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시진핑, 李에 "올바른 편 서야"
2026.01.06 00:56

이 대통령의 모두 발언은 양국 관계 회복과 한반도 문제에 맞춰졌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 회담은 2026년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으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라며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발맞춰 한중 관계 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싶다”고 했다.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함께 모색하겠다”며 “번영과 성장의 기본적 토대인 평화에 양국이 공동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기 방중을 통해 대북 대화에 돌파구를 만들려던 정부의 구상과는 달리, 이날 중국 측 발표에는 북한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친중(親中) 성향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압송한 직후 열린 회담에서 시 주석은 한국을 압박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시 주석은 모두 발언에서 “현재 세계는 100년 만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고 국제 정세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했다. 이어 “한중 양국은 역내 평화를 수호하고 세계 발전을 촉진하는데에 있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폭넓은 이익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며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은 또 “한중 양국은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와 포용적 경제 세계화 추진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를 비판하면서, 한미일 협력 중인 한국에 ‘중국의 편에 서라’고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기치 않게 방중 직전 발생한 ‘마두로 체포’가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 주석은 또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배려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견을 적절히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배려하라는 뜻으로,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취지다.
◇李, 북핵 문제 中 역할 당부했지만… 中 발표엔 ‘한반도’ 언급 없어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5일 오후 4시 30분 공식 환영식부터 정상회담, 양해각서(MOU) 서명식, 국빈 만찬까지 4시간여를 함께 했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밤 브리핑에서 “한중 양국이 직면한 민생과 평화라는 공동의 지향점을 향한 협력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서둘러 중국을 방문한 배경에는 이처럼 전임 정부 시절 소원했던 한중 관계를 복원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물꼬를 터보려는 구상이 크게 작용했다.
◇“한반도 평화 안정”, 한국만 강조
위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안정이 한중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는 인식을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 수행 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양국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 필요성을 확인하고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창의적 방안을 지속 모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대북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당부했으며, 중국 측도 일정 부분 공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측 발표에는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한중 정상회담 직후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에 의지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기 시작한 데 이어, 이번 회담에서는 아예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중국 측 발표에는 지난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맞춰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배려한 측면도 있겠지만, 베네수엘라 문제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를 제기할 여유가 없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대만을 의미하는 “핵심 이익 배려”를 거론하면서 일본을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80여 년 전 한중 양국은 막대한 민족적 희생을 치르며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며 “오늘날 더욱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를 수호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비판하며, 한국은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재차 요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국 측은 이 대통령이 이날 회담에서 “한국은 대중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며 “한국은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존중하며 ‘하나의 중국’을 견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뿌리는 매우 깊다”며 “지난 수천 년간 한중 양국은 이웃 국가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고 국권이 피탈되었던 시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싸웠던 관계”라고도 했다.
◇한한령, 서해, 불법 조업 협의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상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 관계의 정치적 기반과 우호 정서의 기반을 튼튼히 쌓겠다”고 말했다. 회담 후 위 실장도 “한중 정치적 신뢰와 우호 정서 기반을 공고히 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으며, “한중 관계 전면 복원에 걸맞게 매년 만남을 이어 나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했다며 “국방 당국 간에도 소통과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위 실장은 “양측 모두가 수용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점진적·단계적으로 문화·콘텐츠 교류를 확대해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고, 세부 사항에 대한 협의를 진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2016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 이후 한국 문화 콘텐츠를 제한해 온 한한령(限韓令)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취지다. 위 실장은 “예컨대 바둑, 축구 분야 교류에 대해 추진하기로 했고 드라마, 영화 등은 실무 부서 간 협의 하에 진전을 모색하기로 했다”면서 우리 측이 판다 대여 문제도 제기해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날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서해를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서해 구조물 문제에 대해 건설적 협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위 실장은 밝혔다.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중국이 무단 설치한 3기의 대형 구조물과 관련해 그간 외교 당국은 유인(有人) 관리 시설을 먼저 철거하는 방안 등을 협의해 왔다. 이에 대한 협의도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측이 “중국 측에 어민 계도 및 단속 강화 등 서해 조업 질서 개선을 당부했고, 앞으로도 관련 소통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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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박상기 기자 sangki@chosun.com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b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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