 규모를 2조3000억원 규모로 축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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