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고문기술자' 이근안 사망…향년 88세
2026.03.26 14:31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 향년 88세.
경기일보에 따르면 그는 최근 건강이 악화돼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으며, 이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전기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잇따르며 '고문 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남민전 사건,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등 다수 공안 사건에 연루됐고,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다. 당시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진행되면서 그의 행적은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재평가됐다. 고문 혐의가 제기되자 1988년 수배됐고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고문 및 불법 구금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가 관여한 공안 사건들은 이후 재심을 통해 조작 의혹이 잇따라 확인됐다.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의 경우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이 이뤄진 것으로 인정돼 무죄가 선고됐고,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한 금액 중 일부를 이근안이 부담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도 나왔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역시 '서울대 무림사건'에서 장기간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 등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결론 내리며 국가 사과를 권고했다.
출소 이후 이근안은 목사가 돼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 간증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임 있는 참회를 요구해왔다. 그는 생전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이어졌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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